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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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요컨대 나는 신념과 경험에 의하여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즉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단순한 민족이 생계상 늘 하는 일을 인위적인 민족은 이제 오락으로밖에 할 수 없게 된 것과 같다고 하겠다. 땀을 쉽게 흘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이마에 땀을 흘려가며 밥벌이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p.102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pp.129~130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 문명 생활이라고 하는 이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서는 구름과 태풍과 유사와 그리고 천 가지하고도 한 가지의 상황을 파악해야 하므로, 배가 침몰하여 바다 밑에 가라앉아 목표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추측항법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뛰어난 계산가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다.

p.132

 

자연 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감각 기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 존재할 여유가 없다. 건강하고 순수한 사람의 귀에는 어떤 폭풍우도 '바람의 신'의 음악으로 들릴 뿐이다. 소박하고 용기 있는 사람을 속된 슬픔으로 몰아넣을 권리를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p.188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中

 

 

+) 자연인으로 살고 싶다면 먼저 <월든>을 읽어보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월든>은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혼자 보낸 시간들을 써내려간 책이다. 당시 월든 호숫가는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한참은 먼 거리에 있는 깊은 산 속이었다. 보이는 것은 숲, 호수, 하늘, 동물들 뿐인 이곳에서 소로우는 통나무집을 만들어 살았다. 밭을 일구고 고기를 잡으며 원시시절처럼 지낸 것이다.

 

그는 거기서 지내는 동안 대부분 자급자족하며 살았는데, 땀을 흘리며 육체를 움직였고 그것을 즐기고자 노력했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생산했고, 그 외의 시간들은 주변 자연에 온 감각을 곧추세워 마음껏 자연에 취해 지냈다. 그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내가 왜 이렇게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뒤돌아 보게 된다. 그의 말대로 소박하게, 간소하게, 그렇게 살면 어떨까.

 

누군가는 <월든>이 문물과 문명에 대항하는 글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실천하는 사람의 일기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작자의 의도라기 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추구하다 보니 문명의 반대편에 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말도 오해의 소지가 많다. 인간과 자연을 이분화시키는 표현이니까. 그의 말대로 인간은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아닐까.

 

무엇보다 그가 삶이 부러웠는데, 그처럼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으로 필요한 만큼의 양식을 먹으며 사는 것도 꽤 매력적이라고 생각된다. 어찌보면 소로우는 정약용 선생처럼 육체와 정신의 일치를 선호하며 실용적인 삶을 좋아하는 면이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인생을 즐겨라. 나는 <월든>의 자연을 통해 가슴벅차오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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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필요 없어 - 싱글맘과 여섯 살 아들의 평범한 행복 만들기
김양원 지음 / 거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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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인적인 비극은 잊어버려라

우리 모두 애초부터 실패한 인생이다

지독하게 상처를 입어야

진지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숨기려만 들지 말고 그걸 활용해

마치 과학자처럼 그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라

                                             ' 헤밍웨이'

p.6

 

 싱글맘의 가장 큰 애로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 죄 없는 아이의 인생에 상처를 드리우는 것'이라고 나는 답할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 말고, 엄마 입장에서 싱글맘의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다시 묻는다면……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무엇을 먼저 들어야 할지 망설여지지만, 무엇보다도 ‘나 홀로 육아’의 부담이 아닐까 싶다.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일터로 향하는 것, 그것은 고단하지만 보람되다. 하지만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보아줄 곳이 없어 동동거리는 것, 아이를 어딘가 홀로 떼어놓고 일터로 향하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괴롭다.


p.48

 

 

김양원, <아빠는 필요없어> 中

 

 

+) 커피 한 잔 마시려고 간 스타벅스에서 무심코 집어 들었던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소박하다고 해야 할까. 진실하다고 해야 할까.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열하는 것에 믿음이 가는 만큼 안타까운 심정도 공감이 되었다.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만난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들이 각자의 인생으로 돌아가는 것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종종 속상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사이의 아이이다.

 

그도 아니고 그녀도 아닌 존재, 그러니까 온전히 그들과 연관된 채 세상에 태어난 존재. 물론 아이를 위해서 불행한 결혼 생활을 참고 살 필요는 없겠으나, 작가의 말대로 그 아이에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상처를 준 것은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 나는 홀로 육아와 생업을 당당하는 싱글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얼마나 힘들까.

 

혼자서 살 때도 힘든 경우가 많은데 어린 아이를 돌보며 직장 생활을 한다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있지 않는 한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록 그들이 당당해졌으면 좋겠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은 타인에게도 당당한 법이다. 사회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이에게도 솔직하고 당당하게 대했으면 좋겠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끝없이 대화하며 사과를 하기도 하고, 사랑한다고 표현해 주기도 하고. 그렇다면 언젠가 아이가 엄마를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사회에 대해서도 이용할 것은 철저하게 이용하고, 외면할 것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태도를 지녔으면 한다. 사회에서 여자라고 무시할 때, 작가의 남동생의 도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것. 사실 좀 자존심이 상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게 현실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당하게 남동생의 도움을 받아라. 그리고 그게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여기고 스스로를 위해서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했으면 싶다.

 

싱글맘들의 아름답고 열정적인 삶에 파이팅을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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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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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과오는 과오입니다. 나도 변명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과오는 과오로 인정해야 합니다.
 권력의 사유화는 권력의 속성이고 이를 막는 것은 정치의 근본 과제입니다. 수신제가라는 말에 대해서는, 왜곡을 피해야 할 것이지만,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변 관리는 정치인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털어도 먼지 안 나게 살아야지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시민이 당당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사법 절차의 결정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자책골을 넣은 사람에 대한 처분은 여러분이 할 것입니다.

p.19 - [사죄의 글로 쓰려고 한다.]

 

착하게 산다는 것

- 깊이 들어가보니 나만 착하게 산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간접적으로 나쁜 일을 바로 잡는 일.

세상을 바꾸어야 투사 정치인

p.33 - [투사가 되어]

 

언론은 일단 장사가 되는 이야기이다. 일단 보도는 키우고 볼 일이다. 어떤 관점으로 보도를 할 것인지는 각기 태도를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보도의 크기를 줄인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p.70

 

정말 언론은 사회의 공기일까? 정도를 넘으면 흉기가 된다. 카메라도 볼펜도사람도 생각도 흉기가 된다. 그들은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나쁜 일을 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일까?

p.77

 

정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과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객관적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줄 알아야 오늘을 바로 해석할 수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p.233

 

제대로 된 언론이 시민권력으로서 제 자리를 잡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그렇지 못한 언론은 시장권력의 대리인이나 정치권력의 대리인으로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도록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제가 바라는 것입니다.

p.239

 

 

노무현, <성공과 좌절> 中

 

 

+)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 그러니까 이 책에서 작가는 본인이 적는 무엇이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한 권의 회고록으로 기록되길 바랬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회고록의 기준으로, 정치인의 한 사람이었던 분으로, 그의 책을 보았다.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 작가의 위트로 피식 웃게 했던 부분도 있었으며, 내가 전부터 궁금했던 부분들에 명확히 답을 구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회고록이기에 그 정도 선에서 읽었다.

 

정치인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 정치인과 돈은 떨어지기 쉽지 않은 관계라는 것, 그리고 언론의 무서운 힘에 대한 것.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수동적이기 보다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간접적으로라도 나쁜 일을 바꾸려는 자세, 그것이 필요한 삶이 착하게 산다는 것이라는 점을 새롭게 배웠다.

 

언론은 무서운 힘을 가진 권력자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알고 있는 만큼 펜의 힘을 시민의 편에 뒷받침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언론이 공정한 자세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단어, 문장, 심지어 마침표 하나에도 달라질 수 있는 법인데. 더군다나 목소리가 아니라 글로 생각을 드러내는 일이란 무수한 오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언론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공정하고 사실적인 보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들 역시 판단함에 있어서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된다.) 시민들을 현혹하는 글자가 아니라 정보와 지식과 사실을 제공하는 말과 글이 있었으면 좋겠다. 똑같은 사건을 달리 보도하는 언론들. 그것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성숙한 시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 사람의 성공과 좌절, 그리고 한 정치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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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사과
기무라 아키노리, 이시카와 다쿠지 지음, 이영미 옮김, NHK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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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어쨌거나 마음을 고쳐먹어서 다행이라고 했던가? 그러고 나서 바보가 되면 좋다고 말해 줬지. 겪어 보면 알겠지만, 바보가 되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 하지만 죽을 마음을 먹을 정도라면 그전에 한번 바보가 되어 보는 것도 좋아. 똑같은 생각을 품어 본 선배로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어. 한 가지에 미치면 언젠가는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거지."

p.31

 

"아무리 고성능 컴퓨터라도 데이터를 넣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잖아. 데이터는 과거야. 과거의 데이터를 아무리 모아 계산해본들 새로운 건 생겨나질 않아. 미래를 열 수는 없어. 컴퓨터는 말이지, 나한테는 그저 단순한 장난감일 뿐이야. 그런데 결국은 그 기계에 의해 인간이 부려지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 사람이 만든 기계에 사람이 부림을 당할 때가 올 거란 생각 말이야."

p.48

 

개척자는 고독하다. 인류를 위해 뭔가 새로운 것, 진정한 의미에서 혁신적인 것을 이뤄 내는 사람은 예로부터 늘 고독했다. 그것은 기성관념을 깨부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세계관이나 가치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볼 때, 개척자는 질서를 파괴하는 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pp.172~173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건 그렇게 대한한 게 아니야. 모두들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내가 아니야. 사과나무가 힘을 낸 거지. 이건 겸손이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 인간이 제아무리 애를 써본들 자기 힘으로는 사과 꽃 하나 못 피워. 손끝이든 발끝이든 사과 나무 꽃을 피울 순 없지. 그거야 당연한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거야. 온 밭 가득 활짝 핀 꽃을 보고 난 그걸 절실히 깨달았어. 저 꽃을 피운건 내가 아니라 사과나무라는 걸 말이지.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사과나무였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지."

 

 

이시카와 다쿠지, <기적의 사과> 中

 

 

+) 언젠가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아빠, 농사 짓는 사람들은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육체 노동도 노동이지만, 일년 동안 보살펴야 할 농작물을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초조할까요? 그러다 자연 재해나 병충해라도 입어서 수확량이 없게 된다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내가 농부라면 난 몇 달 몇 년을 기다리는 일을 절대 못할꺼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나였기에 '기무라'씨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그의 의지와, 끈기와, 믿음. 자연에 대한 믿음. 10년을 기다리고 사과나무에 열정과 관심을 기울인 결과 그는 농약을 전혀 쓰지 않고도 달콤하고 신선한 사과를 재배할 수 있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사과나무에게 고마워야 한다고 했는데. 그말이 어찌나 그렇게 감동적인지...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무작정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까지 걸고 10년이 넘게 사과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연구한 결과 최고의 사과를 얻었다. 그건 그의 말대로 그만의 노력이 아니다. 그의 대화 신청에 수락한 사과나무의 노력도 있으니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그곳에서 가장 달콤한 열매로, 나무도 우리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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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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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리는 말했다.

"그런 애들 아니에요. 시작은 누구나 있는 법이죠. 부모라면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해요."

그러자 늙은 물쥐가 말했다.

"어허! 부모의 심정 따윈 내 알 바 아니지. 나야 처자식이 없는 몸이니. 사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안 했지. 사랑도 나름대로 가치는 있지만 우정이 그보다 더 고귀한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난 이 세상에서 헌신적인 우정만큼 숭고하고 값진 것은 없다고 봐."

p.39  [헌신적인 친구]

 

"아가씨는 예의를 차릴 줄 알지. 그건 확실해. 하지만 아가씨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사실 아가씨는 다른 예술가들과 다를 바가 없어. 형식과 예의를 지킬 줄은 알지만 진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꿈도 꾸지 않을 거야. 머릿 속에는 오로지 음악뿐이라고. 예술이 이기적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 물론 아가씨의 목소리에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목소리가 아름다워 봤자 아무 의미도, 아무 쓸모도 없으니, 딱하기도 하지."

p.75

 

"사랑이란 정말 어리석은 짓이군. 사랑은 논리학의 반만큼도 쓸모가 없어. 무언가를 증명해내지도 못하고. 허구한 날 일어나지도 않을 일 타령만 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믿게 만들잖아. 사랑은 전혀 쓸모가 없어. 이제는 실질적인 것이 제일인 시대니까 철학과 형이상학 공부나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겠어."

p.79 [나이팅게일과 장미]

 

"하지만 이제 사랑은 식상해. 시인들이 사랑의 싹을 잘라버렸거든. 그자들이 하도 사랑 타령을 해대는 바람에 아무도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어. 당연한 일이야. 진정한 사랑이란 고뇌하고 침묵하는 법. 한때는 나도..... 하지만 지금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로맨스란 한 마디로 지나간 과거야."

p.146 [유별난 로켓불꽃]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 中

 

 

+)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같다.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아우르는 내용들이 그러하고, 거기서 이끌어내는 주제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것들이다. 못생긴 존재는 무엇이든 무시하고 짓밟는 [별아이], 아름다운 공주에게 사랑과 순정을 바치는 난쟁이 이야기 [왕녀의 생일], 인어와의 사랑을 꿈꾸며 영혼을 파는 [어부와 그의 영혼], 예술가의 허영과 교만을 비꼬는 [유별난 로켓불꽃] 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동화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 책은 지독하게 독설적인 장면도 많고,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적나라하다. 오히려 환상적인만큼 사실적인지 않나 싶다. 행복한 결말을 바라는 수많은 독자의 바람을 외면하고 끝난 [행복한 왕자]도 그에 해당한다. 작가는 동화에 주목하기 보다 자신의 생각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에 집중한 것 같다. 냉소적인 작가의 시선이 리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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