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 끊이지 않는 분쟁, 그 현장을 가다
이유경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은 여행기, 좀더 저널리스틱하게 말하면 현장취재라는 글쓰기 형식이 지니는 미덕과 한계 모두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이 책은 철저하게 '발로 뛰어다니면서' 씌어졌기 때문에, 그 어떤 뉴스나 시사교양프로그램보다도 생생하고 구체적인 현장의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특히 버마(미얀마가 아니다!)와 카슈미르, 스리랑카 현지 무장투쟁 세력과의 인터뷰는 아마도 이 책 말고는 당분간 접하기 어려울 것이라 사료되는 더없이 소중한 기록이 될 것 같다. 또한 식민통치와 해방 뒤 남성중심적 민족주의 세력, 종교근본주의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아시아 대륙에서 페미니즘이 무엇을 고민하고 성찰해야 하는지를 무겁게 시사하고 있다.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분쟁지를 취재하려면 이 정도의 깡다구는 필요하다구!"라며 앞장서는 듯한 저자의 패기와 발랄함이 하나의 훌륭한 본보기가 될 법도 하다. 마치 한국의 모모 신문들처럼 아시아 여기저기에도 자국의 분쟁들을 왜곡, 편파 보도하는 수구 신문들이 존재한다는 저자의 재기 넘치는 설명을 접하게 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아닌 '낯선'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그리 유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각 장마다 각국의 분쟁상황을 간략하게 서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쟁의 역사적 배경과 사건사들을 자세하게 정리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얘네들은 대체 왜 이렇게 살고 있고 언제까지 싸우기만 할 거야?'라고 질문하기 시작하면, 저자의 좌충우돌 취재기와 그 안에서의 온갖 '수다'들을 감당해 내기가 버거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점을 크게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유재현의 [아시아의 기억을 걷다]에서도 느꼈던 점이기도 하지만, 아시아의 어느 나라든 구구절절하고 기막한 내력들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서, 세계사 과목 시험공부를 하듯 단지 책 한 권으로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는 같은 대륙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그토록 무심했던 대가인 셈이다.

개인적인 불만은 이 책이 아시아 각국의 어제와 오늘을 소상히 알려주지 않는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자 '나'의 이야기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는 데 있다. 한반도라는 "섬" 소녀가 어떻게 아시아라는 "대륙의 딸"로 변모해 갔는지를 자랑스럽게 밝히는 프롤로그부터, "나는 아직도 꿈 많은 소녀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자신이 삶에 갖는 용기와 열정,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을 당당히 피력하는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나'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차고넘쳐서 가끔은 '아시아'가 '나'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이 부분이 미덕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그러한 내용들이 가져다 주는 솔직함과 친근함은 때로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자기 중심적이어서, 즉 그만큼 진부해서, 이 책을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그저 '모든 걸 내려놓고 훌훌 떠날 수 있는 여유를 지닌 젊은 여성의 호기심 넘치는 아시아 기행'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업으로 평가절하시키는 약점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가뜩이나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많고 지면은 한정되어 있는데, 막상 짧은 꼭지에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소소하게 잔뜩 들어 있으면 읽다가 맥이 빠진다. 저자의 열정과 용기는 이 책에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시도와 기록이 대단히 중요하고 뜻 깊은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니, 다음 책부터는 자기 목소리를 조금만 낮추면 좋겠다. 저자는 우리에게 정말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리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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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8-01-22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며 저도 조금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그걸 콕 집어주셨네요.

사량 2008-01-22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눈길 조심하시고요, 에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