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0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학창 시절에는 허풍이 심한 친구가 반에 한 둘은 있었다.

검증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자신이 마치 겪거나 성취한 것처럼 말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 동창 중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자신이 그 당시 최고로 인기를 누리던 걸그룹의 팬클럽 임원이며

자신이 기획사로 찾아갔을 때 회사 직원이 에스코트를 해주었다는 등의 주장이나

자기는 앉은 자리에서 삶은 계란 한 판을 다 먹었다는 주장

전국 모의고사에서 전국 3퍼센트 안에 들 수 있었는데 마킹 실수 때문에 점수가

잘 안나왔다는 말 같은 것들이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그를 구라쟁이라고 비난했고 물론 믿지 않았다.

그가 사실이라고 말한 것들의 진실성에 대한 커다란 의문을 품은 것인데,

이 책을 읽고 보니 핵심은 진실성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서 개연성 없는 사실을 나열한 것에 대한 잘못이 훨씬 더 컸다.

그가 주장한 사실들과 인물들이 그의 이야기 안에서 실제 사실과 개연적 사실과

허구와 적절히 섞여서 우리가 이야기에 빠지게 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그토록

그를 비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좀더 철저하게 사전지식을 쌓고 인물에 대한

탐구를 하고 동선과 스토리를 짰다면 우리는 그의 스토리텔링을 칭송했을 텐데.


가보지 않은 곳과 대충 지나친 곳과 갔으나 잊어버린 곳에 대해 특정한 상황에서

대화를 하거나 말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마르코 폴로나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윌리엄 포그처럼 상상력과 총체적 시각을 가지고 내면의 독립된, 나만의 우주

를 구축하는 일은 비단 소설가를 비롯한 작가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도 스며들지 않는 꽉 막힌 성이 아니라 담장은 존재하되 언제나 열린 구조의

내면의 공간을 갖는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이런

요지의 주장을 문학 텍스트와 결부시켜 논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창작자에게도 무척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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