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구판절판


산다는 일이 싱거워지면 나는 들녘으로 바다로 나간다. 그래도 간이 맞지 않으면 섬 밖의 섬 마라도로 간다. 거기서 며칠이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마라도에선 수평선이 넘을 수 없는 철조망이다.
외로움 속에 며칠이고 나 자신을 내버려둔다. 그래도 모자라면 등대 밑 절벽 끝에 차려 자세로 선다. 아래는 30미터가 넘는 수직 절벽이고, 바닥은 절벽에서 떨어진 바위 조각들이 날카로운 이를 번뜩인다. 떨어지면 죽음이다. 정신이 바짝 든다.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불안고 두려움이 계속된다. 눈을 감고 수직 절벽을 인식하지 않는다. 마음이 편안하다. 수직 절벽임을 인식하면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든다. -25p쪽

아침 촬영을 끝내고 초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늘 지나다니는 익숙한 길에 6월의 들꽃들이 안개 속에 피어 있었다. 싱그러움을 선물하는 들꽃들과 아침인사를 하다가 도 틈 사이에 피어난 원추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꽃을 꺾었다. 집 주변에서 흔히 보는 원추리지만 그날만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며 책상 위에 놓인 育?보는 순간 후회가 되었다. 꺾을 때의 가슴 뭉클하던 감정이 살아나지 않았다. 원추리를 가지고 정원으로 나와 느릅나무 밑에 놓았다. 진달래, 소나무, 보리수 밑에 놓아 보았지만 어디에도 꽃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잔디밭 한가운데도 아니고 잡초 우거진 뜰도 아니다. 햇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발견했를 때와 비슷한 돌 틈 사이에 꽃을 놓았다. 햇볕이 쨍한데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이 어느 정도 되살아 났다. -78p쪽

청소를 끝내고 빨래를 하는 동안 짙은 안개가 밀려왔다. 원추리를 떠올리고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돌, 안개, 잡초와 어우러진 원추리는 아름다웠다. 매일매일 대하는 집 주변의 눈에 익은 풍경일지라도, 한순간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시시때때로 달라진다. 흔히 보는 일상의 풍경이나 사물도 사람의 기분에 따라 느낌이 제각각이다. 역시 아름다움이란 주관적인 것일 뿐 객관적인 것일 순 없다.-79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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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맘, 또또맘 2006-08-0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원추리 꽃이 떠 올려 지지 않네요. 원추리 나물은 알겠는디 .ㅋㅋㅋ 변화무쌍한 자연을 눈에 담을수 있는 여유는 언제든 행복의 시간입니다.

봄맞이꽃 2006-08-09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오란 원추리꽃 앞에 서면 누구나 발걸음을 멈춘다고 하네요. 그리고 마음까지 화사해진답니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주는 꽃입니다.^^ 해리포터님이 읽으신 이책을 저도 꼬오옥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해리포터7 2006-08-09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똘이맘님 나리꽃과 비슷하다고 보심 됩니다.^^
봄맞이꽃님 아 그렇군요.ㅎㅎㅎ 네 이책 참 좋더군요..제주도의 풍경이 고스란이 담겨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