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순간 : 시 - 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우리가 보낸 순간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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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날마다 읽고 쓴다는 것, 시), 마음산책, 2010

 

읽다가 멈춘 책을 다시 들추었고, 오늘 끝까지 다 읽었다. 다시 읽어보려고 표시해둔 시를 살펴보는데, 2020년 10월 10일 새벽 별세한 이윤설 시인의 시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가 실려 있다. 시는 시인을 닮는다고 했던가. 아니면 시인이 시를 닮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인은 외롭지 않겠다. 누군가는 시인이 낳은 시를 찾아 읽고 낭송하고 새겨볼 테니까.

 

 

-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63-64쪽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꺼내놓고 보니, 내가 삼킨 새들이 지은/ 전생이구나/ 나는 배가 쑥 꺼진 채로/ 무릎을 세우고 앉아서/ 점점 투명하여 밝게 비추는 이 봄// 저 세상이 가깝게 보이는구나// 평생을 소리없이 지옥의 내장 하나를 만들고/ 그것을 꺼내어보는 일/ 앞발로 굴려보며 공놀이처럼/ 무료하게 맑은 나이를 보내어보는 것/ 피 묻은 그것,//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보는 것,// 너무 밝구나 너무 밝구나 내가 지워지는구

 

- 박준, 연, 76-77쪽 부분

 

··· 입술을 깨물던 당신의 꿈에 광부들은 휘파람을 불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것이 그날 나의 문명(文明)이었다 광부의 휘파람은 탄광 입구의 새 소리를 닮았다가 무너지는 갱도에서 새나오던 가스 소리를 닮았다가 혼들의 울음소리를 검게 닮아갔으니// 손이 찬 당신이 물컵을 내려놓았다 번진 입술자국이 새가 날아오르기 전 땅을 깊게 디딘 발자국 같아, 아직도 살아남은 당신의 말들//

 

 

 

- 허은실, 물이 올 때 40-41쪽 부분

 

물금을 새로 그으며/ 어린 고둥을 기르는 것은/ 자신의 수위를 견디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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