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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진짜가 나타났다. 현실과 소설이나 영화의 가상세계를 통틀어 보아도 조르바는 역대 급 상 남자다. 마른 체구에 곱슬머리 60대는 모티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다. 그의 어록들을 보자.
-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라고요.(54쪽)
-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159쪽)
크레타 섬의 갈탄광 사업을 위해 동행하는 조르바의 고용주이자 화자인 '나'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소위 먹물인간이다. 손발보다는 머리가 앞서고, 흙냄새보다 종이냄새가 친숙하다. '나'는 조르바와 시종일관 조르바를 흠모하고 동경한다. 후반에 약간 조르바의 의견에 반박하기도 하지만 거의 신도수준이다. 서방을 얻고 아이를 가지는 것이 꿈인 한물간 카바레 가수인 오르탕스 부인을 희롱하고 애타게 하는 지켜보고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저자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자 실존인물 조르바를 모델로 한 이 책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의 모순 개념을 조르바와 나를 통해 뚜렷이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화자가 그토록 추앙하는 육체파 조르바의 삶이 옳은 것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론을 정립하고 확장하는 과정은 현장과 현실세계에서 얻는 경험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는 법원을 포함해 여러 조직에는 관행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법령에 규정은 없지만 내 선배가, 선배의 선배로부터 구전이나 족보로 내려오는 매뉴얼이 있다. 가끔씩 민원인과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바로 규정의 틈이 있는 애매한 부분이다. 담당자의 재량에 의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데, 대개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한다. 우선 관련규정과 선례가 있는지 찾아보고 없다면 해석이 개입하는데, 담당자의 재량에 의해 결론이 달라지는 것보다는 이론가와 실무가가 연구해서 계속해서 흠을 메워나가는 선례를 만들고 규정을 정립해 나간다면 민원인과 일반 국민들도 쉽게 수긍할 것이다.
사람마다 공부하는 방식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교과서나 이론서를 수회 정독한 후 실제 문제를 풀거나 다음단계로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소한의 틀을 가지고 문제집을 풀거나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오답을 정리해 나가는 스타일도 있다.
축구경기를 보면 나라마다 클럽마다 스타일을 가진다. 메시가 뛰는 바르셀로나처럼 티키타카라 불리는 짧은 패스와 높은 공 점유율을 바탕으로 경기를 지배해나가는 팀이 있고, 아틀레티고 마드리드처럼 튼튼한 수비를 기본으로 역습을 노리는 팀도 있다. 어느 스타일이 옳다고 할 수 없다.
육체와 영혼, 연역과 귀납처럼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닌 둘은 하나라는 메시지를 조르바와 나의 대비를 통해 느끼게 해준 감동적인 소설이다. 여성 독자들은 조르바의 거친 말투와 여성비하적인 멘트에 약간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조르바라는 인물의 캐릭터가 그렇다고 생각하고 읽어나가면 될 듯.
#그리스인조르바 #니코스카잔차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