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문을 열고 현관 밖으로’(황인찬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 2019)

 

시집을 여는 시, '물가에 발을 담갔는데 생각보다 차가웠다 그러나 아무것도 해명된 것은 없다'에서 '아름답고 평화로운 일상을 위해 무고한 한명의 아이를 영원히 지하실에 가두는 어떤 도시에 대해서'라는 구절부터 눈에 띈다. 어설라 K. 르귄의 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문장. 

두번 째 시집 "희지의 세계"가 밖을 향해 창문을 여는 시집이었다면, 이 시집은 문을 열고 세상을 향해 현관을 나서는 시집 같은 느낌이 든다. 조금 더 현실적이고, 경험이 녹아 있고, 서사적 요소가 느껴졌다. 동성애를 하나는 은유적으로, 하나는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떡을 치고도 남은 것들'과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도 흥미롭다. 



- 꽃과 고기 49-50쪽

 

너는 고기를 뒤집는다/ 붉은빛이 사라진다/ 다시 입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의 행렬// 사랑을 중단하고/ 사랑을 명령하는// 아름다운 고기들은 맛이 좋고/ 몸에도 좋고// 아 더는 못 먹어/ 그런 생각이 들 때까지 고기를 먹었는데// 하지만 사랑에는/ 중단이 없고 명령이 없는데/ 너는 자꾸 고기를 뒤집고// 새까맣게 타버릴 때까지/ 숯덩이가 되어버릴 까지/ 아 맛있다// 그런 생각이 멈출 때까지// 고기를 뒤집으면 고기가 되고,/ 고기를 뒤집으면 맛이 생기고,// 사람은 정말// 고기를 왜 먹나 몰라// 어금니에 낀 고기를 빼내느라 고생하며 사랑을 했지

 

 

-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 150-151쪽

 

공원에 떨어져 있던 사랑의 시체를/ 나뭇가지로 밀었는데 너무 가벼웠다// 어쩌자고 사랑은 여기서 죽나/ 땅에 묻을 수는 없다 개나 고양이가 파헤쳐버릴 테니까// 그냥 날아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날 꿈에는/ 내가 두고 온 죽은 사랑이/ 우리 집 앞에 찾아왔다// 죽은 사랑은/ 집 앞을 서성이다 떠나갔다// 사랑해, 그런 말을 들으면 책임을 내게 미루는 것 같고/ 사랑하라, 그런 말은 그저 무책임한데// 이런 시에선 시체가/ 간데온데없이 사라져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다음 날 공원에 다시 가보면/ 사랑의 시체가 두 눈을 뜨고 움직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