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엄마 오리는 말했다.

"그런 애들 아니에요. 시작은 누구나 있는 법이죠. 부모라면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해요."

그러자 늙은 물쥐가 말했다.

"어허! 부모의 심정 따윈 내 알 바 아니지. 나야 처자식이 없는 몸이니. 사실 결혼을 한 적도 없고 그럴 생각도 안 했지. 사랑도 나름대로 가치는 있지만 우정이 그보다 더 고귀한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난 이 세상에서 헌신적인 우정만큼 숭고하고 값진 것은 없다고 봐."

p.39  [헌신적인 친구]

 

"아가씨는 예의를 차릴 줄 알지. 그건 확실해. 하지만 아가씨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사실 아가씨는 다른 예술가들과 다를 바가 없어. 형식과 예의를 지킬 줄은 알지만 진심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은 꿈도 꾸지 않을 거야. 머릿 속에는 오로지 음악뿐이라고. 예술이 이기적이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 물론 아가씨의 목소리에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목소리가 아름다워 봤자 아무 의미도, 아무 쓸모도 없으니, 딱하기도 하지."

p.75

 

"사랑이란 정말 어리석은 짓이군. 사랑은 논리학의 반만큼도 쓸모가 없어. 무언가를 증명해내지도 못하고. 허구한 날 일어나지도 않을 일 타령만 하고. 진실이 아닌 것을 믿게 만들잖아. 사랑은 전혀 쓸모가 없어. 이제는 실질적인 것이 제일인 시대니까 철학과 형이상학 공부나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낫겠어."

p.79 [나이팅게일과 장미]

 

"하지만 이제 사랑은 식상해. 시인들이 사랑의 싹을 잘라버렸거든. 그자들이 하도 사랑 타령을 해대는 바람에 아무도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어. 당연한 일이야. 진정한 사랑이란 고뇌하고 침묵하는 법. 한때는 나도..... 하지만 지금 와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로맨스란 한 마디로 지나간 과거야."

p.146 [유별난 로켓불꽃]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 中

 

 

+)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같다. 철학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아우르는 내용들이 그러하고, 거기서 이끌어내는 주제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것들이다. 못생긴 존재는 무엇이든 무시하고 짓밟는 [별아이], 아름다운 공주에게 사랑과 순정을 바치는 난쟁이 이야기 [왕녀의 생일], 인어와의 사랑을 꿈꾸며 영혼을 파는 [어부와 그의 영혼], 예술가의 허영과 교만을 비꼬는 [유별난 로켓불꽃] 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동화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 책은 지독하게 독설적인 장면도 많고,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도 적나라하다. 오히려 환상적인만큼 사실적인지 않나 싶다. 행복한 결말을 바라는 수많은 독자의 바람을 외면하고 끝난 [행복한 왕자]도 그에 해당한다. 작가는 동화에 주목하기 보다 자신의 생각을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에 집중한 것 같다. 냉소적인 작가의 시선이 리얼하게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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