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소설전집 1 - 생명연습 외 김승옥 소설전집 5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김승옥의 단편 '생명연습'




1. 소설은 여고생 딸을 둔 '한교수'와 화자인 '나'의 문답으로 시작한다. 한 교수는 대화를 이어가다가 30년전 연인이었던 '정순'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해외유학을 떠나는 자신의 처지로 같이 가자고 할 수도, 1963년 즈음의 사회분위기상 여자의 집에서 기다리게 하지도 않을게 뻔했다. 이야기의 말미에 한교수는 정순이 어제 죽었다고 말했다. 실은 그녀는 사회학과 박교수의 부인이었다.




2. 소설 속 나의 가족은 엄마, 형, 누나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형은 하루종일 다락방에서 나오지 않는 22살 청년으로 폐병을 앓고 있다. 누나는 야간상업중학교를 다니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어머니는 사별후 밀수선 선장, 세관관리, 헌벙문관 등 남자를 만나고 이따금 집안에 들이기도 한다. 형은 그런 엄마가 마뜩찮다. 형은 자신의 건강상태 때문인지, 어머니에 대한 증오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엄마를 때리고 만다. 누나는 엄마에 대해 글을 쓴다. 물론 허구다. 엄마가 만났던 남자들의 용모에는 공통점이 있다. 눈에 쌍꺼풀이 있고, 콧날은 오똑하고 얼굴은 창백하다. 놀랍게도 아버지의 얼굴과 거의 일치된다. 형은 누나의 작문으로 보고 픽 웃는다. 남매는 결정을 해야 한다. 엄마냐 형이냐? 남매는 등대가 있는 낭떠러지에서 형을 밀어 바다로 빠뜨렸다. 엄마를 선택한 것이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형은 돌아온다. 그리고 자살한다. 




3. 정순과 엄마는 닮았다. 한 사람은 생이별을, 한 사람은 사별했다. 이별 후 각기 다른 인연을 만나 보낸 사람을 지워나갔다. 어쩌면 정순이 만났던 사회학과 박교수는 '한교수'의 외모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한교수와 대화를 나누는 '나'는 한교수와 닮았다. 현실적 사랑을 선택한 엄마를 누나와 지지했듯, 애달프게 남겨둘 수 밖에 없었던 정순을 이해하고, 죽음을 슬퍼하는 한교수에 감정이입을 한다. 


"교수님, 장례식에 가실건가요?" 




나는 이 소설을 '형, 한교수'로 상징되는 명분과 '엄마와 정순'으로 대표되는 현실간의 간극에 관한 소설로 읽었다. 죽은 줄 알았던 형은 끝끝내 돌아와 스스로 몸을 던진 장면은 명분의 단발마다. 




- 악은 평범하다. - 김승옥의 단편 '건(乾)'을 읽고

1. 1952년 깊어 가는 가을 자락에 '나'의 집은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방위대책본부로 쓰였던 저택은 시립병원으로 변했고, 지금은 텅 비었다. 벽돌공장에서는 빨치산으로 추정되는 시체가 발견되었다. 엎드린 채 보따리는 풀어져 있고, 총은 시체 옆에 무심히 놓였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는 6학년생. 형은 고등학교 2학년이다. 아버지와 나, 무전여행을 계획했다 틀어진 형과 형의 친구들은 돈을 받고 빨치산의 시체를 치우기로 한다. 벽돌공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관이 있고, 빨치산의 어머니는 거듭 사죄를 한다.

"저 놈이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글쎄 하필... 빨갱이가 되어서...저 꼴로 돌아와서....폐를 끼쳐서 미안합니다."


나는 기분이 이상하다. 시체를 치우고 형과 형의 친구들과 나는 돌아오는 길에 나와 정감있게 친했던 '윤희누나'와 마주친다.



"저거 우리 먹을래?"
나는 빈집으로 할말 있으니 나오라는 형의 편지를 누나에게 전달한다. 누나의 반응을 예상해 둘러댈 변명거리를 형과 연습하기까지 하면서 '공범'이 된다.



2. 어머니의 사죄가 마음에 쓰인다. 죽은 아들의 시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아들을 잘 못 키워서 빨갱이가 되게 했다는 자책은 방어본능이었을까? 그렇다면 이념이 천륜마저 꺾어 버리는 참상은 끔찍스럽다.



자신을 살뜰히 챙기던 누나를 형의 교사로 범하는 과정에 가담하는 '나'는 초등학생임을 감안해도 정범인 형과 형 친구들의 불법보다 큰 악을 저지르는 공범인 정범이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은 지극히 평범하다. 십자군 원정을 떠난 군중, 유대인들을 살육장으로 실어나른 나치의 조력자 아이히만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이다.

악의 평범성에 흔들리지 않는 척추를 세우는 일, 멸치의 뼈로 내 뼈를 만들듯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것부터 바른 생각을 유지해야겠다.



- 김승옥의 단편 '역사(力士)'를 읽고




1. 공원 벤치에서 머리털이 덥수룩한 젊은이에게 들은 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동대문 창신동 빈민가에서 하숙하던 시절을 연극을 전공하는 내가 희곡을 습작하던 시절이었다. 하숙집은 방이 5개 였는데, 첫째는 주인이, 두번째는 '영자'라는 창녀가, 세번째는 50대 절름발이 남자와 그의 딸이, 네번째는 40대 '막벌이 서씨', 마지막으로 내가 사는 방이다.

우연히 단골술집인 함흥집에서 '서씨'를 만나 그의 인생을 듣는다. 중국남자와 한국여자의 혼혈로 태어난 그는 고향은 함경도인데, 6.25.때 월남했다. 나에게 자신은 동대문과 친하다며 술집에서 나와 동대문으로 데려간다. 동대문을 기어올라가 큼지막한 돌 하나를 빼더니 머리위로 번쩍 든다. 그의 넘치는 힘을 소모하기엔 막일은 소소했고, 집안 대대로 '역사(力士)'임을 증명하는 순간이다.




2. 나는 창신동 하숙을 나와 지인의 소개로 깨끗한 양옥집에서 하숙하고 있다. 구성원은 할아버지, 할머니, 물리학 강사 아들과 며느리, 3살 난 딸, 여고생인 여동생. 식모까지 일곱이다. 할아버지는 6.25.사변이 가정의 파괴를 불러 왔으며, '질서정신'에 입각한 가풍을 세우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 집은 규칙적인 생활의 전범이다. 며느리는 4시면 피아노 앞에 앉아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한다.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밤 10시 즈음에 티 타임을 갖고 취침한다. 밤에 기타를 튕켜보다 할아버지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 나는 '빈민가가 파견한 척후(109쪽)'였다.

나는 결심한다. 빈껍데기, 방향이 틀린 습관적인 생활을 하는 이 가족에게 티 타임시간에 식모 몰래 약국에서 산 흥분제를 넣었다. 가족들은 차를 마신 후 각자 방으로 가고 두번 째 일탈을 한다.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시작한다. 신기한 건 나를 피아노 앞에서 떼어내기 위해 방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 할아버지 뿐.




3. 2001년에 서울에 올라온 뒤 줄곧 하숙을 했다. 과일장사를 하셔서 지나가다 인사하면 귤을 건네 주셨던 하숙집 아저씨의 푸근함. 교회 앞에 하숙집이 있어서 일요일이면 사람들의 웅성임에 잠을 깨곤 했던 기억. 하숙집에서 당시 가장 어려 평생 처음으로 '귀엽다'는 말을 듣는 순간 느낀 오묘함. 어느새 하숙집의 맏형이 되어 동생들과 저녁먹고 노을지는 언덕길. 남자들이 있는 집만 살다가 여자들과 맨 얼굴로 밥상앞에서 마주해야 했던 어색함.
나의 하숙생활은 다행히 창신동 빈민가 같은 처절함도, 양옥집의 햐안방 같은
답답함이 없는 행복한 생활이었다.



공원에 앉은 젊은이는 묻는다.
"어느 쪽이 틀려 있었을까요?"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양자가 공존하는 세상은 어지럽기만 하다.

"이 사람들의 태도야말로 자신들은 걷고 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매일매일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빈민가에 살던 사람들의 그 끝없는 공전 같아 뵈던 생활이 이 곳보다는 오히려 알찬 것이 아니었을까?"(107쪽)



4. 극단적인 하숙생활을 대비는 우리 사회가 겪은 급격한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창신동 빈민가에서 탈출을 성공했지만 깨끗한 양옥 하숙생활은 나의 힘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수명은 연장되었지만 행복감의 수명은 기술발달에 비례하지 않는다. 각자가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공평한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매일 밤 동대문에서 벽돌조각을 들었다 놓는 역사(力士)처럼 움츠린 채 살고 있지 않은가.


가풍, 질서, 현실이라는 장벽 앞에 마음대로 기타나 피아노를 연주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남는 힘과 열정을 쏟을 곳을 찾는일이 중요하다.

#김승옥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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