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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이렇게 전차를 타고 계속 많은 것들을 보고 있어. 끝이 없는 직선처럼 언제부턴가 계속 이러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들은 전차라는 것을 아침에 정기권을 보이고 개찰구를 빠져나가 밤에 원래의 역에 돌아오기 위한 안정된 상자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
여자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불안정해지고 말야."
나는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야. 모든 건 마음의 문제지. 만일 인생을 전차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돌아가야 할 집과 계속해야 할 일들을 전차라는 기능과 뒤섞지 않으면, 여기에 탄 사람들 거의 모두가 가방 속의 지갑에 들어 있는 돈만으로도 지금 곧 아주 먼 곳으로 갈 수도 있어."
- <신혼부부>
"우리 이제 괜찮아, 그런 거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주 충분히 생각해 오다가 실행에 옮긴 단계니까 이제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자.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있어. 조금씩. 기어가듯이 조금씩이라도 좋은 생각을 하자. 할 수 있는 일을 늘리자. 그렇지 않으면 살아있다고 할 수가 없어. 지금은 아무리 이상한 모습이라도"
- <도마뱀>
꾸벅꾸벅 졸며 나는 생각했다.
같은 음식, 같은 냄새, 같은 방에 포함된 정보가 꾸게 한 똑같은 꿈. 제각기 다른 몸을 가지면서 공유할 수 있는 것, 생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수많은 것들의 물컹물컹한 무게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 <김치꿈>
아빠와 엄마는 이곳에서 살아갈 거야.
너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거라. 어디에 있어도 너는 용서받고 사랑받고 있단다. 우리들에게서만이 아니라.
- <피와 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원하던 걸 얻었으니까 이제 필요가 없어져 버린 거야. 이제 괜찮아, 하고 싶지 않은 건 하지 않는 것, 그게 뭐가 나쁘다는 거야? 그런 사람들 많이 있었잖아. 넌 사람의 그런 마음의 자유까지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정도로 센스가 없는 사람이었어?"
- <오카와바타 기담>
요시모토 바나나, <<도마뱀>> 中
+)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 소설은 '죽음'을 중요한 소재로 삼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동전의 앞뒤처럼 존재하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각 소설의 주인공들은 평범하지 않지만,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혹시라도 그것을 벗어나게 되면 닥칠 두려움에 불안해하는 사람의 이야기(신혼부부), 신의 힘을 빌어서라도 죽어가는 사람을 막고 싶은 도마뱀 여자, 때로 자신이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는 점을 확인하며 자책하는 그녀(도마뱀), 필요없는 기억을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뇌수술을 앞둔 사람(나선), 김치꿈을 동시에 꾸는 불륜의 남녀(김치꿈), 따로 살아온 공동체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려는 여자(피와 물), 지나치게 문란한 성생활을 해왔던 여자(오카와바타 기담)가 그들이다.
그들에게 삶은 죽음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언제 찾아올지 모르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생(生),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깨달음. 인물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겪으며 체득한 것들을 위기 극복의 의지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인생의 극한 지점을 오고 가면서도 줄곧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는 작가의 필치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감정의 변화 없이 일관된 목소리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았을텐데. 어찌보면 삶과 죽음을 객관적인 거리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