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알렉산드리아 - 이병주 소설, 개정판
이병주 지음, 이병주기념사업회 엮음 / 바이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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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 이병주, 소설·알렉산드리아, 바이북스, 2020(개정판)


이현우의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 남성작가 편)"에서 1960년대 작품으로 《관부연락선》을 다루었다. 《관부연락선 1》은 절판되어, 대신 그의 등단작인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골랐다. 1965년 6월 월간 "세대"에 실린 중편소설이다. 필화 사건으로 10년 형도 선고받고 복역 중인 형을 둔 피리(플루트) 연주자인 동생 '나'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겪은 일을 그리고 있다. 초중반까지는 형의 분신이자 그림자인 '나'가 알렉산드리아에 건너오는 과정과 형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통해 작가의 세계관과 철학을 소개하는 단순한 서사다. 그러다가 '나'가 게르니카 출신 사라 엔젤과 게슈타포에 의해 동생을 잃은 한스 셀러와 엮이게 되면서 확장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와 사라와 한스가 한스의 복수를 하는 과정이 펼쳐지면서 형의 이야기는 소설의 말미까지 증발하는데, 이는 '나'가 사실은 형의 외부적 자아 내지 형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중반부터는 '나'의 이야기에서 한스와 사라의 복수극으로 옮겨간다. 이후부터 작가는 작가가 하고 싶었던 국가적 폭력(게르니카 학살, 2차대전 중 유대인 학살, 사형제도)에 대한 논의를 한스와 사라의 재판에서의 진술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낸다. 실제 이병주는 1961년 5.16 때 필화사건으로 10년 선고를 받고 2년 7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는데, 그때 느낀 수형생활과 국가적 폭력에 대한 본인의 세계관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고발하고 있다. 어두운 시절에 직접적으로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나마 무대를 알렉산드리아로 설정하고, 전쟁비극인 스페인 학살, 유대인 학살의 역사적 사건을 끌어와 간접적으로 독재를 고발하고 있다. 이만한 작품을 쓴 것만 해도 당시로서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




- 그랬는데 지금의 나는 너와 더불어 알렉산드리아에 있다는 환(11쪽)각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진짜의 나는 너와 더불어 알렉산드리아에 있고, 여기에 이렇게 웅크리고 있는 나는 나의 그림자, 나의 분신에 불과하다는 환각을 키우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앙, 웃지 마라. 고독한 황제는 환각 없인 살아갈 수 없다. 13쪽


- 형은 아마 이천 편 이상의 논설을 썼을 것이다. 그중에서 단죄받은 논설이 두 편이 있다. 그 논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조국이 없다. 산하(山河)가 있을 뿐이다.”

“이북의 이남화가 최선의 통일방식, 이남의 이북화가 최악의(30쪽) 통일방식이라면 중립통일은 차선의 방법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사악시하는 사고방식은 중립통일론 자체보다 위험하다.”

“이 이상 한 사람이라도 더 희생을 내서는 안 되겠다. 그러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통일은 이룩해야 하겠다. 이것은 분명히 딜레마다. 이 딜라마를 성실하게 견디고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비로소 활로가 트인다.” 31쪽


- 교양인, 또는 지식인은 난관에 부딪혔을 때 두 개의 자기로 분화된다. 하나는 그 난관에 부딪혀 고통을 느끼는 자기, 또 하나는 고통을 느끼고 있는 자기를 지켜보고, 그러한 자기를 스스로 위무하고 격려하는 자기로 분화된다. (···) 바꾸어 말하면 지식인은 한 사람이 겪는 고통을 두 사람이 나누어 견디는 셈인데 무식자는 모든 고통을 혼자서 견디어야 하는 셈이다. 49쪽


- “언제든지 꼭 와요.”

“형님을 모시고 우리들 같이 살도록 하자.”

태평양의 섬으로 떠나면서 사라와 한스가 내게 남겨 놓은 말들이다.

꿈속으로 오라는 꿈같은 이야기.

결국 내게는 나의 육친인 형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형은 왜 형의 애인에 관해선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을까. 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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