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최인호 중단편전집 5
최인호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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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삶이란 성녀 테레사 수녀의 말처럼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인 것이다. 인생이란 낯선 타향에서의 짧은 귀양살이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낡은 허물을 벗고 천지창조 전부터 있어왔던 본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죽음이라는 할례 의식을 통해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이별 없는 이별]
 
무엇보다도 먼저 네 마음의 문을 열어놓지 않으면 아무도 네가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한단다.
- [달콤한 인생] 
 
 그는 자신의 분노에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피로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다. 신경쇠약이 재발된 모양이라고 그는 스스로 심리분석을 해보기도 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한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혹사한 탓으로 신경이 팽팽한 바이올린의 현처럼 끊어져버린 모양이라고 자위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분노는 더이상 긴장과 자제로써도 눌러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분노는 그의 입을 뛰쳐나오고, 그의 손끝은 불수의 근육처럼 움직였다. 술좌석에서 그는 술만 마시면 마주 앉은 사람들과 싸웠고 어떤 때는 병을 깨고 술상을 뒤집어엎어버리기도 했다. 그가 여행을 떠나온 것은 그런 모든 분노의 일상생활에서 도망쳐 온 것이었다.
- [깊고 푸른 밤]
 
수많은 말들이 입 안에서 튀어나가도 그것은 재빠르게 포도를 먹고 그 알맹이는 삼켜버리며 씨와 껍질만 익숙하게 뱉어버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말은 더러운 씨와 껍질이었다. 말은 저주의 타액이었으며, 말은 씹다씹다 툭 뱉어버린 향기 빠진 껌에 불과했다. 그런 말들이 거리에 떠다닌다. 놓친 풍선처럼 둥둥 떠다진다. 몰래 거리에 버린 연탄재만 쓰레기라 할 것이낙. 뱉어버린 말들도 치울 수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 [이상한 사람들]
 
 
최인호, <달콤한 인생> 中
 
 
+) 최인호의 [타인의 방]이라는 소설을 무척 좋아했다. 환상과 서사 안에서 현실을 해부하는 느낌이랄까. 1970년대 초반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굉장히 파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 작품집은 꼬박 30년이 지난 뒤다. 마지막 작품집 이후로 꼭 20년만에 여섯 번째 창작집을 낸 것인데, 이 책을 낸 것이 2001년이었으니 그것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의 첫 소설에서 느꼈던 신선함을 기대하기에 그는 너무 노련한 작가이다. 그만의 개성을 기대하기엔 좀 낯선 느낌이었고, 그렇다고 그의 필치와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에 대해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지는 건 왜일까.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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