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염세주의자 - 흔들리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마지막 태도
염세철학가 지음, 차혜정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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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학자들은 대부분 염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이 염세를 보는 관점이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염세는 일종의 정서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을 표면적으로 보고 경험할 때, 그것이 불쾌한 감정을 불러오면 '염세적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철학자들의 염세는 '세상 전반을 꿰뚫어보는 통찰'이다.

p.9

중국불교는 유가의 윤리사상과 결합하였기에 사람들에게 선함을 권하고 '불교의 법이 세상의 법과 동떨어지지 않았음'을 강조했으며, 도가의 무위사상과 결합했기에 마음의 집착을 버리는 것을 중시하며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을 띠게 되었다.

요컨대 불계가 중요하게 여기는, 다투거나 서두르지 않고 속세에 휘둘리지 않는 삶의 태도는 기본적으로 불교사상과 도가사상이 융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장자>가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다.

p.20

장자는 세상에 객관적으로 당연한 것은 없다는 점으 강조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만의 기준으로 내린 판단에 불과하다. 모든 가치는 주관적이며, 세상에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느 기준은 없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사상 역시 자기만의 기준이 지어낸 단면에 불과하다.

p.78

진리가 작은 갈등에 묻히면 진리를 해석한 글도 그럴듯한 논리에 휘둘리게 된다. 유가와 묵가의 논쟁도 이렇게 비롯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상대방이 옳지 않다고 비판했으며,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상대방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를 비판했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타인의 관점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눈이 무엇으로 가려져 있었는지 일깨워줘야 한다.

<<장자>>, <제물론> 편

p.81

우리가 '세상에 진리가 없다'라고 말할 때의 의미는 인생을 함부로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진리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진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인생에는 도처에 진리가 있으므로 한두 가지 가치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

p.98

우리의 사고와 느낌은 저절로 생겨나기 때문에 떠오르는 생각을 인위적으로 그치게 할 방법은 없으며,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을 방법도 없다. 우리 내면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과 의식은 절대로 내가 아니다.

p.127

우주의 관점으로 보면 만물에 귀천의 구별이 없다.

<<장자>>, <추수>편

p.161

우리는 왜 늘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푸념할까? 우리가 모든 일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장자는 인생이 꿈이라고 여겨 살면서 맞닥뜨리는 일들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p.181

길을 걸을 때 발자취를 남기지 않기는 쉽지만 땅을 딛지 않고 걷기는 어렵다. 자신의 생각대로 형세를 주도하면 자칫 일을 망친다. 그러나 우주에 맡겨 저절로 흘러가게 하면 이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정저>>, <인간세>편

p.199

염세철학가, <당당한 염세주의자> 中

+) 이 책의 저자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웠던 장자의 사상에 대해 논의한다. 쓸모없는 것들이 힘이 된다는 설명부터, 세상에 모두 통하는 진리는 없다는 생각, 그리고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 등등에 대해 다룬다.

삶의 진리와 가치란 무엇인가 늘 고민하던 저자의 관심이 이 책에 드러난다. 장자가 말한 파격적인 발상과 의견들을 우리가 같이 공유하며 의견을 나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장자가 언급하는 철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통해 맛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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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튼 시리즈 20
김혼비 지음 / 제철소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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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어떤 대상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하면 그 마음이 감당이 잘 안 돼서 살짝 딴청을 피우는, 그리 좋다고는 하지 못할 습관이 이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다 보면 지나치게 진지해지고 끈적해지는 마음이 겸연쩍어 애써 별것 아닌 척한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는 걸 말이 되게 해보려고 이런저런 갖다 붙일 이유들을 뒤적이기도 한다. 그래서 술을 좋아하는 것 같다. 술은 나를 좀 더 단순하고 정직하게 만든다. 딴청 피우지 않게, 별것 아닌 척하지 않게, 말이 안 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채로 받아들이고 들이밀 수 있게.

p.12

매번 아주 즐겁게 마셨다. 간을 빼놓고 온 토끼처럼 우울함만 쏙 빼놓고 모든 술자리에 임했다. 그 누구에게도 나의 상태에 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건 손에 잡히는 이유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울며불며 고통을 호소하는 건 너무 뻔해 보였다. 안 그래도 비참한데 뻔하기까지 한 건 싫었다. 그냥 그때는 이렇게 힘들어도 티내지 않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도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 꿋꿋하게 '어른다운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그 기분이, 세상에게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어렸다. 매우 어렸다.

p.53

게다가 '마시더라도'에 해당하는 상황이 지나치게 세분화되었다는 점에서 결국 마시게 될 거라는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가급적'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편리한 말인지 '하지 말라'는 말을 꾸며주는 척하지만 슬그머니 '해도 된다'의 편도 들어주니 말이다. 어쨌든 규칙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좋을 것이다.

p.107

술이란 건 참 시도 때도 없이 시제에 얽매이지 않고 마시고 싶다는 점에서나, 마시기 전부터 이미 마시고 난 이후의 미래가 빤히 보인다는 점에서나,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앞일 뒷일 따위 생각 안 하는 비선형적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헵타포드어 같지 않은가.

p.110

술꾼으로서 질색하는 것은 술 또는 술 마시는 방식을 강권하는 모든 종류의 행위다. 위계나 관행 때문에 '원치 않는' 푹탄주를 마셔야 한다거나 '원샷'을 강요받는 술자리에는 절대 가지 않는다. 평소 좋아하던 술이라도 강요가 섞이는 순간 술은 변질되어버린다.

p.195

김혼비, <아무튼, 술> 中

+) 이 책은 '아무튼' 시리즈의 하나로 '술'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저자의 술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 술을 마시는 마음가짐, 술마시는 사람들과의 인연, 그냥 먹던 식사도 종류에 따라 안주가 되며 술이 첨가되는 과정, 주사 혹은 숙취의 다양한 모습들, 술을 줄이려는 노력, 술의 종류와 혼술 혹은 밖술 등의 술자리 탐색 과정 등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른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하다. 그래서 가끔씩 웃었고, 또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면서 미소지을 수 있는 책이다. 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술 마시는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접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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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 농산물 MD의 우리 작물 이야기 : #사계절 #힐링 #리틀포레스트
전성배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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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토마토는 시설 재배를 통해 사시사철 만날 수 있는 일반 토마토와는 달리, 2월 말부터 시작해 4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만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대저 토마토는 '봄의 전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 빨갛게 익었을 때 먹을 수 있는 일반 토마토와는 다르게 표면에 초록색이 서려 있는 상태일 때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일반 토마토처럼 빨갛게 익었을 때 먹어도 무방하다. 다만 많이 익을수록 토마토 특유의 단맛이 강해져 대저가 가진 짭짤한 맛은 중화되고 만다.

p.12

설향은 봄으로 넘어갈수록 맛과 신선도에 변화가 생긴다. 설향은 경도가 낮아 기온이 올라가면 과육이 쉽게 무른다.

설향은 이름처럼 겨울에 먹는 것이 더 풍미가 좋다. 앞서 말한 설향의 약점 탓에 봄에는 맛도 식감도 겨울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에는 가격이 저렴해진다는 장점이 있으니 쉽게 물러지는 단점은 아침 일찍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pp.17~19

사실 청매는 덜 익은 만큼 과즙이 적다. 그래서 과즙이 중요한 청이나 술, 엑기스보다는 식감이 중요한 장아찌에 사용하는 것이 알맞다. 청이나 술처럼 매실의 맛과 향이 고스란히 배어 나와야 하는 음식은 오히려 익은 황매와 홍매가 더 좋다. 향은 물론 과즙의 수율면에서도 그렇다.

p.28

하나의 농산물을 전하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긴 시간을 견디는 농부의 삶. 애초에 내가 농산물을 팔기 시작한 이유가 작물을 기르는 사람과 그 삶을 전하는 데에 있었다.

농부는 예측할 수 없는 땅과 자연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따라서 노력과는 별개로 자연의 순리에 모든 걸 맡길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풍작에도 흉작에도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p.33

정리하자면 단맛보다는 아삭한 식감이 중요한 경우에는 색이 선명하고 단단한 것을 고르면 되고, 과육이 부드럽고 당도가 높은 참외를 원한다면 밑동의 냄새를 맡아 은은한 향내가 느껴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참고로 외피의 흰 줄이 탁한 참외는 과숙된 참외일 수 있으니 주의하자.

p.44

무화과는 '꽃이 없는 과일'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정확히는 '꽃이 보이지 않는 과일'이라 말하는 것이 맞다. 무화과를 반으로 잘랐을 때 보이는 가느다란 줄기 혹은 섬유질 같아 보이는 것들이 바로 무화과의 꽃이기 때문이다. 무화과는 다른 과일처럼 꽃이 진 후에 열매가 맺히는 것이 아니라 꽃이 꽃 주머니 내부에서 피어나 과실이 된다. 그러니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꽃 그 자체'를 먹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p.97

땅이 작물에 빼앗긴 영양분을 채울 수 있도록 쉼의 시간을 주는 것. 농사의 핵심이 '땅심 관리'에 있음은 우리 모두 새겨야겠다.

p.122

전성배, <계절을 팔고 있습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과일을 판매하는 사람이다. 오프라인 공간에서도 과일을 판매해보았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 글에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과일이 우리의 손에 닿기까지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과일의 유통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계절별로 생산되는 싱싱한 제철 과일들의 구분법과 과일과 연관된 몇몇 단상들을 엮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과일을 생산하는 농부와, 유통업자와 판매자들의 곧은 마음을 조금씩 보여주고, 또 소비자들로 하여금 그런 부분을 이해하며 과일을 맛있게 먹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따뜻하고 진솔하게 만들어진 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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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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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쓰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얻어 온 물건들은 대부분 버려졌다. 아까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단지 내가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나보다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로 가서 유용하게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물건을 쉽게 얻은 지난날을 반성했다.

심지어 2년이 넘어가도록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물건도 있는 걸 보면, 그것들은 분명 나에게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놔두었으니,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모른다.

p.33

형형색색의 입지 않는 옷부터 버리기는 아깝고 입기엔 영 껄끄러운 옷까지 비우고 나자 옷장은 어느 정도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옷장 겉모습만 좋아진 것이 아니었다. 옷과 나의 관계도 좋아졌다. 옷의 양이 줄어들자 이전보다 내 옷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싫어하거나 입고 싶지 않은 옷들을 비우다 보니, 내게 어떤 옷이 필요한지도 알게 됐다.

p.64

물건을 비울 때 스스로 해보면 좋은 질문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는가? / 단지 미련이 남아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 나를 위한 물건인가, 남을 위한 물건인가? / 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

pp.73~80

우리는 중고 거래로 물건을 비울 수 있었고,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될 만한 약간의 돈을 벌기도 했다.(물론 원래 썼던 돈의 일부가 되돌아온 것뿐이지만) 원하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중고 거래는 참 매력적인 물건 비우기 방법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나는 중고 거래가 습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일단 사보고 '안 쓰면 중고로 팔아버리겠다'는 식의 마음가짐이 나의 소비 습관에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p.84

하지만 물건 비우기를 시작하고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비울 물건을 하나씩 살펴서 골라내고,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고, 햇빛에 바싹 마른 빨래를 개는 일 하나하나를 통해 성취감과 기쁨을 얻는 나를 발견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노트에 할 일을 적었다. 해야 할 일 리스트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 채워졌다. 밥 먹기, 글쓰기, 장보기, 설거지하기, 빨래하기, 영화 보기, 옷 기부하러 다녀오기 등. 거의 매일 해야 할 일을 적고 지워냈다. 단지 생활을 기록하고 달성 여부를 체크했을 뿐인데. 대단한 것을 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성취감이 매일매일 나를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를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었다. 나의 하루, 나의 생활, 다가올 내일 같이 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이 기다려졌다.

pp.124~125

스티브 잡스는 내가 아는 가장 유명한 미니멀리스트다. 그는 늘 같은 디자인의 검은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입고, 그리고 뉴발란스 운동화를 신으며 자신의 복장을 유니폼화시켰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나는 스티브 잡스처럼 가진 옷의 종류를 줄이고, 나만의 시그니처 룩을 만들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일에 집중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냥 옷에 신경 쓰는 시간을 줄이고,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었다.

p.209

에린남,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中

+) 이 책의 저자는 어느날 갑자기 집안일이 귀찮아져서 어떻게 하면 집안일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이 많아서 매번 씻기가 귀찮아졌고, 집안 청소를 하다가 물건들이 많아서 치우는 것이 귀찮아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집안일을 안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물건의 개수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아예 없으면 치울 일도 청소할 일도 없으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기보다, 나를 위한 어떤 목적을 형성한다면 간소하게 사는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매일 하나씩 버리고 정리하면서 하루가 즐거워졌다는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한 책이다. 매일 조금씩 정리하면서 가벼워져야겠다고 다시 결심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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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유서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손화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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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 전부를 빌려 살아왔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한다. 할부는 생각할 수도 없다. 단번에 모든 것을 갚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다.

이제 나는 지나온 삶에 감사하며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삶에는 행복한 순간들이 간간히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단 한 순간도 존재 그 자체에 멈춰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 한 순간도 존재적인 순간은 없었다. 모든 것들은 항상 존재의 성립 과정 중에 있는 셈이었다. 세상에 정적이고 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은 진리일지도 모른다.

p.161

친애하는 알버트,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고립하기 마련이지. 우리끼리는 흔히 지하실로 내려간다고도 해. 오늘 저녁, 내 전화를 받지 않는 당신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p.174

그렇다면 나의 존재와 세상과의 조화는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어쩌면 이것은 머지않은 날 의미 있는 질문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스스로 세상을 벗어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겐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셈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홀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나의 존재적 정체성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p.210

오직 내게 남은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길지도 짧지도 않기만을 바란다. 어쩌면 그 시간은 딱 적당할지도 모른다.

p.225

요슈타인 가아더, <밤의 유서> 中

+) 이 소설 속 주인공 알버트는 불치병에 걸려서 살 날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옛 연인이었던 의사에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이다. 그날 밤 알버트는 가족과의 추억이 존재하는 오두막집으로 찾아가 혼자서 방명록에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이때만해도 그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몸이 굳어서, 결국 나중에는 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살아야하는 인생을 스스로 끝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든 것이다. 그래서 오두막 바로 앞 호수에 스스로 걸어들어가기로 다짐하고 유서를 쓴다.

이 소설에서는 그가 내린 선택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서를 쓰며 그가 겪고 있는 혼란, 당황스러움, 분노, 수많은 생각들에 공감하며 나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점이 의미가 있다. 불치병으로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상태에서, 죽기 직전에 내 주변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개인의 위치를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대륙과의 관계로 곳곳에서 그려낸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인으로서 홀로 선택하고 고민하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의 입장에 공감하며 같이 고민하도록 만든다.

알버트 개인으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선택이 문제겠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죽음과 그가 내린 선택(이를테면 그가 호수에서 자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문제일 것이다. 저자는 알버트의 입장에서 그 모두를 잘 담아냈다.

소설의 절정과 결말 부분에서 저자가 반전 아닌 반전처럼 제시한 스토리 전개는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다 읽고나니 그래서 초반부에 그랬구나 싶게 이해가 되니, 구조를 잘 짠 작품이지 않나 싶다.

내가 죽었을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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