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드는 바람이 좋다. 한여름의 열기는 조금씩 식어가고 아침 저녁 큰 일교차는 마음을 바람나게 한다. 순창 가인연수원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접수를 받아서 8월 17일 7시 58분 부터 원하는 날짜에 숙소를 잡으려고 튀어나온 자라 목 같은 마우스 볼을 눌러댔다. 8시 땡하고 예약완료. 대학 때 원하는 교양과목 수강신청을 부리나케 마치고 밥 먹으러 갈 때의 희열을 오랜만에 느꼈다. 애초에는 아내랑 단 둘이 갈 계획이었지만 딸 시집보내고 부척 적적해 보이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모셨다. 장모님은 혼자 가시려니 남양주 진접읍에 사시는 아내 이모가 걸리셨나보다. 이렇게 오붓하게 4명이서 출발.

 부천에서 순창까지는 대략 4시간정도 걸린다. 이 정도 거리는 장거리도 아니다. 예전 당일치기로 부천에서 창원까지, 창원에서 부천까지 결혼전에 처음 인사드리러 갔을 때 약 14시간을 운전했었다. 특히 야간에 올라오는 길엔 차에서 꿀잠을 자던 와이프도 내가 잘까봐 불안했던지, 결혼도 하기전에 황천길 가는 건 아닌지 나를 깨웠다.


"오빠~~!! 자는 거 아니지?"


지루할거란 생각은 기우였다. 자매는 마치 50년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말씀이 끊이질 않았다. 아내가 듣다못해 "어쩜 그렇게 말이 않 끊겨" 


중간 탄천 휴게소에서 잠깐 들르고, 첫번째 목적지인 담양 '죽녹원'에 도착했다. 9월 19일부터 세계대나무축제를 해서 여기저기 설치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조그마한 죽순에서 모진 비바람을 견디고 쭉 뻗은 몸은 패션모델 같다. 육신 뿐 아니라 속을 비우고 꼿꼿히 척추를 세운 늠름함이 부럽다. 혹여 바람에 꺾일까 서로의 몸을 묶어 만들어낸 울타리를 보니 사람의 엮음과 엮임도 대나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깐 생각하는 도중.


"운수대통길, 사랑이변치않는길 어디로 갈까요?" 

"운수대통길이 최고지, 돈 많이 벌고, 우리 동구 시험도 합격시켜주고"


그렇게 운수대통길을 걸으니 후문 가까이에 널찍한 뜰과 연못이 보인다. 중간에 지어진 한옥에서 한복을 곱게 입고 가야금을 키는 여자분과 관광객이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3,4킬로미터를 걸어 목이 마른 터에 마루에 걸터 앉으니 다른 무리 중 한 분이 깎아 놓은 배를 건넸다.


"이거 하나 잡숴여~, 올 줄 알고 깎아 뒀어~."


가야금 고수와 10살쯤 보이는 가야금 신동의 콜라보 연주를 들으며 배 한조각

베어무니 4시간 운전의 피로가 날아간듯 했다.



댓잎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면서 죽녹원을 떠났다. 순창 고추장 마을에 잠깐 들른 후 숙소인 순창 가인연수원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고 먹을거리를 사려고 올라온 길을 내려가는데 산토끼 한마디가 길을 가로막는다. 경적을 울려도 슬쩍 한번 보더니 가만히 서더니 빤히 얼굴을 쳐다본다.


미안, 놀라게 해서. 조심할게. 얼른 피해 읍내로 내려갔다. 

맥주 한잔 기울이며, 다음날 강천산 트래킹을 꿈꾸며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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