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죠반니노 과레스끼 지음, 김운찬 옮김 / 부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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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이상한 일이에요. 아직 사는 데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는데 벌써 죽는 데 익숙해져야 해요. 우리는 깎아지른 절벽의 바위 위로 난 좁다란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어요. 필사적으로 땅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심연 속의 영원함에 매력을 느껴요. 때로는 몸을 내밀고 영원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느껴요."
  "그래요, 마르게리타."
  나는 말했다.
  "우리는 거의 신경을 쓰고 있지 않지만, 절벽 가장자리에는 이런 팻말이 세워져 있지. '몸을 내밀면 위험합니다.'"
p.16
 
선물을 살 때 사람들은 가장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사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진짜 선물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중요한 것은 소유가 아니라 정복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구입한 것을 선물하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며, 선물을 받는 것은 훨씬 더 큰 기쁨이다. 받는다는 것은, 비록 좋아하는 것을 받을지라도 언제나 조금은 멋쩍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물을 받을 때 언제나 좋아하는 것만 받는 것은 아니다.
p.88
 
 
조반니노 과레스키, <까칠한 가족 ; 과레스키 가족일기> 中
 
 
+)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은 유머러스하고 조금은 까칠한 그의 가족 이야기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이 사는 이야기인데, 읽고 있노라면 '오쿠다 히데오'가 제시하는 유머와 재치가 잘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살아가며 가끔씩 부딪치는 고민들과 가족들에게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살펴볼 수 있다. 아이들의 한 두마디에도 어른들의 시각과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며 부부간의 문제에서도 남자와 여자의 시각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
 
조반니노는 유명한 소설가이나 집안에서만큼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엉뚱하지만 빈틈없는 논리성을 갖춘 아들과 딸의 아버지이기에 진땀을 흘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마르케리타는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상상으로 감수성을 지나치게 자극시켜 자신과 아이들까지 감성의 늪으로 잡아두는 엄마이다. 2% 부족한 철없는 엄마의 모습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귀엽네,하고 넘길 수 있는 개성적인 여성이다.
 
알베르티노는 아버지가 쓴 책을 읽고, 아버지 앞에서 '별로'라거나 혹은 '급하게 대충 썼네'라고 평가하는 무서운 아이돌이다. 열살 남짓의 나이에도 아버지나 어머니를 관찰하는 시각이 날카로우며 삶의 난관들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난 아이다. 파시오나리아는 영리가하고 귀여운 소녀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아버지 혹은 오빠에게 조리있게 설명하고 주장을 펼칠 줄 아는 아이답지 않은 면모를 가졌다. 이제 겨우 여섯 살 정도의 아이지만 그녀의 주장에 반박하기란 절대로 쉽지 않다.
 
이 유쾌한 가족 이야기를 전철에서 읽으며 풋,풋, 웃어대다가 사람들의 묘한 시선을 받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서 정신과 의사만의 독특한 위트와 재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조반니노의 작품에서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지혜가 가족 별로 발견할 수 있다. 두 작가의 작품이 묘하게 닮았다는 느낌은 왜 일까. 어쨌든 소설이나 그들 가족의 실상을 보여주는 이 책에서는 유머러스한 그러나 탄탄한 논리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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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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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있으나마나 한 존재이면서 있었고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면서 지금처럼 없기도 했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했다.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걘 구제불능이야. 어떻게 해도 안돼. 안해도 안되고 해도 안돼. 나는 지금 걔를 이해할 능력이 없어.
- [천애윤락]
 
사귀기에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 같은 것보다 낫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뜨거운 부위에서 차가운 부위로 열이 옮아가듯 움직임이 있다. 서로 비슷해져서 고여 있는 물 같은 상태보다, 알 것 다 알아서 미지근한 관계보다는 낫다.
- [욕탕의 여인들]
 
노름은 믿음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의 운에 대한 믿음, 노름의 일회성에 대한 믿음, 인생의 일회성,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노름을 하게 한다. 누구의 믿음이 큰가, 철저한가에 따라 이기고 진다. 그렇지 않은가, 사막에서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한숨짓는 나그네여. 누군가 사막을 울림통으로 삼아 이렇게 속삭였다. 그게 누구인지는 말할 수 없다. 나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 [꽃의 피, 피의 꽃]
 
 
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中
 
 
+) 위의 글을 보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성석제의 언어유희는 일품이다.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을 연쇄적으로 나열하며 변형시키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문장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을 가만히 읽고 있자면 역설적이거나 혹은 반어적인 표현들에 독자들은 흡수당한다.
 
가끔은 고전적인 소재들을 끌어 들이기도 하고, 또 현대의 밑바닥 소재들을 소설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천상 이야기꾼인 작가가 만든 작품은 다양한 소재만큼이나 흥미롭다. 주로 짧은 문장들로 치밀하게 써내려가는 그의 필치는 까다로워보이기도 하지만, 작품마다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는 부러운 재주가 그를 편한 작가로 바꿔버린다.
 
물론 작중인물의 행동이나 결말에 의문이 남을 때도 있다. [천애윤락]의 동환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어."라는 말로 그간의 일을 대신할 때, 도대체 그 자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한참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작가의 부족함으로 치부하기 보다, 열린 가능성으로 남겨두고 싶다. 독자에게 맡긴 것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시장에서 이제 막 잡아올린 신선한 물고기같은 그의 작품들이 좋다. 그것은 그가 독자로 하여금 소설을 손에서 뗄 수 없게 하는 재미와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생각해야 하는 꺼리를, 동시에 던질 줄 아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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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
슈테파니 츠바이크 지음, 안영란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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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모욕을 용납하지 않고, 원래 모욕감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하등의 가치가 없음을 알기에 그것을 거부한다.
p.11
인생에서 누군가를 알아가는 까다로운 처음 단계에서는 절대로 그때까지 드러난 인간의 성격과 과거를 이용해 그 사람을 길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한 집에서 편하게 살기에는 젊을수록, 그리고 단순할수록 좋다.
p.31
 
나는 속으로 '삶이란 단지 현명하고 비축된 사고만으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라고 자신을 달래면서 자리를 떴다.
p.114
 
다시 말해, 불청객 게오르그가 그 날 내게 확실히 가르쳐준 게 있다면 삶은 주저하고 망설이는 자에게 벌을 내린다는 사실이다. 특히 사랑에 있어서.
p.121
 
그러니까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입에 올리고, 수없이 한숨짓고 노래하는 사랑....... 나는 이런 사랑이란 싱싱한 연어 한 토막만도 못 하고 몇 차례 후려갈겨 떠나보낼 정도의 가치만 부여하고 싶다.
p.125
 
슈테파니 츠바이크, <나를 사랑한 고양이 시시>
 
 
+) 고양이 한 마리라고 우습게 보아서는 안된다. 시암 고양이 '시시'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보다 우위에 존재한다.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의 삶을 꿰뚫어보며, 그들의 잘잘못을 가릴 줄 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은 무지한 존재들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인간은, 그러니까 시시와 대화가 통하는 인간은 고귀한 존재가 된다.
 
시시는 '울리아'를 만나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이 율리아와 함께 해주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에서 주체는 시시지 율리아가 아니다. 시시는 주인을 선택한 고양이이며 인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양이이다. 이 책은 시시의 독백으로 전개되는데 읽고 있자면 정확한 통찰력에 탄식을 자아내게 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의 시선으로 인간의 심리와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시선은 흥미롭다. 인간적인 시선을 배제하고 중립의 시선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시선까지 이어진다. 솔직하다고 해야 할까. 사실적이라고 해야 할까. 가끔 시시가 토로하는 인간과의 동거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고양이의 시선을 세밀하게 이끌어낸 작가 때문일 것이다. 유쾌하게 읽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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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인생 최인호 중단편전집 5
최인호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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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삶이란 성녀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인 것이다. 인생이란 낯선 타향에서의 짧은 귀양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낡은 허물을 벗고 천지창조 전부터 있어왔던 본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할례 의식을 통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별 없는 이별]
 
무엇보다도 먼저 네 마음의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네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단다.
- [달콤한 인생] 
 
 그는 자신의 분노에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피로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신경쇠약이 재발된 모양이라고 그는 스스로 심리분석을 해보기도 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혹사한 탓으로 신경이 팽팽한 바이올린의 현처럼 끊어져버린 모양이라고 자위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분노는 더이상 긴장과 자제로써도 눌러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분노는 그의 입을 뛰쳐나오고, 그의 손끝은 불수의 근육처럼 움직였다. 술좌석에서 그는 술만 마시면 마주 앉은 사람들과 싸웠고 어떤 때는 병을 깨고 술상을 뒤집어엎어버리기도 했다. 그가 여행을 떠나온 것은 그런 모든 분노의 일상생활에서 도망쳐 온 것이었다.
- [깊고 푸른 밤]
 
수많은 말들이 입 안에서 튀어나가도 그것은 재빠르게 포도를 먹고 그 알맹이는 삼켜버리며 씨와 껍질만 익숙하게 뱉어버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말은 더러운 씨와 껍질이었다. 말은 저주의 타액이었으며, 말은 씹다씹다 툭 뱉어버린 향기 빠진 껌에 불과했다. 그런 말들이 거리에 떠다닌다. 놓친 풍선처럼 둥둥 떠다진다. 몰래 거리에 버린 연탄재만 쓰레기라 할 것이낙. 뱉어버린 말들도 치울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 [이상한 사람들]
 
 
최인호, <달콤한 인생> 中
 
 
+)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라는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환상과 서사 안에서 현실을 해부하는 느낌이랄까. 1970년대 초반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굉장히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집은 꼬박 30년이 지난 뒤다. 마지막 작품집 이후로 꼭 20년만에 여섯 번째 창작집을 낸 것인데, 이 책을 낸 것이 2001년이었으니 그것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의 첫 소설에서 느꼈던 신선함을 기대하기에 그는 너무 노련한 작가이다. 그만의 개성을 기대하기엔 좀 낯선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그의 필치와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에 대해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건 왜일까.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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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 제8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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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반대말은 증오도 무관심도 아닌 배신이란 걸 알았을 때,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사랑이 깊으면 오해가 쌓이고, 믿음이 크면 의심도 자라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믿음은 오해의 결과이고, 사랑은 오직 의심을 낳을 뿐인가. 사랑의 뿌리는 믿음이므로, 믿음이 사라지면 사랑도 끝난다. 배신은 언제나 당하는 자의 것. 배신한 자는 예로부터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다. 믿었던 적이 없으므로.
p.16
 
사실은,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 사실이 발생한 뒤 단 일 초라도 시간이 지나야 인식의 대상으로 모양을 갖춘다. 요컨대 모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 그러므로 확고부동한 사실이란, 알고 보면 정확한 기억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정확한 기억....... 완전하고도 유일한 사실의 복원.......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혹은 자신의 행복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p.54
 
그녀는 오늘도 우연히 그와 마주치기를 기대한다. 그것은 헛된 바람이다. 우연은 언제나 기대 밖에서 찾아오는 기회이므로, 사람들은 흔히 우연한 기회에 어찌했다고 말하지만, 우연치 않은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 법. 기회를 얻고 싶은 사람은 기대하지 말 일이다.
p.154
 
막을 수 없는 후회를 비키는 방법은 정반대의 과거를 상상해보는 공허한 놀이뿐이었다. 그가 미래에 대해 막막해하는 습관은 아마도 그 공상의 습관과 더불어 길러진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상상력이란 상상력은 과거를 향해 다 써 버려서 미래를 향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게 되는 딱한 사정을 이해해줘야 하는 것이다.
p.198
 
 
이해경, <그녀는 조용히 살고 있다> 中
 
 
+)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실직한 뒤 아내의 오해(그가 소설다운 소설을 썼다는 오해. 사실은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이었는데.)가 발단이 되어 그는 소설을 써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는 처음에 소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것저것 책을 읽었으나, 그 어디서도 소설이 무엇인지 정의 내린 곳은 없었다. 그가 소설에 대해 깨달은 것은 없고 그래서 그는 한 글자도 쓰지 못한다.
 
이 작품은 소설로 인해 위기에 처한 남자가 소설이 무엇인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했는데 인물에 따라 소설을 대하는 문학관이 다른 점을 드러낸다. 문학동네 장편소설 수상작인 이 작품은 생각보다 길이가 꽤 길다. 그리고 작가가 정한 구조의 일부일지 모르겠으나 주인공을 둘러싼 우연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작가의 말대로 '우연은 기대 밖에서 오는 기회'일지니 그것을 잡느냐 잡지 못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그러나 소설에서 남자는 자신의 소설을 위해 특별히 그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쓰는 여자와 아내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할 뿐인데, 그것은 수동적인 자세일 뿐이다.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인 것이다. 물론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이 글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외부적 요인에 의한 일이지 주체의 문제는 아니다.
 
내용이 길어서 그런지 쉽게 압축되지 않는 점도 보이지만, 소설을 쓰는 것에 관해서 여러 인물들이 각기 다양한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심각하지 않은 어투로 소설쓰기를 대하고 있다. 그것을 감히 뚜렷한 주제의식이라고 불러도 될까. 어수선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자신이 제시하고자 한 바에 대해서 소설 속 상황과 인물의 행동 반경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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