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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가 좀 들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알게 된 게 하나 있는데,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모든 게 간단해지는 것 같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면 그만이거든.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 대해 뭐라고 해도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내가 잘못한 거라면 고쳐야겠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내가 잘못해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싫어서 뭐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야.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고 그걸 참을 수 없어서 덕훈 씨가 헤어지자고 했던 거잖아. 근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덕훈씨는 원래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 사람들인 거야."
pp.63~63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행복하게 사는 게 좋잖아.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거야.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작은 피해와 내 행복이 부딪치게 된다면 나는 내 행복을 택할 거야. 내 인생을 그 사람이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잖아. 이기적이라고 하겠지만 하는 수 없어. 그 반대로 내 자신의 작은 피해와 다른 사람의 행복이 부딪치면 나도 그 피해를 감수할 거야."
p.85
또 다른 책장 한 칸은 결혼과 사랑에 대한 책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중에 내가 아는 책은 없었다. 이놈은 결혼이나 사랑마저도 책으로 읽는 놈이란 말이지.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위험하다. 책 속의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 주어진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따지고 보면 책이야말로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가장 위험한 시뮬라시옹의 세계다.
p.202
삶이 어렵고 힘겹다 해도 살다 보면 살아지낟. 살다 보면 힘겨움에도 적응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일들도 겪다 보면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된다. 알래스카의 혹한도, 열대 지방의 무더위도 살다 보면 적응해 살아갈 수 있다. 삶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란 없다. 다만 견딜 수 없는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견딜 수 없는 순간을 견디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바꾸어 버린다. 둘째, 견딜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바꾼다.
p.217
보너스 팁. 싫어하는 인간을 즐겁게 보는 방법.
--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 해서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p.342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中
+)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몇 번이나 웃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이런 사람이 어딨어? 라고 생각되다가도, 어느새 '인아'의 역설적인 논리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덕훈'이 '인아'의 논리에 따르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인아는 자유로운 여자라기 보다, 자유로움을 표방하는 이기적인 여자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덕훈에게 주는 상처쯤이야 순식간에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사랑을 방패 삼아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여자랄까.
한 사람이 두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선 안되는 것이 보편적인 윤리다. 사랑을 도덕이라는 잣대 앞에 두고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적일 수 있으나, 사실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부분들에 도덕이나 윤리를 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쨌든 인아의 사랑 방식은 덕훈에게 당혹스러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것은 덕훈의 삶도 덕훈의 도덕도 앗아가버린다. 소설의 말미에서 덕훈은 자신도 모르게 인아의 올가미에 잡히게 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고 인아가 나쁠까. 그렇게 말하는 것도 어색하다. 어쨌든 모든 선택은 인아와, 덕훈과, 재경에게 달린 것이니까.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것이니까.
이렇게 사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어쩐지 현대 사회에서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며 씁쓸하기도 하다. 도대체 사람 사이의 신뢰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어떤 선택 앞에서도 가장 큰 이유나 원인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받아들이는 주체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나만의 사랑을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정말 이기적인 행위다.
한 권을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예전에는 소설을 쓸 때 작중인물에 중심을 두어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품을 통해 공통의 취미나 관심사로 장편 소설을 이끌어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 혹은 연애, 결혼에 대해 돌이켜보기에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어이없는 실소를 내게 하므로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