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취향 - 문예중앙산문선
강정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가난한 걸 즐기고 살면 행복해질 수 있어요. 5백 원을 가지고 있어도 지금 당장의 상황에 충실하면서 허깨비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자기 마음만 다지면 세상은 자기편이 되거든요. 자기 것을 가지고, 자기가 마음을 잡으면 돈도 들어올 거고. 이거 확실한 얘기예요. 난 살면서 마음을 딱 잡고 있으면 서서히 몸이 뜨거워지면서 돈이 들어온다는 걸 경험으로 알아요. 그리고 그게 순리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세상에 불만 품을 것 없어요. 그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면 돼요. 내 말 틀린 것 같아요?"
- 세상과 '안'싸우거나 '잘'싸우거나 : 전인권
감각이란 육체의 모든 결들을 포괄하는 정신의 땀구멍과도 같다. 좋은 시집은 그 미미한 숨결의 통로를 따라 물처럼 스미는 음악의 흐름과도 흡사하다. 그 순간 책을 보는, 그리고 책을 쥐고 있는 손에는 아무런 무게도 질감도 없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모든 건 영원의 귀퉁이에서 자연발아했다가 가뭇없이 사라지는 바람의 맨살일 뿐이다.
- 바람을 닮은 음악, 생멸의 화석으로 드러나는 시 : 쌍깃 프렌즈와 허만하의 시
아이란 미성숙의 영혼이다. 그러나 그 미성숙은 영원한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에겐 세계의 모든 풍경을 오로지 자신의 발가벗은 영혼 속에 투영해내는 솔직함이 있다. 미성숙한 아이에겐 세계 또한 미완성의 영역이다. 랭보가 결국 추구했던 건 여전한 미지로 놓여 있는 삶의 가능성 앞에 자신의 전(全) 존재를 투여하는 것이었다. 사막으로 떠나는 그는 자신 속에 또 다른 아이를 깨워 다시 한번 영원에 바쳐지는 '새벽'(랭보 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새벽'이었다. 랭보에게 새벽은 삶의 반복된 개벽을 의미했다)을 만나고자 했다.
- 영원한 젊음의 시인 랭보
내가 아는 한, 대상은 결코 주체에 편입되지 않고 주체 또한 그 자체로 완벽한 통일체로서의 유일무이한 존재가 아니다. 시가 궁극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건 그 통합되지 않는 자아와 대상 사이에서 부글부글 끓고있는 모종의 에너지 덩어리로서의 불가능성뿐이다. 시적 자아란 그 불가능성을 잠정적으로 지시하는 순간적이고도 영원한 가면에 불과하다. 시인에게 시는 늘 삶의 저편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기 자신의 불분명한 미래이자 수시로 시간 경계를 초과하며 재생성되는 과거일 뿐이다.
- 젊은 바퀴벌레 시인들의 은밀한 사생활
강정, <나쁜 취향> 中
+) 강정의 두번째 시집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을 읽었을 때, 나는 그가 천재적인 시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시어는 가볍지 않은 용어이나 추상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뭔가 아쉬운 용어이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시인, 그때부터 나는 강정의 글에 관심을 가졌다.
<나쁜 취향>은 신문에 연재한 일종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산문집이라고 평하기엔 좀 무겁기도 하고, 문화평론이라고 하기엔 좀 가벼운 느낌이 든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딱 한 가지가 부러웠는데, 그가 갖고 있는 엄청난 단어 사용 능력이다. 이 '엄청난'이란 말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데,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용어를 서슴없이 사용하는 심오하다는 뜻과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써내려간 많은 양의 단어량이다. 그의 어휘력은 정말이지 내가 꼭 갖고 싶은 능력이다.
음악, 시, 영화, 문학 등에 대해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것은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만, 신문에 연재한 글이라 그런지 책에 실린 글의 무게감이 너무나 비슷해서 좀 지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도 그처럼 문화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싶다.
예술에 대해 교양으로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읽기를 권한다. 맛보기에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