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문학 읽기 2012-2020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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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책에 빠져 죽지 않기(로쟈의 책읽기 2012-2018), 교유서가, 2018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책을 사랑한다. 바이올리니스트가 왼쪽 어깨에 바이올린을 올려놓고 계단을 올라가듯 머릿속의 각인된 악보를 짚어가듯, 책의 문을 두드리고, 활자로 가득찬 아무도 없는 집을 방문하는 일, 그러므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



책과 독서를 추종하거나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강가에서 주워온 작은 조약돌을 생각의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보는 일, 보드랍게 나의 체온을 내가 느끼게 해주는 그 촉감. 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약한 '디지로그'적인 삶을 추구하고 싶다.


유명 '서평꾼' 로쟈의 책은 '비독서'를 위해서 선택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서평의 목적은 독자로 하여금 책을 안 읽어도 그 책의 메시지를 알게 하거나, 책을 읽은 척 하게 하거나, 그 책을 읽지 않도록 판단하게끔 하는 것. 이 서평집을 읽으면서 독서의 편식으로 인해 소흘했던 고전과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여러 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성일의 "한 권의 책"과 "책으로 만난 사상가들"을 온라인 중고서점에서 구입했다.


2012-2108년 기간의 여러 매체에 실은 비문학의 서평을 분야별로 담았는데,2016-2018년의 비교적 신간에 대한 서평은 드물고 주로 2010년대 초반의 책들이 많다. 최근에 출간된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와 짝을 이룬다.



로쟈의 서평집은 독자들에게는 험난한 책의 바다에서 독서의 방향을 잡아주는 종이로 만든 덫이다.




- 사사키 아타루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일종의 광기이고 도박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고 본격적으로 혁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울 첼란의 시구를 제목으로 가져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이다. ‘책과 혁명’이라고 했지만 둘은 접속과 ‘과’ 보다는 ‘또는’을 통해 만난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혁명에 관한 책’이나 ‘책’을 통한 혁명이 아니라 ‘혁명으로서의 책’ 또는 ‘책이 된 혁명’이기 때문이다. 33쪽 (···) 특히 그가 ‘대혁명’이라고 부르는 루터의 종교개혁, 무함마드의 혁명, 12세기 해석자 혁명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그는 “과거의 혁명이 아무리 피로 물들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본질은 폭력이나 주권탈취가 아니라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33쪽


- 서평은 어떤 책을 한번 읽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단하는 자료를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즉 비평이 재독의 권유라면 서평은 일독의 제안이다. 90쪽

- 서평의 기능은 이런 필요에 의해 도출된다. 어떤 책을 읽고 싶게 하거나, 읽은 척하게 하거나, 안 읽어도 되게 해주는 것이다. 91쪽

- 읽은 척하게 해주는 용도라면 몇 가지 요건은 생각해볼 수 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은 서평자가 책을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따라서 서평의 몫은 그것을 다른 독자에게 요렁껏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책이 어떤 주제의 내용을 어떤 시각에서 다루고 있으며, 주요한 메시지는 무엇이고, 이것이 우리에게 갖는 의의는 또 무엇인가를 짚어주어야 한다. 92쪽


- 올바름이란 무엇인가(국가·정체(政體), 플라톤 지음, 박종현 옮김, 서광사, 2005)


올바름이 올바르지 못함보다 더 낫다는 주장을 펼치기 전에 필요한 것은 올바람에 대한 정의다. (···) 특이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취한 절차다. 올바름에는 개인의 올바름과 국가의 올바름, 두 가지가 있을 터인데, (···)

그런데도 먼저 소크라테스의 주장을 따라가면 그는 국가를 구성 (177쪽)하는 세 계층이 각자의 역할과 직분에 충실할 때 국가가 올바른 상태에 놓인다고 말한다. 생산자와 전사, 통치지가 그 세 계층이며 절제와 용기, 지혜가 그들이 가져야 할 각각의 미덕이다. (···) 국가의 올바름이 그렇게 가능하다면 개인의 경우는 어떤가.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혼 또한 국가와 마찬가지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욕구와 격정, 이성이 그 세 부분이며 이는 국가를 구성하는 세 계층에 대응한다. (···) 결국 올바름은 훌륭한 상태로서 혼의 건강을 뜻하며 올바르지 못함은 나쁜 상태로서 혼의 질병을 가리킨다. 178쪽


- 철인통치론이 남녀평등론이나 처자공유론보다도 더 파격적인 주장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180쪽


- 신들은 어떻게 죽었나(‘니체와 철학’, 질 들뢰즈 지음, 민음사, 2012)

이 복수주의가 들뢰즈가 강조하는 니체 철학의 본질이다. 더 나아가 그는 복수주의가 철학의 고유한 사유방식이자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들뢰즈에 따르면 니체는 ‘위대한 사건들’을 믿은 것이 아니라 사건의 복수적 의미를 믿었다. 모든 사건과 현상, 말과 사유는 다수의 의미를 갖는다. 185쪽


- 바우만에게서 배우는 희망(‘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궁리, 2014)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인가. 공동선이 실현된 사회라고 해보자. (···) 그렇지만 바우만은 그런 상상보다 더 중요하면서도 힘든 일은 누가 그것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궁색하다면, 그것은 결정적으로 권력과 정치의 분리 때문이라고 바우만은 말한다. 그의 예리한 통찰에 따르면 권력이란 ‘뭔가를 행하는 능력’이고, 정치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흔히 이 둘은 결합되어 있었지만 세계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따로 분리되었다. 권력은 초국가적이고 전 지구적인 공간으로 확산된 반면에 정치는 지역적 경(205쪽)계 안에 머물게 되면서부터다. 206쪽


- 정치적 진보주의와 지능의 역설(지능의 사생활, 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2)

“지능이 높은 개인들은 진화가 우리에게 설계해놓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선호와 가치관을 갖고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 349쪽

지능의 역설에 따르면 이런 경우 지능이 높은 개인과 집단이 반대 경우보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와 수용력이 더 크다. 달리 말하면 인구의 평균 지능이 높을수록 그 정부는 더 민주적이다.

정치적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도 지능의 역설은 적용된다. “유전자적으로 무관한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이들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으로 진보주의를 정의한다면 이것은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 351쪽


- 국민 통합은 어떻게 가능한가(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 지음, 갈라파고스, 2012)



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가? 프랭크에 따르면 그들의 정치적 판단 기준이 경제가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다”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보다도 보수적 가치가 더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된다. 그 결과 선거는 ‘계급전쟁’이 아닌 ‘문화전쟁’의 장이 된다. 378쪽


- 가부장적 가족주의에 맞서는 국가와 개인의 연대(이상한 정상가족, 김희경 지음, 동아시아, 2017)



“가는 가족 해체보다 여전히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적 질서를 근간으로 한 완강한 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이 가족주의는 가족 안팎에서 폭력을 생산한다. 저자의 구분법은 아니지만 ‘안에서의 폭력’과 ‘바깥으로의 폭력’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가족 안에서 가족주의는 자식을 소유물로 보게끔 한다. 그 결과 체벌과 폭력을 ‘사랑의 매’로 미화한다. (···)

다른 한편으로 가족주의는 가족 바깥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차별한다. 이른바 정상가족과 비정상가족을 나누고 가부장적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비정상’과 ‘부도덕’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한국 가족주의의 양태다. 465쪽


저자는 스웨덴 모델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부모의 체벌 금지와 아동 수당 지급, 아동 인권에 대한 강조를 통해 아이들도 부모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부모 자산에 대한 조사가 없는 학생 대출을 통해 청년들이 가족에서 독립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했다. 부부의 개인별 분리과세, 보편화된 공공보육 시스템으로 여성의 배우자에 대한 의존과 종속의 여지를 없앴다.” 469쪽


- 새로운 사랑,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망(폴리아모리, 후카미 기쿠에 지음, 해피북미디어, 2018)


폴리아모리란 무엇인가. ‘자신의 교제를 공개하고 합의한 후에 만들어가는 복수의 사랑’이다. 요점은 공개와 합의다. 모노가미에서라면 “당신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라는 고백은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지만 폴리아모리에서는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 된다. 폴리아모리는 단지 섹스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유대를 강조하기에 스와핑과 구별된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자신이 사랑하는 특정 사람들과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471쪽


- 무성애를 말하다(무성애를 말하다, 앤서니 보게트 지음, 레디셋고, 2013)


먼저 무성애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남성이나 여성, 혹은 양성 모두에 대해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무성애다. 478쪽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니 모호하다. 무성애라고 해서 로맨스가 결여된 것은 아니며 성적 매력과 로맨틱한 매력은 다르다고 하기 때문이다. 섹스와 로맨스는 서로 관계가 있지만 불가분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신체적 흥분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성 경험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람이 무성애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없다. 무성애를 결정하는 것은 성행위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결핍이다. 479쪽


무성애자는 대략 70퍼센트가 여성이라고 한다. 몇 가지 요인이 있다. 여성은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낮아서 자위 욕구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타인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빈도도 낮다. 479쪽 또 성애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연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발기는 명확한 반면에 질의 반응은 미묘한데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이 성애에 목표 지향적인 데 비해, 여성의 욕망은 좀더 모호한 것도 관계가 있다. 480쪽


-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우에즈 지즈코 지음, 은행나무, 2012)


우에노 지즈코의 정리를 따라가보면 세지윅은 먼저 ‘호모섹슈얼’과 ‘호모소셜’이라는 두 개념을 구분한다. 호모섹슈얼이 남성 간 성애를 뜻한다면 호모소셜은 성적이지 않은 남성 간 유대를 가리킨다. 개념적으로는 구분되지만 호모소셜에는 호모섹슈얼한 욕망이 포함되어 있기에 호모소셜리티(동성 간 유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호모섹슈얼리티(동성애)를 엄격하게 배제할 필요가 생긴다. 즉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는 호모소셜리티의 필수적 구성요소다. 그리고 이런 남자들끼리의 연대로서 호모소셜리티(동성 사회성)를 유지하기 위해 이용하는 장치가 ‘여성을 성적 객체화’하는 것이다. (···)

남자들끼리의 연대가 성립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성이 되지 못한 이들과 여성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차별화해야 한다. 이것이 여성 혐오의 작동 원리다. 세지윅에 따르면 남성은 자신을 남성으로 인정해주는 남성집단으로부터 인정을 받음으로써 성적 주체가 된다. 491쪽


- 모든 책은 여행서다(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책세상, 2005)


“세계는 책이고 여행은 독서이며 모든 책은 여행서다.” 그러니 애초에 ‘여행 안 가는 사람이 읽는 여행서’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여행 안 가는 사람’이 아니라 ‘앉아서 여행하는 사람’이고, ‘여행 가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다니며 책을 읽는 사람’이다. 594쪽


- 중년 이후의 삶(남자 나이 45세, 우에다 오사무 지음, 더난출판사, 2012)


저자는 46세에 법학전문대학원에 다시 입학하여 변호사 자격을 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면서 공부에서도 목표를 명확히 하고 최단 경로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독서의 경우에도 다양한 독서 대신에 그가 권장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구축하기 위한 독서다. 목적의식을 갖고 책을 선택하되, 한 권을 읽고 나면 첫 번째 책과 다른 관점에서 쓰인 책을 읽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618쪽


- 프로이트의 원인론 vs 아들러의 목적론(미움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지음, 인플루엔셜, 2014)


프로이트는 과거의 트라우마(심리적 외상)가 현재의 나를 지배한다고 보는 ‘원인론’의 입장이라면, 아들러는 정반대로 개인은 각자가 설정한 목적에 따른다는 ‘목적론’을 주창했다. 663쪽 또한 아들러는 인간의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663쪽 고 주장하며 타인과의 인정 투쟁에서 탈피하라고 충고한다. 그는 과제분리를 요구하는데,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 그런 분리를 통해서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이 대인관계에 대한 아들러의 처방이다. 6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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