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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 망태 부리붕태 - 전성태가 주운 이야기
전성태 지음 / 좋은생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60년대를 회상하다.' 왠지 이 산문집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면이 있습니다.
전부 옛날 이야기만은 아닌데요, 그 부분이 작가의 근본처럼 강하게 지면에 뿌리를
내리고 그 감성으로 글을 써나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작가는 지금 아주 현대
적인 스타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그런 감상을 하는지도요.
뒷편에 그런 일화가 잠시 나오는데 '한국적'인 글들은 이상하게 한(恨)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이 기구했다거나 그런게
아니라 최소 60-70년대 이전까지의 우리네 감성이 그러했던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한동안 한국 작가의 책을 멀리하다가 다시 잡으면 다른 작가인데도 같은
냄새가 납니다. 참 독특하지요.
혹은 제가 어린 시절 그 시대 이전의 글을 많이 읽고 자랐기 때문에 그런 고정관념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만큼한 볼 수 있다보니...
작가가 '주운 이야기'라고 제목을 붙인 것도 창작이 아닌 경험에서 나왔기에 그렇게
표현을 한 것 같습니다. 특이한 제목은 어린 시절 동네 할아버지의 별명 붙여주는
형식이었습니다. 앞의 '성태'는 이름, '망태 부리붕'까지는 동일하고 이름의 마지막
자를 이 형식 끝에 붙여서 '붕태'가 별명이 된다고 합니다. 참 따스해지는 일화였습니다.
같은 별명을 갖는 유대감같은 것이 이 마을 아이들에게는 끈끈하게 있었을 것 같습니다.
에세이는 이상하게 읽는데 속도감이 붙질 않아서 꺼려하게 됩니다. 물론 언제나 쉽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요. 이 책도 역시 속도감이 붙지 않았
는데 그게 에세이 특유의 작가의 자기 만족적인 글들의 나열 덕분이 아니라, 어떤
나의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의 공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저에겐 고향도 도시이고
조부모님 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마치 근본을 시골에서 흙에 뿌리내리고 살았던
사람처럼 그것이 내 고향인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한국적인 글'이라고 느끼는 그 선입견처럼 그런 글들을 통해서 도시가 되기
전의 '한국의 모습'을 눈이나 몸이 아닌, 가슴에 새기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국 작가들의 번역본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단어 하나하나가 눈에 새겨져
아무래도 속독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모습들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들 속에서 느껴지는 그 따스한 풍경은
요즘 아이들이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고 (저 또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었지요)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정말 자연을 벗삼아 현재를 즐기는
그런 한폭의 그림이었기에 더욱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난한 시절이었고 동생을 돌봐야했고, 학교를 늦게 입학해야했던 그런 이야기들도
운치가 있습니다. 컴퓨터를 붙들고, 먼 거리를 쉽게 오가는 지금이 훨씬 편한 세상이지만
그 시절의 운치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 되었지요. 그 때만 행복한 시절이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는 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도시에서 살아갈 저 자신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걸음 물러선 입장에서 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형제들의 이야기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주운 이야기라는 부제를 붙였지만
마치 만들어낸 이야기처럼 감동적이었습니다. 누군가 그랬던가요. 소설보다 더
비현실적인 것이, 더 아름다운 것이 현실이라구요. 좀 더 아름다운 현실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거나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느끼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더 가족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읽으면서 참 많은 것들을 느꼈는데 정작 이렇게 써야할 때는 감정적인 것들만
머리에서 맴도는지 모르겠네요. 염전을 일구는 사람들이나 밭을 일구는 사람들..
그들의 열심히인 모습을 끝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온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자동화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데, 질 좋은 천일염을 먹어본 사람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정제염과의 차이를 분명 느낄 수 있듯이 장인의 길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단지 오래되어온 일만이 '장인의 길'이라는 것은
아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을 그만큼 열심히 하고 더 나아지고자 하는 것이
바로 장인의 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주운 글이라고 썼지만, 다른 사람이 썼다면 다른 느낌의 글이 되었겠지요.
이 작가의 이런 글이 또 장인의 길의 일종이 아닐까 싶습니다. 머리를 쓰는 일이
몸을 쓰는 일보다 힘든 것은 결과가 눈에 보이기 까지의 과정들이 마치 쓸모없는
듯 보잘것 없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주웠다는' 글 안에는
그런 몸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 것은 아닐까란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길과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동경하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생긴대로 살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 '동경하는 마음'
자체 또한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짧은 일화들이 나열된 산문집이었지만,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 준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