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사과 창비시선 301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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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이 울리는 것은'

 

 

길에 거꾸로 처박힌 전봇대,

전선 몇가닥이 혓뿌리처럼 드러나 있다

 

물과 양분 대신 전류를 실어나르던

저 잿빛 나무는

서 있는 일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곁가지 하나 내지 않고 제 생애를 다했다

 

종일 비 내리고

처박힌 전봇대에 아직 전류가 흐르는지

손바닥이 징- 징- 울린다

 

네 비참보다도

네 비참을 바라보는 나의 비참을 견딜 수 없어

내리친 것이 너의 뺨이었다니!

 

손바닥이 울리는 것은

처박힌 전봇대 때문이 아니라

빗줄기 때문이 아니라

서 있는 일에만 몰두했던 나의 수직성 때문

 

 

나희덕, <야생사과> 中

 

 

+) 인간은 '야생'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의 잃어버린 근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니, 기억에서 잊혀진 근원을 찾아 더듬더듬 홀로 길을 걷고 있다. "그 숲이 있기는 있었던가? // 그런데 웅웅거리던 벌들은 다 어디로 갔지? / 꽃들은, 너는, 어디에 있지? / 나는 아직 나에게 돌아오지 못했는데?"([숲에 관한 기억] 부분) 주변을 잃어버리자 중심도 잃어버렸다. 주변을 발견하지 못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하지 못한다.

 

우리도 모르게 새어나가고 있지는 않을까. 내면의 힘, 인간의 근본적인 에너지가. "쉴새없이 떨어져내리는 물방울들 // 삶의 누수를 알리는 신호음에 / 마른 나무뿌리를 대듯 귀를 기울인다" ([물방울들] 부분) 더 늦기 전에 시인은 사람들이 '나'에서 벗어나, 나 '이외의 것'들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 그것은 야생으로 돌아가는 기본적인 첫 걸음이다.

 

이 시집은 소통의 불가능으로 인한 어려움과 그것을 깨기 위해 말을 내뱉으려는 화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삼킬 수 없는 것들은 /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삼킬 수 없는 것들] 부분) 그것은 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시인 내면에 존재하는 야생에 대한 그리움이다.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원하는 것이다.

 

내가 나희덕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잘 만들어진 글 덩어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끌어낸 덩어리를 글자로 잘 구성해 놓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풀냄새가 그리워지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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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5분의 여유가 인생을 결정한다
아놀드 베네트 지음 / 느낌이있는책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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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전 5시 기상을 권한다. 작가는 본래 자신이 일어나려는 시간보다 5분 일찍 일어나면 명상을 비롯하여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이야기 한다.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면서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고, 신문을 읽거나 자신이 계획한 다른 것을 즐길 수도 있다.

 

작가는 11시에 잠잘 것을 권한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회생활로 그보다 늦게 잠들 때도 있다. 그렇다 해도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한 것이 좋다. 평균적인 수면 시간은 6시간을 권장한다. 그보다 길게 자는 사람은 기상 시간과 잠드는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길 바란다.

 

5분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보낼 때 인터넷 웹 서핑을 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텔레비전 리모컨을 사용하여 소중한 시간을 흘려 버리는 것은 우리가 멀리 해야 할 행동이다. 그 5분 동안 두뇌컨트롤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뿐만 아니라 잠깐이라도 짬이 날 때 마다 슬프거나 기쁜 일, 감정을 복받쳐오르게 만드는 생각들에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길 원한다. 또한 기회가 있으면 낮잠은 10분 정도 자는 것이 좋다. 그것만으로도 신체의 에너지가 충만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생각보다 5분이나 10분은 긴 시간이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혹은 지루한 무언가를 할 때 5분이 얼마나 긴지 알면서도, 막상 실생활에서 5분이란 시간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건 옳지 않다. 5분이 쌓이면 무수한 것을 이룰 수 있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함을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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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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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꽃

아무리 절절한 애정을 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따라 반대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의 역설입니다.

사랑의 방법을 한 가지로 한정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장미'가 아니라 함께 핀 '안개꽃'입니다.

p.47

 

- 함께 맞는 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p.103

 

- 더불어 한 길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뜻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p.108

 

- 높은 곳과 낮은 곳

높은 곳에서 일할 때의 어려움은

무엇보다도 글씨가 바른지 비뚤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p.132

 

 

신영복, <처음처럼> 中

 

 

+) 신영복 작가의 글과 서화가 더불어 실린 산문집이다. 작가의 생각과 주관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글들이 실렸다.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부드러운 문체로 쓰인 것이 대부분이나, 그 의미만큼은 단호하다. 작가는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만큼 더불어 사는 세상을 강조한다. '함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자신을 낮춰서 함께 길을 걷는 자들과 조화로운 삶을 살길 소망한다. 잠언집 정도로 볼 것이 아니라, 사회를 향한 비판의 시선과 작가 나름의 주관을 생각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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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 1000명의 죽음을 지켜본 호스피스 전문의가 말하는
오츠 슈이치 지음, 황소연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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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후회를 먹고 사는 생물이다. 환자들은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회한을 품는다.

누구나 후회한다. 그러나 후회의 정도에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

p.25

 

귀를 '순하게' 하는 일,

그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자신을 구하는 방법이다.

p.71

 

건강할 때 인생의 총정리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p.124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아내려는 생명은 후회하지 않는다.

p.229

 

 

 

오츠 슈이치,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 다섯 가지> 中

 

 

+) 이 책에는 호스피스 전문가가 죽기 직전의 환자들과 만나 대화 나누었던 것들이 실려 있다. 죽을 때 후회하는 것들을 모아 스물 다섯 가지를 만들었는데, 그와 관련된 일화들이 실려 있다.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몇 가지 공감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내가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할 때 되도록이면 행하라는 점이다. 그것이 여행이든, 결혼이든, 음식을 먹는 행위든 말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못할 가능성이 크니까. 현재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했더라면 /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더라면 /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 기억에 남는 연애를 했더라면 /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 내가 살아온 증거를 남겨두었더라면 /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 고향을 찾아가보았더라면 / 맛있는 음식을 많이 맛보았더라면 / 결혼을 했더라면 / 자식이 있었더라면 / 자식을 혼인시켰더라면 / 유산을 미리 염두에 두었더라면 / 내 장례식을 생각했더라면 /  건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
좀 더 일찍 담배를 끊었더라면 /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 치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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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제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영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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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의 삶의 방식이 그런가 보다, 고개를 끄덕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은 그 누가 뭐라 해도 그리가게 마련이었다. 좀처럼 바꾸기 힘든게 '삶의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줌을 눈다거나, 세수할 때 비누칠을 두 번씩 한다거나 하는 것들.

p.69

 

살다 보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끌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아마도 내 인생의 반은 내 의지와 무관한 일일지도 모른다.

p.182

 

나는 매번 무엇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살았다. 그렇고 그런 날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날들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고 그런, 변화 없는 날들이 오히려 다행스럽고 고마웠다.

p.269

 

조영아,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中

 

 

+) 이 소설은 제 1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차분한 어조로 인물들과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작가의 시선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정신지체장애 형을 지닌 13살의 주인공이 포장마차를 하는 엄마와 다리에 철심을 박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아빠를 바라보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가는 성장소설이다.

 

여우를 처음 보면서 시작된 이 소설은 간간히 여우를 만나고 여우에 대해 궁금해하며 어렸을 때 보았던 여우의 죽음을 안타까워한다. 어린 소년은 복잡하게 사는 어른들이 안타깝고 자신을 포함한 어린이들이 오히려 단순하고 솔직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그 모습이 여우를 보았다고 외칠 수 있는 소년의 솔직함이 아닐까. 어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나 혹은 할 행동 때문에 거짓말을 하거나 고민을 한다. 그것은 여우를 여우라고 믿지 않고 개나 큰 고양이라고 믿어버리는 태도에서도 짐작된다.

 

그리고 현실의 약자가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은 현재 우리 소시민의 모습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소년은 어른들의 복잡한 일은 잘 모르겠지만, 그저 자신들이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을 기다렸다. 믿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인데, 어른들에게서 믿음은 늘 검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청소년의 육체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의 조화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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