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용후기 - J. 스콧 버거슨의
스콧 버거슨 지음, 안종설 옮김 / 갤리온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전작 [발칙한 한국학]을 꽤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버거슨의 새 책이 나온다기에, 그것도 한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담고 있다기에 조금 자학적으로 들릴지는 몰라도 제법 기대(?)를 했었다. 적어도 여기저기 매체에 실린 책 소개나 보도 자료들만 봤을 때는 홍세화나 박노자의 글보다도 뼈아픈 독서 체험을 선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이다. 이쯤 되면 책 홍보만큼은 대박을 친 셈이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고 단숨에 책을 덮은 다음 바로 든 느낌은, 가혹하게 말해 '속았다'는 것이다. 책 소개지면과 보도자료에서 언급된 내용 외에는 딱히 한국 사람을 불편하게 할 만한 부분이 많지 않아 보인다. 실린 글 하나하나가 크게 걸리는 것 없이 술술 넘어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책의 중심 기조를 이루는 한국인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물신 숭배에 대한 비판이야 그 타당성에 고개를 끄덕이더라도 굳이 이 책을 집어들어야 자각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 내부의 시선을 거친 것만으로도 허다한 글들이 쏟아져 나온 지 오래다. 386 남성의 내면 독백을 정리한 것이나 인도네시아에 성업 중인 한국인 소유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현지 여성을 인터뷰한 것도 부끄러운 내용들을 담고 있긴 하지만, 그 내용들은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도처에서 접한 이야기들을 재구성한 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반드시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라고 해서 '개념 없는' 젊은이들을 조롱하고 비난한 부분은 무척 재미있음에도, 그것이 인터넷 기사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는 천방지축 댓글들과 가끔 겹쳐보이기도 한다는 점은 이 책의 저자가 지닌 열정과 성실함을 상당 부분 깎아먹는다. 구성과 스타일 면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참신하고 자유롭게 짜여져 있던 전작에 비하자면 이 책은 많이 단조롭고 평범해졌다. 발언수위가 높아진 것과 반비례하는 것일까? 그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는 사실을 그런 식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일까?

그러므로 한국과 한국인, 한국문화를 색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할 때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전작 [발칙한 한국학]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소재로 한 외국인들의 책들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부분이 그나마 도움이 되려나. 아마 이 책은 대한민국보다는 차라리 저자인 버거슨이라는 인물을 들여다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욱 재미날지도 모르겠다. '진'(zine) 예찬론자이고 포스트모더니스트를 자처하는 자유로운 이방인으로서의 버거슨이라는 인물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 사람의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지적 토대나 배경이 조금씩 이해될 것이고, 우리가 그와 얼만큼 공감하고 또 멀어질 수 있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에 비해 부쩍 잦아진 그의 현학적 태도와 자기현시 욕구(이 책의 마지막 글은 셀프 인터뷰이다), 나아가 자기모멸이 그 진정성과 나름의 진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결국 '뭣 모르는 외부인의 시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위치에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타자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 그가 그토록 비판했던 자세였건만, 글 속에서 그러한 시각, 곧 자기모순은 이론의 이름을 빌려온 그의 문장 속에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고 반성의 계기를 가져다주는 책이긴 하지만, 사서 소장할 만한 책이라고 감히 권하지는 못하겠다.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를 비판적으로,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따져보고 싶다면 최근 강준만이 생산하는 일련의 작업에 주목하는 것이 훨씬 소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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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7-05-26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칙한 한국학은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이번 책은 도발적인 제목에 비해 별로인가 봅니다.
외국인들의 한국인 비판, 뭔가 스멀스멀하고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게 있지요.ㅎㅎ
사량 님 오랜만입니다.^^

사량 2007-05-2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가워요, 로드무비님. ^o^ 예, 좀 별로예요. 굳이 읽고 싶다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편이...^^; 한동안 서재활동을 전혀 안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앞으로 한 달에 한 편 정도는 리뷰를 올려볼까 하는데, 예전보다 사람들의 '서재질'이 많이 뜸해진 것 같아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