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량 평전
안우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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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 전공자조차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게 될 정도로 김사량(본명 김시창)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작가로 남아 있지만,  문학 세계든 삶이든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앞으로 더욱 꾸준히 조명받고 탐구되어야 한다. 전쟁 참여 독려 등의 특정한 목적이 아닌 이상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던 1941년에서 '45년 사이, 이 땅의 작가들은 꿋꿋이 한국어를 벼리며 저항하든가, 기나긴 침묵 속에 웅크리든가, 아니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식민제국주의에 투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이런 진퇴양난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부딪치고 고민하면서 그 결과물들을 쏟아낸 사람이 바로 김사량이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던 <빛 속으로>를 비롯하여, 갑신정변 및 동학운동의 격동기와 화전민의 삶을 극적으로 결합시킨 <태백산맥>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요 작품들은 일본어로 씌어졌지만, 그의 작품은 식민지 아래 조선의 현실과 그로 말미암은 어느 명민하고 섬세한 지식인의 자의식, 그리고 식민지 작가가 짊어져야 했던 '이중어 글쓰기'에 대한 고민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탈식민주의 이론'이 주목할 만한 특징들이 한데 녹아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 역시 문인들의 종군 행렬를 마냥 피해갈 수만은 없었고, 글쓰기는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했다. 이에 따른 무력감으로 괴로워하며 자신이 막다른 지점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그는 1945년에 중국으로 탈출하여 무장독립단체인 화북조선독립동맹에 합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국독립운동사 및 문학사에 값진 르포문학의 성과로 기록될 <노마만리>를 남긴다.

평전이 단순히 해당 인물의 생애를 통째로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만의 시각에서 해당 인물의 문제의식을 추적하여 재구성하고 이를 역사적 맥락에서 비평하는 것이라고 할 때, 재일교포 안우식의 <김사량 평전>은 평전이라는 갈래의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여기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김사량은 1939년에서 1945년까지, 곧 그의 글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부터 중국으로 탈출하기까지의 생애뿐이지만, 그 짧은 기간 안에 그가 다른 작가들이나 지식인들과 뚜렷이 변별되는 지점이 풍부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동반한 저자의 성실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정확하게 포착된다. 그것은 바로 "상승 지향과 하강 인식의 접경 지점에 서서 몸부림치는, 한 명의 성실한 조선 민족작가의 모습"일 것이다. 김사량은 남한에서는 '북쪽 작가'라는 이유로, 북쪽에서는 중국 체류 당시 김일성 직계부대 소속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그동안 온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반면 일본에서는 그의 작품이 전후문학 선집에 실리는 등 그에 대한 연구가 꽤 진척되어 왔다. 김사량의 문학은 한국문학인가, 일본문학인가? 김사량을 기억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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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07-11 0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낯선 작가예요. 이후 관심을 가져봐야지, 님의 글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