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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나를 깨운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90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4년 8월
평점 :
나, 덤으로
황인숙
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이 시인의 두번째 시집...92년 스물 셋에 나는 이 시에 별표를 쳤다.
그렇다면 15년이 흐른 지금의 나는....덤의 덤을 살고 있는 것일까.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슬픔이 나를 깨운다>,<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 세 권 모두 좋았다. 내가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바로 두 번째 시집인 이 시집이었다. 지금은 책 소개도 가물가물하지만,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팝송 같은 어조라고 말하면서 소개해 주었던 것 같다.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 같은데 읽다 보면 슬퍼진다. 그래서 이 시집의 제목을 자꾸 슬픔이 나를 깨문다라고 읽게 되기도 한다.
가을이다. 시 읽기 참 좋은 계절이다. 또다시 예전의 그 느낌으로 읽게 될까 아닐까, 나는 얼마만큼 많이 걸어왔을까 생각하게 되는 추억의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