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외제니 베글르리 지음, 이소영 옮김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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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말은 그대를 다른 유일한 존재에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어준다. 그들이 놀라도 받아들여라. 다른 이들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대의 행동은 그대에게서 출발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대 안에 시작의 은총이 있으니 지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되어라. 그대의 행동은 결정하자마자 그대에게서 벗어나고 그 결과는 파도처럼 밀려온다.
 

침묵하는 대신에 말하고 실행하거나 감내하는 대신에 행동하라. 이로부터 의미가 솟아날 것이다.

- p.91

 

 고독한 편이 더 좋은가? 그러나 그대의 지혜도 함께하는 사람이 없으면 메말라 버릴지 모른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의 마음에 든다는 뜻이 아니라 변화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남의 마음에 들려고 신경쓰는가? 그러나 남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벗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pp.149~150

 

불안을 아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결코 경험한 적이 없어서, 또는 그 속에 빠져들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길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맞서야 하는 모험이다. 따라서 이 점에 대해 올바로 알게 되면 가장 높은 수준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인간이 천사나 짐승이라면 불안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총합체인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고, 외부에서 그에게 부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 의해 생겨난 불안이 깊을수록 그는 더욱 인간답다. .... 불안은 자유의 가능성이다. ... 그리고 가능성은 가장 명백한 범주다.

- 키에르케고르, <불안의 개념> p.175

 

"자유가 가장 어려운 것인 까닭은 매순간 용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p.198

 

 

외제니베글르리, <더 나은 삶을 위한 철학자들의 제안> 中

 

 

+) 이 책은 자신에 대한 신뢰와, 타인과의 관계, 시간, 죽음, 자유, 사랑, 기쁨을 테마로 철학자들의 생각을 필두로 글로 펼쳐낸다. 철학자들의 생각보다 오히려 그것을 쉽게 풀어낸 글쓴이의 사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있지만, 그래도 읽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혹은 자신을 올바르게 보기 위해 읽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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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랜덤 시선 7
김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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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한 사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파헤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을 어제까지 휴지로 덮어두었다는 건 우리 생각이고 내 생각은 또 다르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한편으로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하고 다닌다 심지어 나한테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는 잘못한 적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모른 척할 때가 더 많다 모른 척하고 넘어갈 때가 더 많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그래서 더 용서받지 못할 인간인가 그렇다와 아니다 사이에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 불충분하다는 증거다 내가 나를 방면하는 것도 우리가 눈감아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모른 척할 때가 더 많다 모른 척하고 넘어 갈 때가 더 많다 나는 끝까지 결백한 사람이고 우리는 그걸 파헤치고 싶을 때만 파헤친다 그럴 때가 더 많다

 

 

김언, <거인> 中

 

 

+) 나를 쪼개어 본다면 어떻게 나누어질까? 그것이 가능할까? 그의 시에는 유달리 '입술, 이빨, 혀, 코, 입, 눈, 얼굴, 몸'등의 신체 부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그게 신체의 일부인지, 화자의 전부인지, 화자를 대신하는 대유적 표현인지 구분을 지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건 '나' 혹은 '우리'로 설명하고 있는 위의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너가 아니라 우리이며 우리는 나이다. 결국 '나'는 타인과의 사이에서 생성되는 자아와 본래의 자아로 나뉘는데, 그것이 곧 우리이자 나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이러한 경계지음에 대해 조롱하며 경계없음의 실체를 드러내는지도 모른다. "마멸하고 없는 순진한 돌덩이가 그의 얼굴이다. / 없는 사람을 중심으로 앞에서 봐도 투명하고 / 뒤에서 봐도 덩어리가 분명한 공기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 / 그 자리의 공기는 그 자리의 공기를 향해서 달려간다"([불멸의 기록]) 공기가 공기에게 달려가는 것, 공기의 일부, 그리고 공기의 실체, 그것은 곧 공기이다.

 

시인은 잘게 부수거나 나누고 혹은 합치거나 섞어도 결국 그 자체의 공기가 되는 성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성질은 추상적인 관념에도 적용되는데 '불안, 공포, 죽음, 침묵' 등이 그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것을 향해 가는 것, 그렇게 무수한 변화와 변모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결국 본래로 돌아가는 것. 이 시집에서 시인은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서 본래의 자기를 되찾는 공간으로 초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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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문열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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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며 축적이란 말도 그에게는 익숙한 것이 아니었고, 권력욕이나 명예욕 같은 것에 몸달아 본 적도 없었다. 언뜻 보기에는 분방스럽고 다양해도 사실 그가 취해온 삶의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자기를 사로잡는 여러 개의 충동 중에서 가장 강한 것에 사회적인 통념이나 도덕적 비난에 구애됨이 없이 충실하는 것, 말하자면 그것이 그를 이해하는 실마리이기도 한 그의 행동 양식이었다.

- [금시조]

 

하지만 싸운다는 것도 실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가 그러했고, 누구와 싸워야 할지가 그러했고, 무엇을 놓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가 그러했다. 뚜렷한 것은 다만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뿐- 다시 한 번 어른들 식으로 표현한다면, 불합리와 폭력에 기초한 어떤 거대한 불의가 존재한다는 확신뿐- 거기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대응은 그때의 내게는 아직 무리였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마흔이 다 된 지금에조차도 그런 일에는 온전한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내가 그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 그리하여 그가 구축해 둔 왕국을 허물려들지 않는 것뿐이었다. 실은 그거야말로 굴종이며, 그의 질서와 왕국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전제와 결합되면 그 굴종은 곧 내가 치른 대가 중에서 가장 값비싼 대가가 될 수도 있으나 이미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한 내게는 조금도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이문열 문학상 수상 작품집> 中

 

 

+) 이문열이란 작가의 행적에 대해 말이 많고, 그의 소설에 대한 평자들의 판단도 극과 극을 달리며 논란이 많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재미있는 만큼 치열하게 글을 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한 인간이 어떻게 권력에 순응하여 가는지 철저하게 분석한 소설로서 권력과 순종, 타협과 비굴, 반항과 순응의 논리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초등학생 교실을 배경으로 초등학생인 석대와 병태의 지배 구조는 사회의 지배 구조와 흡사하다.

 

그 속에서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의 힘과 단맛 그리고 쓴맛까지 모두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 어떤 사회학적 이론보다도, 어른들의 사회에서 보게되는 장면보다도 정확하게 우리의 머리에 새겨진다. 학생들이 읽어도, 어른들이 읽어도 충분히 공감가는 작품이다. 이 외에 <금시조>, <시인>, <시인과 도둑> 등의 작품은 당시 작가가 짚어주는 당대의 문제점을 보게 된다. 작가에 대한 여러가지 평들을 떠나서 일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권력자와 그 아래 소시민들의 구도를 잘 제시한 작품으로 수작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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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랜덤 시선 9
안현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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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물회'

 

말린 물고기만 씹으며 겨울을 난 사내가

물고기를 물에 말아 알뜰하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다

사랑할 때 애인의 몸을 뜯어 먹는 여자처럼

 

시든 언어만 씹으며 늙어가는 여자가

언어를 언어로 꿰어 멸망한 부족의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

죽을 때 스스로의 몸을 깊은 숲에 두는 족장처럼

 

사위어가는 것들의 모든 우울함으로 꽃은 피고

우울한 물고기의 이름은 우울한 물고기다

그것이 한계다

 

한계와 임계 사이에 언어가 있다

언어는 우울한 물고기 이름이다

이를테면 제대로 실패한 자만이 실패를 싱싱하게 맛볼 수 있다

 

 

안현미, <곰곰> 中

 

 

+) 안현미의 시는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상상의 세계로 꾸며졌다. 그것을 환상의 표상들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 근원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시인은 서정적인 틒 안에서 도발적인 시적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 근접한 것임에도 불구고하고 시인의 작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서정을 끌어들인다. 그것을 이해하느냐 혹은 이해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안현미의 시를 극과 극으로 판단하는 결과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인이 환상적인 표징들보다 좀더 서정에 공들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상상의 세계에서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 시인, 혹은 언어, 인간 등등 뿌리는 그것에서 시작하여 지나치게 많은 가지를 치고 만들어졌다. 시인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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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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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위인전 속 인물들을 만나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진짜로 그 어린 나이에도 자기가 하는 행동에 확신이 있었는지. 겁나거나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지. 냉동창고 담벼락에 기대앉아 속엣것을 올리면서 나는 반드시 유관순 언니를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

p.69

 

"글을 쓰다 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 가는 것도 같고. 맘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

p.137

 

"내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정해둔 규칙 같은 건 있어.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그 네 가지만 안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p.220

 

나는 이제 어른이 된다는 것의 핵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이를 먹고 몸이 커지고. 고래배를 타거나 시집을 가는 것 말고. 엄살, 변명, 핑계, 원망 하지 않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이 그것 같았다.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갖는 것. 그것이 쨍쨍한 황톳길을 땀흘리며 걷는 일이든, 미끄러지는 바위를 한사코 굴려올리는 일이든. 푸른 하늘에 닿기 위해 발돋움하는 영상이든,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p.256

 

 

김형경, <꽃피는 고래> 中

 

 

+) 김형경의 소설을 읽다보면 감정의 절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끼게 된다. 이 소설에는 한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등장한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들이 공장을 지을 때까지 자신들의 바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몰랐다. 어느 순간 바다에서 수영을 할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난다. 그들은 그렇게 바다를 잃었다. 외지인들이 등장하면서 할아버지는 고래를 잡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의 공장을 반대하면서부터 나라에서는 이상한 법을 만들어 고래잡이를 금지시켰다. 졸지에 할아버지는 고래를 잃고, 자신의 삶을 잃었다.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게 되고 한순간에 홀로 남게 된다.

 

그렇게 한 순간에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그 잃어버린 것을 단 한번이라도 느껴보고자 기회를 만든다.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은 고래를 잊지 않기 위해 고래 박물관을 만들고,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고래 잡이 배를 몰며 바다로 뛰어든다. 그것은 할아버지의 열정이며 삶이며 희망이다. '나'는 잠재된 분노를 친구에게 터트리고 정신적인 성장의 고통으로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그것도 할아버지와 고래잡이 배를 경험하게 되면서 깨닫게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갖는 것이라는 걸. 누구도 확신이 있어서 자신의 길을 걷거나 꿈을 갖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기들이 상상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시작한다. 설사 그림이 좀 달라지면 어떤가. 여러번 고쳐가야 완성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법이다. 그것처럼 삶도 많은 수정을 거쳐야 완성을 향해 가는 것이다. 김형경은 이 모든 이야기를 감정을 싹 뺀 절제된 어조로 그린다. 그것이 오히려 더 슬프고 안타까움을 유발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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