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위한 사전 - 시는 어느 순간에도 삶의 편
이원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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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 시를 위한 사전, 마음산책, 2020

 

‘시 한 송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2016. 3. 3. - 2020. 1. 31.)한 원고를 묶었다.

 

- 시 없이, 시와 만난 순간만으로 책을 엮었어요. 만난 시를 내보이지 않고 시와 만난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 만난 시와 보다 섬세하게 닿기 위하여 필요한 사전 같은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10쪽

 

책머리에 적힌 것처럼 이 책은 연재된 시에 관한 짧은 산문의 모음이지만 연재 당시와 달리 이 책에는 해당 시가 없다. 하얀 벽에 비친 그림자의 모양을 보고 사물의 모양과 크기와 질감 등을 가늠해볼 수밖에 없다. 왜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보았다. 책의 볼륨을 현격히 줄이면서 동시에 해당 시편들의 저작권 비용을 절감하려는 노력(?)이라고 의심해보기도 했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은 시에 관한 해설이 아니라 독자적인 산문집으로 읽는 것이 좋겠다. 시라는 배경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글자들이 춤을 추는 풍경이랄까. 생크림케이크의 생크림 자체가 무척 맛있고, 시어와 시의 일부 구절이 토핑이나 별사탕처럼 첨가되어 있어 풍미를 돋운다. 거듭 읽어보다가 가끔은 그 시를 찾아보아야겠다. 검색엔진에 ‘시 한 송이’와 해당 시의 제목을 넣으면 금방 시를 찾을 수 있다.

 

 

 

- 「희망의 임무」(이브 폰푸아)

 

희망이라는 퍼드덕거리는 작은 새를 두 손이 감싸고 있음을 상기해야 해요. 각자의 두 손 안에 작은 새를 머물게 하는 것. 새의 발과 접힌 날개를 내리누르지 않는 것. 두 손으로 감싼 새의 심장을 가늠해보는 것. 두 손 안에 보듬고 있는 새(54쪽)의 발과 날개와 눈을 동시에 느끼는 것. 램프로 저 너머의 희망을 밝히는 것. 희망의 의무이지요. 55쪽

 

- 「풍경」(김종삼)

 

달력에 기억하고 싶은 생일을 써넣는 일로 한 해를 시작해요. 멀어진 사람, 몇백 년 전 사람의 생일도 있어요. 양력이면 요일이 새삼스럽고 음력이면 날짜가 새삼스럽죠. 생일을 써넣어야 한 해의 달력이 시작된다는 느낌이 들어요. 57쪽

 

- 「친밀감」(김미령)

 

경계가 없다면 형태도 없지요. 형태는 다른 것과의 구분인 동시에 닮은 것과의 연대이지요. “하나의 형태를 이루려는”의 방향이 대화라면, 서로의 질감은 “경계”이지요. 83쪽

 

- 「달 이불」(윤병무)

오늘도 달빛 덮고 잠들어요. 오늘은 반만 덮어요. 반달이거든요. 달도 오늘은 반만 덮고 잠들어요. 보이지 않는 반은 잠들지 않는 나의 반이 덮어주고 있거든요. 오늘은 반달이라면, 나도 반만 잠드는 날, 달도 반만 잠드는 날, 그러니까 달과 나는 반반 이불을 덮고 지내는 사이. 나의 반은 달빛을 덮고 자고 나의 반은 반달을 덮어주고, 이런 모양이죠.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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