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카노네 고만물상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마루야마는, 꼭 문진 같아. 마사요 씨가 그랬다. 히토미는 그렇게 생각 안 해? 남자가 위로 올라탈 때 말이야, 자신이 꼭 문진에 눌려 있는 종이 같다는 생각 안 드냐고. 문진이라면, 그 문구세트에 들어 있는 그거 말씀이세요? 내가 되묻자, 마사요 씨는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이래서 요즘 젊은이들이랑 말이 안통한단 말이지. 한 번도 문진을 사용한 적이 없나봐? 꼭 종이나 책이 아니더라도 왜 평소에 물건을 눌러놓을 때 사용하잖아.
p.56
나도 사키코 씨는 싫지 않다. 물론 나카노 씨도 난 싫어하지 않는다. 싫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좋다'에 가까운 '싫지 않은 사람'이 어느 정도 있고, 반대로 '싫다'에 가까운 '싫지는 않은 사람'이 어느 정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걸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케오의 손을 살짝 잡았다. 다케오는 그냥 멀뚱히 있었다.
p.112
"정말 돌아가셨네요." 내가 말하자 마사요 씨는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우린 서로 잠자코 역까지 걸어갔다. 표를 사고 개찰구로 들어가려는데 내 등에다 대고 마사요 씨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했어." 혼잣말처럼 웅얼거린 것도 아니요, 크게 소리 지른 것도 아닌, 그냥 이야기하던 끝에 덧붙이듯, 말했다.
"엣?" 하면서 돌아보자 마사요 씨는 표정의 변화 없이, 다시 한 번 "세상에서 제일로 사랑했어."하고 반복했다.
p.310
가와카미 히로미, <나카노네 古만물상> 中
+) '다케오'와 '히토미', '마사요'와 '마루야마', '나카노'와 '사키코' . 이들 세 남녀관계가 소설을 만들어간다. 딱히 연인이라고 설명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어쩌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가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인물들의 성품이 좀 답답하긴 했지만, 쉽게 잘 읽히는 소설이었다.
뇌리에 깊이 있게 남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을 바라기엔 결론에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 나름의 해결 방식, 죽음, 이별, 사랑을 확인하는 것. 그로 인해 깨닫는 인물들의 사랑관. 그래도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소설을 읽으며 역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그 전부를 이해해달라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표현한 것이 전부 전달되는지도 모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역시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랑도, 인생도 나카노네 고만물상에서 매매되는 상품들처럼 각자의 주인을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진짜 주인을 찾게 될 때까지 끝없이 사고 팔리는 만물들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