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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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용기다!!' 느낌표 두 개가 안쓰럽게 꼿꼿했다.
p.73
 
나를 왜 사랑하느냐는 물음은,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그러면 태오는 나의 사랑을 철썩같이 믿고 있다는 의미인가. 발을 헛디뎌 막막한 우주와 연결된 맨홀 속에 빠진 느낌이다.
p.159
 
"일부러 안 벌어도 혼자 먹고 살 수 있다며?"
"그야 그런데 ......... 아침에 눈뜨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거야. 느지막이 아점 먹고 인터넷 좀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가버리지. 저녁 먹고 리니지 좀 하다가 늦게까지 영화 보면서 그냥 잠드는 하루하루. 이제 더는 못 하겠어."
"너무 배무른 소리 아냐? 그건 모든 사람이 꿈꾸는 삶이라고!"
"하루 종일 입 한번 떼지 않았는데도, 노가다라도 뛰고 온 양 기운이 쫙 빠지고 전신이 무기력해지는 증상. 넌 모르지?"
pp.221~222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p.227
 
백수, 아니 '자연인'의 24시간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더디게 흐른다. 시간의 소비라는 행위만큼 주관적인 것이 또 있을까. 눈에 보이는 생산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간을 그저 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의 계획이 '이효리 새 음반 듣기'거나 '이번주 [씨네 21]읽기'가 전부라면 왜 안 되는가. 냉정한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시간은 진정 무의미한가.
pp.296~297
 
"이제 와서 뭔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늦었어."
잔혹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렇지 않은가. 자유를 찾겠다고 무작정 뛰쳐나가봐야 기다리는 것은 별 볼일 없는 현실뿐임을 엄마도 알아야 한다. 현관 문고리를 잡아당기는데, 엄마의 무거운 음성이 등 뒤에 날아와 꽂혔다.
"이 상태로 끝나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p.349
 
정이현, <달콤한 나의 도시> 中
 
 
+) 은수, 유희, 재인. 서른 한 살의 여자. 그들은 각기 자신이 선택한 삶과 남자와 결혼을 이끌어간다. 소설은 서른 한 살의 여자들이 고민하거나 혹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삶을 제시한다. 묘하게도 그것은 현실적이기도 하면서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역설적인 이 상황이 어떻게 가능할까. 작가는 현실과 드라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것이 아니라 즐기는 행위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스무 살의 나도 분명히 그랬다. 서른 살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그런 질문에는 대단한 환상을 꿈꿨다. 뭔가 인생의 한 획을 그을만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서른을 앞둔 나는 이 소설 속의 저 세여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선택을 한다. 특별한 것이 인생이 아니라 규정된 것에서 특별함을 찾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사랑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는 것 조차 굳건히 믿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러한 인생의 시행착오 과정을 제법 세세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나이를 떠나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할 것들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십대들의 만화책같은 서사가 어렵지 않고 쉽게 다가왔는데, 그 부분에서 비난을 많이 받을 소설 같았다. 그러나 소설이 꼭 진지한 태도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정이현의 필치를 작가만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물론 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소설의 말미가 너무 진부한 것은 아닐까. 후반부의 서사는 작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흥미와 긴장감이 떨어지는 담점이 보인다.
 
정이현의 다른 소설을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단편에서의 그녀의 작법이 궁금하다. 장편에서는 소설의 길이로 감당할 수 있겠지만, 단편에서는 어떨까. 마치 만화의 스토리같은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소설이란 것에 대해서, 소설의 흥미와 재미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 작가다. 이 소설은 부담없이 읽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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