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마마 자마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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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데이빗하고 헤어지는데 아무 문제없잖아. 몸도 마음도 다른 남자에게 가버리면, 나중에 데이빗이 슬퍼하든 말든 안중에도 없을 텐데 뭐.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신경을 쓸 만큼 복잡하게 생겨먹지 않았다구. 네가 데이빗하고 헤어지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키스를 사랑하니 어쩌니 하지만, 사랑이란 착각하고 종이 한 장 차이니까."
- BAD MAMA JAMA
 
개미는 설탕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달콤하니까. 이 섬에는 사람보다 개미가 더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까지 한 번도 개미의 사체를 보지 못했다. 차속에 설탕을 넣으면, 수면으로 개미가 몇 마리 떠올라 신난다는 듯 다리를 바둥거린다. 그들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 속에 푹 잠겨 있으니까. 후우, 후우 하고 숨을 불어 그들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차를 다 마시고 나면, 그 행복한 자들은 찻잔 바닥에 엉겨 붙은 설탕 침대 위에 잠들어 있다.
- 캔버스관
 
세상에는 용서해야 할 일이 아주 많지. 시드니는 거기까지 쓰고는 자신이 지금 아주 냉정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용서하고 싶다. 그 여자를. 하지만 같은 순간에 서로를 용서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누군가와 서로를 용서하고 싶다. 아아, 하고 그는 한숨을 내쉰다.
- 입냄새
 
 
야마다 에이미, <BAD MAMA JAMA>中
 
 
+) 연애소설의 여왕이란 별칭이 있다는데, 글쎄. 이 한 권의 소설은 별로 반갑지 않다. 솔직한 표현과 거침없이 써내려간 서사가 장점이긴 하나, 난잡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주제면에서 스토리가 간직한 에너지도 약하고 특별히 가슴에 와 닿는 표현도 부족하다. 쉽게 읽혔으나 쉽게 잊혀질 것 같은 안타까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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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취향 - 문예중앙산문선
강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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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걸 즐기고 살면 행복해질 수 있어요. 5백 원을 가지고 있어도 지금 당장의 상황에 충실하면서 허깨비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자기 마음만 다지면 세상은 자기편이 되거든요. 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을 잡으면 돈도 들어올 거고. 이거 확실한 얘기예요. 난 살면서 마음을 딱 잡고 있으면 서서히 몸이 뜨거워지면서 돈이 들어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요. 그리고 그게 순리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세상에 불만 품을 것 없어요. 그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 돼요. 내 말 틀린 것 같아요?"
- 세상과 '안'싸우거나 '잘'싸우거나 : 전인권
 
감각이란 육체의 모든 결들을 포괄하는 정신의 땀구멍과도 같다. 좋은 시집은 그 미미한 숨결의 통로를 따라 물처럼 스미는 음악의 흐름과도 흡사하다. 그 순간 책을 보는, 그리고 책을 쥐고 있는 손에는 아무런 무게도 질감도 없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모든 건 영원의 귀퉁이에서 자연발아했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바람의 맨살일 뿐이다.
- 바람을 닮은 음악, 생멸의 화석으로 드러나는 시 : 쌍깃 프렌즈와 허만하의 시
 
아이란 미성숙의 영혼이다. 그러나 그 미성숙은 영원한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에겐 세계의 모든 풍경을 오로지 자신의 발가벗은 영혼 속에 투영해내는 솔직함이 있다. 미성숙한 아이에겐 세계 또한 미완성의 영역이다. 랭보가 결국 추구했던 건 여전한 미지로 놓여 있는 삶의 가능성 앞에 자신의 전(全) 존재를 투여하는 것이었다. 사막으로 떠나는 그는 자신 속에 또 다른 아이를 깨워 다시 한번 영원에 바쳐지는 '새벽'(랭보 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새벽'이었다. 랭보에게 새벽은 삶의 반복된 개벽을 의미했다)을 만나고자 했다.
- 영원한 젊음의 시인 랭보
 
내가 아는 한, 대상은 결코 주체에 편입되지 않고 주체 또한 그 자체로 완벽한 통일체로서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건 그 통합되지 않는 자아와 대상 사이에서 부글부글 끓고있는 모종의 에너지 덩어리로서의 불가능성뿐이다. 시적 자아란 그 불가능성을 잠정적으로 지시하는 순간적이고도 영원한 가면에 불과하다. 시인에게 시는 늘 삶의 저편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기 자신의 불분명한 미래이자 수시로 시간 경계를 초과하며 재생성되는 과거일 뿐이다.
- 젊은 바퀴벌레 시인들의 은밀한 사생활
 
 
강정, <나쁜 취향> 中
 
 
+) 강정의 두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천재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어는 가볍지 않은 용어이나 추상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뭔가 아쉬운 용어이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시인, 그때부터 나는 강정의 글에 관심을 가졌다.
 
<나쁜 취향>은 신문에 연재한 일종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산문집이라고 평하기엔 좀 무겁기도 하고, 문화평론이라고 하기엔 좀 가벼운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딱 한 가지가 부러웠는데, 그가 갖고 있는 엄청난 단어 사용 능력이다. 이 '엄청난'이란 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심오하다는 뜻과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써내려간 많은 양의 단어량이다. 그의 어휘력은 정말이지 내가 꼭 갖고 싶은 능력이다.
 
음악, 시, 영화, 문학 등에 대해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것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신문에 연재한 글이라 그런지 책에 실린 글의 무게감이 너무나 비슷해서 좀 지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도 그처럼 문화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예술에 대해 교양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읽기를 권한다. 맛보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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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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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용기다!!' 느낌표 두 개가 안쓰럽게 꼿꼿했다.
p.73
 
나를 왜 사랑하느냐는 물음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면 태오는 나의 사랑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의미인가. 발을 헛디뎌 막막한 우주와 연결된 맨홀 속에 빠진 느낌이다.
p.159
 
"일부러 안 벌어도 혼자 먹고 살 수 있다며?"
"그야 그런데 ......... 아침에 눈뜨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거야. 느지막이 아점 먹고 인터넷 좀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가버리지. 저녁 먹고 리니지 좀 하다가 늦게까지 영화 보면서 그냥 잠드는 하루하루. 이제 더는 못 하겠어."
"너무 배무른 소리 아냐? 그건 모든 사람이 꿈꾸는 삶이라고!"
"하루 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는데도, 노가다라도 뛰고 온 양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증상. 넌 모르지?"
pp.221~222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p.227
 
백수, 아니 '자연인'의 24시간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더디게 흐른다. 시간의 소비라는 행위만큼 주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눈에 보이는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을 그저 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의 계획이 '이효리 새 음반 듣기'거나 '이번주 [씨네 21]읽기'가 전부라면 왜 안 되는가. 냉정한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시간은 진정 무의미한가.
pp.296~297
 
"이제 와서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늦었어."
잔혹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유를 찾겠다고 무작정 뛰쳐나가봐야 기다리는 것은 별 볼일 없는 현실뿐임을 엄마도 알아야 한다. 현관 문고리를 잡아당기는데, 엄마의 무거운 음성이 등 뒤에 날아와 꽂혔다.
"이 상태로 끝나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p.349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中
 
 
+) 은수, 유희, 재인. 서른 한 살의 여자. 그들은 각기 자신이 선택한 삶과 남자와 결혼을 이끌어간다. 소설은 서른 한 살의 여자들이 고민하거나 혹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삶을 제시한다. 묘하게도 그것은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역설적인 이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작가는 현실과 드라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것이 아니라 즐기는 행위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스무 살의 나도 분명히 그랬다. 서른 살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런 질문에는 대단한 환상을 꿈꿨다. 뭔가 인생의 한 획을 그을만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서른을 앞둔 나는 이 소설 속의 저 세여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선택을 한다. 특별한 것이 인생이 아니라 규정된 것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조차 굳건히 믿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러한 인생의 시행착오 과정을 제법 세세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나이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할 것들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십대들의 만화책같은 서사가 어렵지 않고 쉽게 다가왔는데, 그 부분에서 비난을 많이 받을 소설 같았다. 그러나 소설이 꼭 진지한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정이현의 필치를 작가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물론 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소설의 말미가 너무 진부한 것은 아닐까. 후반부의 서사는 작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흥미와 긴장감이 떨어지는 담점이 보인다.
 
정이현의 다른 소설을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단편에서의 그녀의 작법이 궁금하다. 장편에서는 소설의 길이로 감당할 수 있겠지만, 단편에서는 어떨까. 마치 만화의 스토리같은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소설이란 것에 대해서, 소설의 흥미와 재미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 작가다. 이 소설은 부담없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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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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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름을 잊었을 거라고 생각했죠?"
 "제가 그렇거든요. 아주 오랫동안 그래왔죠. 신문기사에 난 사람 이름 같은 건 기억을 못해요.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로 걱정하느라고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쓰는 것이 힘들게 마련이죠."
                            p.52
 
 그리고 그녀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알게 됐다. 타인에 대한 명료한 첫인상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무지함이 아닌 앎의 축적이라는 것을. 우리의 선험적 도식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의 길이다. 우리가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우리가 25년간 알고 지냈던 남자 혹은 여자를 하나의 정연한 총체로 응집시킬 수는 없다는 점이고, 다른 이들도 우리처럼 복잡하고 알기 힘든 존재라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와의 짧은 첫 만남 뒤에는 충분히 생각할 여유와 인내를 갖지 못하는 - 좀더 관대해지지 못하는 -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pp.57~58
 
 그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알고자 하는 의지는 줄어든다는 역설을. 함께 이야기할 시간을, 사과를 다 먹어치울 만한 시간에서 수도꼭지가 다 말라버릴 만한 시간까지로 무한정 확장한다고 해서 훌륭한 대화 주체를 향해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 서로에 관한 궁금증이 더 이상 급격하게 솟아나지 않는 것은 삶을 공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앎이란 그것을 어느 정도 소유했는지를 암시한다. 타인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요구를 외면한다. 키르케고르의 아이러니 이론에 대한 그들의 관점처럼 쉽게 다루기 어려운 어떤 것들은 모두 외면당한다.
 더욱이 누군가를 더 오래 알수록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것들에 관한 자책감도 늘어난다. 주어진 시간 내에 그들의 강아지나 아이, 아버지 이름이나 직업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제 맥락 안에서는 그들에게 이질성을 드러내 보이는 장치가 돼버린다.
p.327
 
                                                                                                    

  알랭 드 보통,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中
 
+) 전철에서 책을 꺼내 읽고 있을 때 앞에 앉은 여자 둘이 키득거리며 웃어댔다. 처음에는 왜 그런가 싶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 책의 제목만 읽고 상상했나보다. 도대체 무슨 상상을 한 것일까.
 
이 소설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의 중요성과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관점 형성을 잘 그려내고 있다. 원제는 'Kiss & Tell'인데, 역자에 따르면 이것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뜻한다. 물론 이 소설은 그런 의미없는 폭로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화자는 '이사벨'을 만나서 그녀를 알아가는 과정을 차분하게 묘사한다. 철학자의 말을 빌려오거나 자신의 경험을 들춰내거나 해서, 마치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간다. 전반부 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비교적 관찰하는 관점이 현실적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시간'이란 틀에 기대어 얼마나 오만할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함께'라는 단어까지 곁들여 한 사람을 안다고 자부하는 자세는 꽤 거만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사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안다'는 표현이 타자와의 거리를 좁힐 수는 있겠으나, 같은 길 위에 서 있다해도 내가 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은 읽을수록 매력적이다. 마치 한 편의 철학서 같기도 하면서 영화같기도 하다. 현란한 이미지 구사는 없지만 깊이 있고 담백한 필치는 압권이다. 나는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안다'라는 말로 인해 타자와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줘야 하는지도 배웠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어떤 '앎'도 핑계일 뿐이며, 게으를수록 멀어진다는 것.
첫인상을 지워가는 것은 변하는 상대방이 아니라 나의 기억일 뿐이라는 것.
'기억' 혹은 '앎'은 결국 주체가 선택하고 싶은 순간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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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시집 80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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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들'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비좁다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적다 하지만 햇빛은 좁은 골목에서 가루가 될 줄 안다 궂은 날이 걷히면 은종이 위에다 빨래를 펴 널고 햇빛이 들이비치는 마당에 나가 반듯하게 누워도 좋으리라 담장 밖으론 밤낮없는 시선들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바쁘고 나는 개미들의 행렬을 따라 내 몇 평의 땅에 골짜기가 생기도록 뒤척인다 남의 이사에 관심을 가진 건 폐허를 돌보는 일처럼 고마운 희망일까 사람의 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목메게 아름답다 적과 내가 한데 엉기어 층계가 되고 창문을 마주 낼 수 없듯이 좋은 사람을 만나 한 시절을 바라보는 일이란 따뜻한 숲에 갇혀 황홀하게 눈발을 지켜보는 일 (지금은 적잖이 열망을 식히면서 살 줄도 알지만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안에 갇혀 지내기를 희망했다) 먼 훗날, 기억한다 우리가 머문 곳은 사물이 박혀 지낸 자리가 아니라 한때 그들과 마주 잡았던 손자국 같은 것이라고 내가 물이고 싶었던 때와 마찬가지로 노을이 향기로운 기척을 데려오고 있다 날마다 세상 위로 땅이 내려앉듯 녹말기 짙은 바람이 불 것이다

 

 

이병률,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中

 

 

+) 마흔 살의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첫 시집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집에서는 편안하고 안타까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유지되고 있다. 마치 예순을 앞둔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시 한편 한편이 울린다. 시인은 주변의 안타까운 것들에 시선을 주고, 마음을 준다.

 

그 마음은 "아무리 기다려도 주인은 오지 않고 내심 앓는 소리로 끓고 있는 냄비에만 마음이"[아물지 못하는 저녁] 쓰이는 것과 같다. 자신도 모르게 "연필 부러지는 소리보다 작게 세상을 툭 치고 지나가는 것"[공기]들에 고개를 돌리기도 하는 사람이 화자다.

 

삶은 시인과 동떨어지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고, 당연히 과거와 현재의 길을 떠오르게 한다. 거기서 "바람"은 매서움이자, 다그침이자, 신선함이자, 목표를 향한 지표이다. 그것으로 인해 목표를 설정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목표로 나아가기도 하는 존재다. 바람이 갖고 있는 시간적 의미와 세상과의 관련성 등이 시집 전체를 이끌어간다.

 

마치 시집을 몇 권이나 냈던 사람처럼 편안한 목소리가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무난하게 안주하려는 자세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률이 노래하는 바람의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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