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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ㅣ 랜덤 시선 9
안현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언어물회'
말린 물고기만 씹으며 겨울을 난 사내가
물고기를 물에 말아 알뜰하게 소주 한 병을 비우고 있다
사랑할 때 애인의 몸을 뜯어 먹는 여자처럼
시든 언어만 씹으며 늙어가는 여자가
언어를 언어로 꿰어 멸망한 부족의 목걸이를 만들고 있다
죽을 때 스스로의 몸을 깊은 숲에 두는 족장처럼
사위어가는 것들의 모든 우울함으로 꽃은 피고
우울한 물고기의 이름은 우울한 물고기다
그것이 한계다
한계와 임계 사이에 언어가 있다
언어는 우울한 물고기 이름이다
이를테면 제대로 실패한 자만이 실패를 싱싱하게 맛볼 수 있다
안현미, <곰곰> 中
+) 안현미의 시는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상상의 세계로 꾸며졌다. 그것을 환상의 표상들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 근원에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시인은 서정적인 틒 안에서 도발적인 시적 혁명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 근접한 것임에도 불구고하고 시인의 작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서정을 끌어들인다. 그것을 이해하느냐 혹은 이해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안현미의 시를 극과 극으로 판단하는 결과가 나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인이 환상적인 표징들보다 좀더 서정에 공들였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상상의 세계에서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시, 시인, 혹은 언어, 인간 등등 뿌리는 그것에서 시작하여 지나치게 많은 가지를 치고 만들어졌다. 시인은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