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 개정증보판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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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나의 한국현대사(1959-2020), 돌베개, 2021(개정증보판)

 

2014년 초반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개정증보판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데이터를 업데이트 하고 2016년 이후 대한민국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 국정농단과 촛불혁명, 대통령 탄핵, 문재인 정부 출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일본의 수출규제, 코로나19에 관한 서술을 본문 곳곳에 녹여 서술하고

별도의 절로 추가한 부분도 있다. 초판을 가지고 있는 독자 입장에서 우선 추가된 부분을 확인했고, 그 다음으로 목차를 보고 흥미가 있는 부분을 먼저 읽고 다시 목차에서 골라 읽는 식으로 읽어나가 결국 완독에 이르렀다. 물론 단순 데이터나 사실의 언급에 불과한 부분은 건너뛴 부분도 있다.


최근 5년이 추가된 부분은 대한민국 국민이 대부분 몸소 겪은 체험의 영역에 속한다. 이런 경험은 심장과 세포 곳곳에 각인되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추위를 견디며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코로나19 선별진료소를 찾아 기다란 면봉이 콧속으로 들어온 기억들은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몰랐거나 내가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제대로 몰랐었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훨씬 컸다.

해방전후 미군정 시기, 한국전쟁의 발발, 4.19와 5.16 유신,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까지 내가 없었거나 내가 존재했더라도 자각할 수 없었던 순간들에 대한 호기심이 이 책을 읽어나가게 하는 추동력이었다. 


내가 글을 쓰는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었고, 미래는 이미 눈앞에 다가와 문을 두드린다. 과거-현재-미래는 인간의 발명품에 불과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어쩌면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내가 겪는 지금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을 적금처럼 차곡차곡 모아 나도 나만의 현대사를 써보겠다. 


- 개정증보판 서문 중에서

 

인구, 국민소득, 소득분배 등 사회변화를 보여주는 시계열 데이터를 업데이트

3장과 5장의 말미에는 각각 일본의 수출규제 사건(추격자에서 선도자로)과 소수자운동(장애인, 성소수자, 여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절을 추가했다.

 

-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훌륭한 사람의 당선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쥐어도 악을 마음대로 행할 수 없게 한다는 강점 덕분에 문명의 대세가 됐다. 이른바 ‘국정농단’ 이후 한국에서 펼쳐진 상황은 그런 역설을 증명해 보였다. 22쪽

 

- 외국의 식민지였다가 자주권을 되찾은 신생국가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정통성을 세울 수 있다. 첫째는 역사의 대의명분이다. (···) 둘째는 경제적 효율성이다. 셋째는 민주적 정당성이다. 75쪽

 

- 박정희

동학 접주로 활동한 적이 있는 빈농 박성빈의 2녀 5남 중 막내로 1917년 11월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중 ‘충성혈서’를 동봉한 지원서를 제출해 일본 괴로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 입학허가를 받았고 1940년 제2기생으로 입교해 1942년 수석으로 졸업한 다음 일본 육군사관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그때 박정희 생도는 이름을 ‘다카키 마사오’에서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꿨는데, 평범한 조선 사람에게 창씨개명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지만 두 번 창씨개명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3등으로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장교가 된 그는 1944년 만주와 소련 국경 지역의 관동군 635부대에(91쪽) 배속됐다가 곧바로 화북 열하성 만주군 보병 제8단으로 전속되어 중국공산당 팔로군과 싸웠다.

일본의 패전과 만주군 해산으로 소속이 없어지자 박정희는 광복군을 찾아가 제3지대 제1대대 제2중대장이 됐으며, 1946년 5월 미군 수송선을 타고 귀국해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의 단기과정을 마치고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런데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1948년 11월, 박정희 소령은 여수순천반란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숙군작업에 걸려들었다. 형 박상희의 친구이며 남로당 군사부 책임자였던 이재복의 권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박정희 소령은 알고 있는 모든 남로당 인맥을 털어놓고 수사에 협조한 끝에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 중 혼자만 풀려났다. 육군본부 정보국장 백선엽과 미군 고문관 하우스만이 이승만 대통령의 면죄 승인을 받아 구해 준 덕분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괜히 백선엽 장군을 극진하게 예유한 게 아니었다. 박정희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현역에 복귀했고,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대구에서 김호남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혼인했다. 92쪽

 

- IMF 경제위기의 두 번째 원인은 정부의 환율관리 실패였다. (···) 환율은 세 가지 요인으로 인한 변한다. 장기적으로는 물가인상률이 환율을 좌우한다. 물가인상률이 높은 나라의 화폐가치는 지속적으로 값이 떨어진다. 단기적으로 환율은 경상수지에 좌우된다.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보는 나라의 화폐가치는 떨어진다. 그렇게 해서 수입가격은 오르(147쪽)고 수출가격이 떨어지면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가 균형을 되찾는다. IMF 경제위기 직전까지 달러 환율은 계속 하락했다. 물가인상률이 더 높고 경상수지가 적자인데도 우리 돈의 가치가 계속 오른 것은 환율 변동의 초단기 요인인 자본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규모 해외 차입과 외국자본의 직접투자 때문에 서울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늘어나 환율이 떨어진 것이다. 1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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