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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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김수영에 관심이 있고 그저 그의 시를 읽고 싶은 정도라면 이 책을 고르는 데 그리 주저할 필요가 없겠지만, 적어도 문학 전공자나 김수영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구입하기 전에 꼭 한번 재고해보아야 할 것이다. 최대한 원문과 가깝게 작품들을 수록했던 1981년판과 달리, 이번 판은 보는 사람에 따라 원작을 '훼손'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여러 부분에 수정을 가했기 때문이다. 한자 노출을 최대한 줄였고, 사어화된 한자어들을 한글로 바꾸었으며, 외래어들을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대부분 고쳤다. 현재 통용되는 한글맞춤법 규정에 따랐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원칙에 대한 평가는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솔직히 당혹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턱을 괸 채 의자에 앉아 있는 김수영의 모습을 담은 유명한 흑백사진이 컬러사진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김수영이라 하면, 나는 지금 보아선 어색하기 짝이 없는 괴상한 외래어와 순화되지 않은 한자어들, 그리고 세월에 마모되지 않은 날카로운 어감의 말들 등이 뿜어내는 괴이한 힘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아마 그처럼 거칠고 투박한 '날것'들이 그의 명민한 정신과 맞물려 오늘날에도 그 싱싱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데 깊이 매혹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2003년판 김수영 전집은 그저 매끈하기만 하다. 혹시 매끈함과 당대성을 바꿔치기한 것은 아닐까. 적어도 이것만은 기억하자. 김수영이 시를 썼던 시기는 2003년이 아니었다는 점을. 이 책이 단순한 시선집이 아니라 '전집'이자 '정본'을 표방하고자 했다면, 가독성보다는 정확성과 충실성에 더 비중을 두고 편집방침을 세웠어야 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아주 다양한 판본들로 존재하지만, 그 많은 판본들에는 대부분 엘리자베스 왕조 때 쓰였던 말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은가. 글쎄, 문학이란 게 과연 무엇일지 고민해보자. 참고로 헌책방에 가면 1981년판 김수영 전집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부담없이 읽고 싶은 사람은 백낙청이 엮은 <사랑의 변주곡>(창작과비평사)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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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2006-01-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뿌리서점>에 가서 샅샅히 찾아 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저번에 <숨어있는책>에서 찾아봐도 그렇고... 오늘 혹시나 싶어 인터넷 헌책방에서 찾아보니 역시 보이지 않네요. 이런글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혹시 구판 파는곳 아시는분 메일 부탁드립니다. for_no_on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