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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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방성에 관하여 -



1. 나는 변방이다. 무한한 끝을 모르는 우주, 수많은 은하 중 조그만 귀퉁이의 태양계의 세번째 별,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단에 서 있다. 1미터 80센티미터 위쪽에서 순환하는 공기보단 한 여름 들끓는 지열을 먼저 느끼며, 생각은 위로 뻗치지만 몸은 옆으로 늘어지는 생활을 한다. 연평균 국민소득순위 차트에서 차지하는 순위도 아래지만 자존심의 층계는 높아져만 가는 불균형 속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순간에...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읽다가 변방성을 발견했다.'변방'의 의미는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변방성'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그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 내가 근무하는 법원에서 일반직 법원공무원은 변방이다. 중심부에는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대법관 이하 법관이 위치한다. 일반직 법원공무원의 큰 원안에도 나는 변방이다. 일년에 10명 남짓 공채로 선발하는 사무관 이상 간부직원이 있다. 입사한 지 3년을 겨우 넘은 법원서기보인 나는 직업서열과 소득순위에서 분명 변방이다. 


아침 출근준비를 하는데 페이스북 친구요청 알림이 왔다. 강선대라는 중학교 동창인데 지금 독일에서 건축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수락요청을 하고 메신저로 출근준비를 하면서 대화를 했다. 내 기억으로는 선대 아버지는 사업체를 운영하셨고, 서로 집이 가까워 일요일에 몇 번 선대 아버지와 선대, 나는 같이 목욕탕을 갔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시거나 주말에도 불규칙적으로 일을 하셔야 했던 아버지와 목욕탕을 같이 못간 것이 못내 부러웠다. 선대 집 형편은 우리 집 형편보다 나았고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 박사과정을 끝내고 언제 완전 귀국을 할 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 추억을 듬뿍 안고 돌아올 친구가 그립다.



3. 나는 변방에 있다. 사람들이 사람을 평가하는 제 요소에 비추어 변방이든 나 자신이 느끼는 위치에서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그들과 '변방성'을 잃지 말자는 내면이 외치는 깊은 울림을 같이 느끼고 싶다. 중심부의 인력은 강하고 단단하다. 나와 우리는 변방에 있지만 느슨하지만 유연하다. 유연하기에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느리지만 끈끈하게 변방성을 지켜 나가는 사람이 될 테다.




- 대리출석과 대행출석 그리고 담론 (신영복의 '담론'을 읽고) - 





1. 신영복 교수의 '담론'을 읽으면서 계속 누군가가 떠올랐다. 



대학때 상법을 강의하셨던 이균성 교수님이다. 신영복 교수와 이균성 교수님은 두분 다 1941년 생으로 올해 일흔 다섯이다. 고향도 밀양과 부산으로, 대학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와 법학과를 졸업하셨다. 느리지만 강단있는 경상도 억양이 베어나는 목소리로 적절한 유머를 강의 때 곧잘 하셨던 점도 비슷하다. 



이균성 교수님의 수업은 강의 시작과 동시에 조교가 출석을 불렀다. 교수님은 대신 출석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묵인하셨는데,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법률용어를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하시며, '대리출석'이란 말대신 '대행출석'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갑돌이 대신 출석체크 해주는 경우 '갑돌이'라고 이름을 부른다고 가정해보자.


'대리'는 '네, 저는 갑돌이 대신 출석한 누구입니다'라고 하는 것이고, '대행'은 '네, 갑돌이입니다'라는 의사표시다. 내가 갑돌이를 죽도록 미워하지 않았다면, 대신 출석체크시 대답하는 의미는 '대행출석'이 맞다. 즉 대행은 내가 갑돌이다는 의미다.




2. '담론'이란 책은 대행출석이다. 20년 2개월을 사형수와 장기수로 감옥살이를 하고, 감옥이라는 인생수업에서 사람과 부딪히고, 사색하고 출소 후에 그 열매를 정리하고 글귀들이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변방을 찾아서' '강의' 라는 책이다. 신영복 교수는 우리대신 감옥수업에 대행출석해서 우리 이름을 드러내 주었다. 



'담론'은 지금까지 출간된 사과 열매 속의 꿀처럼 달콤한 부분만 모아 놓은 책이다. 한마디로 '꿀사과'다. 맛있는 사과를 먹어 본 사람은 대번에 안다.

한 잎 베어무는 순간 혀끝을 녹이는 즙의 맛을.



책은 크게 1,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고전에서 읽는 세계인식을 2부에서는 인간 이해와 자기 성찰을 다룬다. 1부에서는 공자,맹자,노자,장자가 쓴 고전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2부에서 수감생활과 여행에서의 사유를 정리하고 있다. 



'담론'에 담긴 핵심어는 '관계'다. '관계'에서는 인간이 중심이 되고, 자기성찰을 통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에 이르는 기나긴 여행을 완성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3. 왕년에 목수였던 노인의 이야기를 하면서 톨레랑스를 넘어 노마디즘(유목주의)을 강조한다. 집을 그릴때 많은 사람은 지붕부터 그리는데 그 노인은 주춧돌부터 그린다.  여기서 톨레랑스란 '그래, 목수였던 노인의 특유한 삶의 정서,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난 지붕부터 그릴거야' 반면 노마디즘이란 '목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집 짓는 순서로 그리는 구나. 삶의 생각이 일치하는 삶을 지향하고 내 생각을 바꿔야 겠다'정도가 되겠다.



적절한 비유와 인용,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한 유려한 문체를 읽으면서 점점 책에 빠져든다. 이 책은 반복해서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며 분명 내 인생의 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메모 -


위악이 약자의 의상이라고 한다면, 위선은 강자의 의상. 의상은 의상이되 위장(268쪽, 문신을 한 제소자 이야기를 하면서)


경쟁은 옆 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나 자신'과의 경쟁(3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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