판사유감 - 현직 부장판사가 말하는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
문유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저자는 서울법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다니면서 느낀 점에 대해 서술해 가면서 결국차이는 각자의 일에 대한 존중이라고 결론내린다. 자신의 일이 소중한 만큼 그들은 타인의 일과 권한에 대해 존중한다고 느낀다. 관공서를 가고, 상점이나 은행을 가도, 정해진 순서를 지키고 아무런 소란없이 기다리다가 자기 일을 처리한다고 한다. 고객이 왕이 아니라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왕이다는 것. 바로 그점이 일하는 사람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 다는 점도 빼놓치 않았다.( 판사유감 p.138-163 참조)

 

나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법원에서 근무한다. 짧으면 1년 길면 1년 반을 주기로 매번 업무가 순환되는데, 재판업무,신청업무,민원업무,등기업무 등을 두루 거치면서 실무를 익혀나간다. 공무원으로서 타 직종에 비해 봉급은 적지만 법원 공무원은 자기 일에 대한 만족감은 대체로 높다고 느낀다. 상대적으로 많은 여가시간과 사기업에 비해 낮은 노동강도 등을 이유로 들 수도 있겠다.

난 애국심 보다는 소속감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국가가 봉급을 주니까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는 논리는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를 내가 사랑하는 애인이나, 가족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국가라는 조직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낀다. 결국 직업적 만족감은

경력직 공무원으로서 정년보장되고, 이런 안정감에 기반한 강한 일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직업인 법원 공무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단독 사건을 기준으로 민사재판부의 경우 1개의 부는 판사,참여관,실무관,속기사,법정경위로 구성된다. 진행단계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소장접수후 참여관이 기본적인 흠결사항 유무를 심사한다(소장심사).

 2. 실무관은 소장부본, 답변서, 기일통지서 등 문건 송달과 기타 기일지정전까지의 대부분의 절차적 사항진행을 맡는다.

 3. 이후 기일이 잡히면 본격적으로 사건진행을 한다. 변론기일이 열리면 양 당사자의 주장과 제출된 증거를 진술하고 채택한다. 필요시 증인신문과 감정을 하기도 한다. 증인신문을 하면 속기사가 이를 기록하고, 이에 기초해 참여관이 증인신문조서를 작성한다. 각 기일마다 참여관이 변론조서를 작성하고 판사가 결론이 설 때까지 변론기일을 연 후 종결한다. 변론의 진행과 관련된 문건처리, 송달은 실무관이 맡는다.

 4, 변론종결 후 판결선고 기일을 지정하고 판사는 판결문을 작성한다. 판결 선고기일후 사건은 종국되고 일정 이의기간 도과후 사건은 확정된다.

 

 사건진행 순서가 아닌 주체별로 하는 일을 정리해보자.

판사: 소송지휘(주장진술시킴, 증거채택), 판결문 작성, 그 밖 기일 외 사건진행에 필요한 결재

참여관: 소장심사, 재판참여, 조서작성, 기타 민원업무

실무관: 송달,사건진행에 필요한 문건처리, 기타 민원업무

속기사: 증인신문조서 작성

법정경위: 증인, 민원 안내, 법정질서 유지

 

사건은 절차에 따라 한 팀이 철저하게 분업화되어 움직인다. 사건 진행중 누구하나 실수를 하면 절차가 지연될 수 밖에 없고, 때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른다. 역할에 따라 업무내용과 업무량은 다르지만 모두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실제 독립된 재판부는 다른 재판부의 간섭도 없고, 철저하게 자기에게 배당된 사건만 잘 진행하면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물론 법원업무의 성격상 금전적, 신체적 이해관계와 밀접하기 떄문에 책임감은 크다. 하지만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감이 따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법원 공무원으로서 10년정도 근무하면 법원의 업무 대부분을 경험하기 때문에 절차적 사항에 대해서는 충분히 상담할 정도가 된다(물론 모르는게 훨씬 많다). 사실 일반인들은 사해행위취소권,변론주의,증거재판주의 등등 법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것들은 법률전문가인 판사나 변호사가 소송진행과 수행을 통해 해결될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돈받을게 있는데 채무자의 재산에 압류나 가압류를 할 수 있는지, 경매를 하면 얼마를 배당받을 수 있는지, 내 이름을 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이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피부로 와닿는 일에 관심이 많다.

 

법원공무원으로서 성실히,정성을 다해 업무를 익혀가다보면 나도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내가 아는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도움받는 사람뿐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큰 자긍심과 행복감으로 돌아온다.

정말 상투적인 말이지만 매일매일 착실히 사는 것이 해답임을 믿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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