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타 버린 것은 아니야 미래그래픽노블 12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제이슨 그리핀 그림, 황석희 옮김 / 밝은미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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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뉴스는 주제를 바꾸지 않는지

왜 주제가 다른 것으로 바뀌지 않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느니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단 말만 하는지

ㅡ [숨 하나] 中

이 자유를 위한 싸움이라는 것이

나처럼 생긴 누군가가 주먹을 치켜들어

바람을 향해 휘두르는 느낌

ㅡ [숨 하나] 中

콜록 또 콜록 또 콜록 또 콜록 또 콜록 또 콜록

그때 엄마는 텔레비전을 응시하며

상심을 꾹꾹 눌러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으려 애썼고

ㅡ [숨 둘] 中

왜 뉴스는 주제를 바꾸지도 않고

우리가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거나

손을 씻지 않아서

병을 치유할 수 없다고만 하는지

ㅡ [숨 둘] 中

산소마스크는

엄마의 입가에 숨겨져 있을 수도

동생의 뿅뿅 소리에 있을 수도

여동생의 희한한 손글씨에 있을 수도

ㅡ [숨 셋] 中

제이슨 레이놀즈, <모두 타 버린 것은 아니야> 中

+) 이 책은 꽤 두꺼운 책이지만, 그 안에 수록된 문장은 단 3문장이다. 숨 하나, 숨 둘, 숨 셋의 구성으로 제작되어, 답답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잘 담아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른들의 성찰이 요구되는 지점도 만날 수 있다.

한 장 한 장 코딩지에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들 사이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서술자의 구절이 지나간다. 한 권의 책을 뛰어넘어서 한 편의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의도를 잘 살린 책이다. 그 물리적인 무게만큼이나 책에 담긴 내용의 무게감도 가볍지 않다.

매 장 수록된 구절들은 결국 세 문장으로 이어지고, 그건 다시 하나의 글로 완성된다.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코로나19로 답답한 세상의 무기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소마스크로 묘사되는 작은 희망의 씨앗이 담겨있다.

순서대로 책을 다 읽어보고, 혹시 마지막 장부터 거꾸로 읽어보면 어떨까 싶어서 거꾸로도 읽어보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거꾸로 책을 읽어도 그 흐름과 의미가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아이들에게 세상은 반성과 성찰 그리고 작은 희망이 순환되는 구조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 담긴 그림 이미지가 문장의 의미와 연결되어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그림들이 해당 구절의 바탕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는 배경이라기보다 또 다른 의미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느꼈다. 그림만 따로 쭉 살펴보아도 흥미롭다.

이 책을 청소년 소설 혹은 어린이 문학으로 분류했지만, 사회문화 계열로 여겨 어른들이 읽고 대화를 나누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언론의 각성을 요구하거나, 차별화된 문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소소한 희망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잘 묘사한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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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은 무슨 색일까? - 그림책으로 아이 마음 안아 주기
김은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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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는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 가정에서 비롯되는데 아이에게 밀착된 어른들은 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 말이지만, 하루 정도 시간을 내서 아이들을 관찰하기 바란다. 그냥 넋 놓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다.

관심 어린 눈빛으로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분명 가까운 곳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부모의 모습에서 찾을 수도 있고, 아이의 기질에서 찾을 수도 있다. 아니면 대화 도중 주고받게 되는 기 싸움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

pp.20~21

엄마를 통해 아이의 관심 사항을 전해 듣기도 하지만, 내가 직접 아이와 소통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도 많다. 나의 진심 어린 상담으로 인해 아이 마음이 움직이면, 아이는 엄마한테 말하지 못했던 의외의 것을 나에게 고백하기도 한다. 그것을 곧바로 놀이에 활용하면 아이의 집중력은 높아진다. 이뿐만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되는 셈이다.

p.55

사람을 변하게 하는 요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진정한 관심과 진심어린 칭찬이다. 관심은 조용하게, 칭찬은 크게 하는 것이 좋다. 이는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그리고 동식물에게도 적용되는 해답이요, 정석이다.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변화되게끔 만들어주는 환경이 중요하다. 변화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가 바로 관심과 칭찬이다.

p.67

남과 달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남과 달라서 힘든 부분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이 남과 다르기 때문에 성공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자신만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엄마라서 관여하고 부모라서 방해하지 않길 바란다.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도 있음을 꼭 명심했으면 한다.

p.173

누누이 말하지만, 어떻게든 떼려고 윽박지르거나 혼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내는 동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소중히 다루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알고,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p.199

김은정, <네 마음은 무슨 색일까?> 中

+) 이 책은 그림책을 활용하여 아이들의 심리 상담을 진행하는 저자의 경험담을 담고 있다. 저자는 독서 치료라는 방법을 통해서 아이들과 대화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단순히 직업적인 일이라는 점을 떠나서 저자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던 책이다.

우선 이 책에서는 특정 사례를 설명하고 그와 관련된 그림책을 소개하며 어떻게 그 그림책을 활용했는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에 관련된 정보도 같이 확인할 수 있어서, 해당 주제와 관련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지 그 과정을 사실적으로 수록하고 있어서 현실적인 도움이 가능하다고 본다.

보통 부모는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왜 저러는지 전혀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다. 그런 어른들을 위해 이런 책을 통해 본인과 아이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아이들을 대할 때는 진정한 관심과 진심 어린 칭찬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속도에 맞는 어른들의 배려가 요구된다는 것도 배웠다.

아이들은 쉽게 상처를 받을 수 있지만, 또 그 상처는 따뜻한 관심과 칭찬으로 그들을 한층 성장하게 하고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더불어 그림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언급된 그림책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에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해당 그림책을 찾아 읽으며 그 가치를 경험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함께 읽는 것이 얼마나 희망과 힘이 되는지 알게 해 준 책이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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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다 사진관
허태연 지음 / 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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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행복을 지켜보는 건 정말 지루해."

어느 날, 일기장에 그렇게 쓰고 제비는 사진관을 그만뒀다.

2%

"확실치 않은 일은 하지 마라. 그게 사회생활이 기본이야."

제비는 함께 일한 사진사의 말투를 따라하며 진저리쳤다.

5%

"자기 실력을 평가하는 것은 좋아. 하지만 비교하는 것은 나쁘다." 석영이 말했다.

"사진은 단지 보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고 스테판 거츠는 말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탐구하게 하는 거, 그런 게 좋은 사진이라고 나도 생각해. 스테판 거츠같이 훌륭한 작가는 관람자들을 행동하게 하지. 오늘, 네 사진도 그랬어."

23%

"언니, 물꾸럭 신을 믿어요?"

눈살을 찌푸리고 양희가 쓰게 웃었다.

"네 뜻으로 신앙을 가져. 다른 사람 뜻을 묻지 말고."

50%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고 부모들은 말하지만, 조금 더 사랑하는 자식이 있게 마련이지. 나도 그렇네."

"하지만 자네 그걸 알아야 해." 남자가 말했다.

"덜 사랑하는 자식이라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사랑한다네. 부모의 마음이란 그런 거야."

57%

오랜만에 느낀 그 책임감이 제비는 싫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행복한 가족과의 여행도 걱정만큼 나쁘지 않았다.

'감당할 만한 책임이라서 그런 걸까?'

79%

"난 교수님이 좋아 지질학을 택했어요. 그건 교수님이 내 인생에서 처음 본 어른, 제대로 된 어른이었기 때문이니까."

"그날, 나는 거츠 선생한테 말했어요. 뜨거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용암류 연구를 하는 거라고. 하지만 집에 가 생각하니 그건 틀린 말이데요. 내가 좋아하는 건 식어서 굳은 것들이니까. 그 뜨거움의 세례를 견딘 것들이니까. 나는 그 다양한 형태의 냉정을 살펴봐요. 나도 그렇게 형태를 남기려고요."

93%

허태연, <하쿠다 사진관> 中

+) 이 책은 사진관 일을 그만두고 막연하게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주인공이 하쿠다 사진관에 들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 제비는 제주도 여행을 즐기고자 떠났지만 본인의 상상과는 달리 많은 것을 즐기지 못해서 아쉬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행 경비도 거의 다 떨어졌고, 불쾌한 사람과 부딪치며 떨어진 휴대전화도 고장나서 비행기 예약이나 숙소 예약조차 할 수 없었다. 딱 그때 하쿠다 사진관을 보게 되면서 제비의 제주도 일상이 펼쳐지게 된다. 새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이 소설에는 제주도 방언을 구사하는 해녀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방언을 그대로 적고 표준어로 풀이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썼다. 많은 부분은 아니지만 방언이 쓰여서 그런지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제주도를 더 가까이에서 접하는 현장감이 느껴진다.

주인공 제비가 머무른 바닷가 마을이 떠오르고, 해녀 할머니들의 구수한 방언과 낯선 이에 대한 마음 사람들의 경계 어린 표정도 상상이 된다. 읽을수록 꼭 제주도의 분위기가 느껴져서 꼭 그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실적으로 그려냈기에 솔직한 작품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에는 여러 가지 사연을 갖고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비가 그들을 만나면서 배우고 깨닫고 느끼는 과정들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간직한 사연을 들으면서 사진으로 그들을 위로하는 하쿠다 사진관의 석영과 제비의 모습에 위안을 얻었다.

또 대왕물꾸럭마을 축제를 준비하는 제주도 사람들의 경건한 마음이 너무나 이해된 작품이었다. 바다를 신성하게 여기고, 바다의 생물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들의 마음이 요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되새겼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을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기에 적합한 내용이다. 생각할 꺼리가 많은 작품인데도 쉽게 풀어냈기에 부담이 없다. 특히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책임'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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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소울메이트 고전 시리즈 - 소울클래식 11
에픽테토스 지음, 키와 블란츠 옮김 / 소울메이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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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바람이 있다.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피하고 싶은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면 불운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피하고자 했던 일을 당하게 되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반면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에 속하지 않으면서 내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들만 피하고자 노력한다면, 피하고 싶었던 일을 당했다고 해서 비통해할 일도 없을 것이다.

17%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행위에 대한 사사로운 생각들이다.

무지몽매한 사람은 제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늘 남 탓만 한다. 하지만 깨우치기 시작한 사람은 자신을 탓한다. 깨우친 사람은 자신도 남도 탓하지 않는다.

21%

어떤 일을 당할 때마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 일에 대처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자신의 내부에서 그 능력을 잘 찾아보자.

26%

그 누구도 내가 원하지 않는 한 내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해를 입게 된다.

61%

누군가로부터 나에 대해 험담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 내용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려 들기 보다 '그런 험담만 하는 걸 보니 나의 다른 단점들에 대해서는 모르는 모양이군.' 하고 넘어가라.

69%

와인을 과하게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와인을 잘못 마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와인을 과하게 마신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이유도 모르면서 함부로 잘잘못을 가리려 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섣불리 판단하려 들지 말고, 그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84%

에픽테토스,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中

+) 에픽테토스는 스토아 철학 사상을 구현한 철학자이다. 이 책은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하여 실어둔 것으로, 옮긴이는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에 해설을 덧붙이는 것보다 그 지혜 자체를 전달하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옮긴이의 서문에 따르자면 에픽테토스 철학의 핵심은 '안으로는 자유, 밖으로는 불굴의 저항'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안으로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그는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과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내적 혼란을 겪는 현대인에게 현명한 조언이 아닐까 싶다. 저 둘을 구분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내적으로 자유와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 일은 우리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러 상황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선택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현명하면서 단호하다고 생각했다. 짧은 문장으로 비유와 예시를 통해 근거를 만들어 읽는 이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먹게 만든다. 간혹 그래도 '이건 좀 어렵겠구나.' 싶은 주장도 있지만 수용 가능성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고 느낀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없는 일을 알고 구분하려 한다면 인생을 좀 더 편안히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좀 더 알고 싶어지는 철학자와 철학 사상을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관련 분야의 철학을 더 찾아서 읽어보고 싶게 만든 책이었다. 옮긴이가 왜 해설을 덧붙이지 않았는지 그 목적이 충분히 이해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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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혼합니다
가키야 미우 지음, 김윤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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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특히 별난 남자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니면 세상 남편들도 다 비슷하지만 다른 아내들이 나보다 훨씬 더 인내심이 강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과 대화를 나눠도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는 방법이 있다면 꼭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몇십 년이 걸린 걸까, 잘못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pp.19~20

"그만! 그런 게 아니라니까. 엄마는 반듯한 사람이야."

"응?"

"뭐든지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습관, 그거 버리는 게 좋아. 그렇게 살면 즐거워?"

노조미의 말은 늘 비약이 심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엄마는 지금까지 계속 아빠한테 무시당하며 살아와서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는 거야. 그래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고."

"...... 그럴지도."

p.80

가까운 사이라도 예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매너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 사이에는 조심성도 매너도 없어지는 게 당연한 걸까. 인간이란 원래 노년을 맞이할 무렵이 되면 그때까지 꾸미고 가장해온 것들이 조금씩 벗겨지고 본래의 품성이 드러나는 걸까.

p.104

"어, 뭐라더라. 이번에야말로 무슨 패턴을 끊어낸다나 뭐라나......"

"패턴이요? 아주머니. 그 '무슨'이란 게 뭐예요?"

"미사오가 그러더구나. 남편이 기분 좋을 때는 어쩌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고쳐먹는다고. 하지만 바로 또 배신당한다고. 그러길 대체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정신을 차릴 셈인지. 그렇게 당하고도 되풀이하는 자신이 바보 아닌가 싶었다고 말야."

"그래서 그 영원한 반복 패턴에서 빠져나오려고 이혼했다는 거구나......"

pp.116~117

최근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수도 없이 튀어나온다. 젊을 때는 이 감정을 어떻게 마음속에 봉인해둘 수 있었던 건지. 이제 생각하면 신기할 정도다.

50대는 인생을 총결산하는 시기인 걸까. 좋든 싫든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건 하늘의 의지인 걸까.

p.125

"외도나 빚이 계기가 된 것뿐이지 그보다 훨씬 전부터 싫었던 거야."

"그러네. 정말 그럴지도."

"가령 남편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우습게 대했다거나, 자신보다 시부모를 우선했다거나. 그런 일 하나하나를 남자들은 사소하게 여길지 몰라도 당하는 사람은 자꾸만 굴욕감이 쌓여가니까. 그런 일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거든. 말하자면 영구불멸 포인트야."

p.164

이혼하고 나서 나 스스로 예전보다 '좋은 사람'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사소한 일로 질투하지도 않게 되었고 무엇보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p.377

가키야 미우, <이제 이혼합니다> 中

+) 이 책은 50대 후반의 여성이 이혼을 결정하기까지의 고민과 두려움, 망설임 등을 잘 그려낸 소설이다. 주인공의 아이들은 이미 커서 각자 독립한 상태고, 남편과 둘이 살면서 여자는 끝없이 남편의 존재를 벅차한다.

심지어 남편이 죽는다면 어떨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혼이 필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자의 남편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남자로,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남자는 대접받을 권리가 있고 파트타임 정도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의 일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남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깨끗한 주거환경을 유지하도록 힘쓰며 아이들을 반듯하게 기르는 것이 여자의 일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여자는 딸아이 둘을 기를 때 남편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고, 혼자서 육아를 담당했다.

그때부터 여자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쌓여갔지만 이혼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자는 굴욕감을 자주 느끼며 나이가 들었는데 남편이 여전히 자기를 무시하니 점점 그가 싫어진다. 또 남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면서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여자가 이혼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된 것은 동창의 이혼 소식을 듣게 되면서였고, 현실적으로 이혼 과정에 대해 알아보게 된 것은 이혼한 그 친구를 만나 현실적인 대화를 나누면서부터이다. 그만큼 여자는 홀로서기가 두려웠다.

자기 소유의 부동산이나 예금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혼 후 먹고 살 일도 마땅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하나씩 하나씩 주어진 상황에 맞게 고민들을 정리해 나간다. 남편의 피부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친다면 이혼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여자 나이 58세에, 자기 소유의 예금과 부동산이 전혀 없는 파트타임 일을 하는 입장이라면, 이혼을 결심하고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두려웠을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꼭 여자와 남자, 성을 구분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보통 홀로 선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집은 어떻게 구할 것이며,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주변의 시선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등등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소설은 50대 후반의 여성들이 이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들의 대화를 통해 다양하게 그려내고 있다. 읽는 내내 나이를 알지 못했어도 주인공의 이혼 결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오래도록 알고 지내는 사이라도 지켜야 할 기본적인 매너는 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이라면 최대한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애써보는 노력이라도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대도시 도쿄 여행도 떠나본 적이 없어서 두려워하는 여자가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내적으로 단단해지는 모습을 응원하며 소설을 읽었다.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 혼자서 무언가를 선택하고 직접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두려움을 이해하기에 몰입해서 읽은 작품이었다.

꼭 이혼이라는 소재 때문이 아니더라도 홀로서기를 꿈꾸는 여자들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현실적으로 극복해가며 용기를 내는 주인공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 이 서평은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제 생각을 기록한 글입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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