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한샘 > (퍼온글)사내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를 망친다

2006년 7월 3일 (월) 08:49   사이언스타임즈

사내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아이를 망친다



▲ 윌리엄 폴락 교수의 베스트셀러 ‘진짜 소년’의 영문판 표지 ⓒ
“사나이가 왜 그래?” “사내자식이 계집애처럼 울기는.” 아마 어렸을 적에 이런 얘기를 듣지 않고 자란 사내는 없을 것이다. 나도 이런 얘기를 주변에서 많이 듣고 자랐다. 사내답다는 것은 늘 좋은 것이고 계집애처럼 행동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소년들은 귀가 따갑게 교육을 받고 자란다.

하지만 사내다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소년들을 망치고 있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남자 아이를 잘못 기르고 있다고 비판한 책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 미국에서 이런 주제로 나온 책만 해도 6권이 넘는다. 남자 아이들의 정서 불안과 탈선이 미국 가정과 학교의 큰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몇 년 전 콜로라도 주 스프링필드에서 있었던 총기 난사 사고가 미국 사회에는 큰 충격이었다. 미국에서는 문제아를 모아 가르치는 특수반을 따로 만들기도 하는데 이 특수반 학생들의 67%가 소년이다. 자살률도 소년이 소녀보다 5배나 높다. 또한 미국 교육부의 평가에 따르면 소년들은 읽기와 쓰기에서 소녀에 비해 각각 7점, 13점이나 뒤졌다. 반면 과학과 수학은 소녀가 소년을 거의 따라잡았다.

소년의 비행과 탈선이 심각한 우리로서도 미국인이 왜 요즘 부쩍 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는지 주의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버드 대학 의대의 심리학자이자 매클린 병원의 남성 및 소년 센터 소장인 윌리엄 폴락 교수는 1998년 ‘진짜 소년: 소년기의 신화에서 우리 아들을 구출해야’에서 소년들이 19세기의 시대 착오적인 남성관을 강요받으며 자라는 데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가 인터뷰했던 한 남자 아이가 여자 친구에게 차였습니다. 내가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고 어찌할지를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정말로 외롭겠구나’ 하고 말하자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바로 사내가 해야 하는 행동이니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폴락 교수는 이 남자 아이가 사내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된 문화적 환경을 ‘보이 코드’(Boy Code)라고 정의한다. 소년들은 놀이터에서,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동료, 코치, 선생 그리고 부모로부터 알게 모르게 보이 코드를 배운다는 것이다.

남자 아이들이 강요받는 보이 코드는 크게 네 가지. 첫째 남자는 냉정해야 하고, 둘째 위험을 무릅쓸 수 있어야 하며, 셋째 지위를 얻고 지배해야 하며, 넷째 여자 아이들처럼 행동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여성 파워가 강해지면서 가정은 강하고 부드러운 남자의 모습을 가르쳤지만, 이런 교육은 아이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이다. 폴락 교수는 낡은 남성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세 가지의 잘못된 통념 때문이라고 본다.

첫째는 “사내애들은 어쩔 수 없다”(Boys will be boys)라는 고정관념, 즉 본성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사내들이 있는 곳에는 테스토스테론이 있고, 테스토스테론이 있는 곳에 공격성과 폭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폴락 교수는 “테스토스테론이 소년과 소녀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미미한 차이일 뿐 소년들의 행동도 대부분은 소녀들처럼 환경과 사랑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둘째는 “사내는 사내다워야 한다”(Boys should be boys)는 통념이다. 즉 진정한 남자나 소년이 되는 길은 존 웨인이나 포천 잡지에 나오는 5백대 기업가들처럼 한두 가지만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폴락 교수는 남자가 되는 길도 여러 가지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잘못된 통념은 “남자 아이들은 해롭다”(Boys are toxic)는 것. 따라서 천성이 공격적인 남자 아이들은 교화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폴락 교수는 이것도 상투적인 생각일 뿐 오히려 남자 아이들이 동정심이나 풍부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폴락 교수는 “출생 직후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감정이 풍부하고, 엄마와 상호 작용도 많다”고 말한다. 그런데 초등학교 3∼4학년이 되면 남자 아이들은 고통을 숨기고 자신의 기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보이 코드를 알게 모르게 배우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에서 크면서 남자 아이들은 쉽게 흥분하고 화를 잘 내는 소년이 된다. 슬픔이나 약한 모습은 표현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일 슬픔이 아주 크면 아이들은 고립되거나 우울해지고 살인처럼 극단적인 길로 빠지기도 한다. 폴락 교수는 “화를 내는 소년의 허장성세의 이면에는 슬픔이나 상처받기 쉬운 감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폴락 교수는 초등학교 취학기가 소년이 정신적 외상을 가장 많이 받는 시기라고 강조한다. 이때 아이들은 의지해 왔던 엄마로부터 멀어지면서 큰 고립감을 느끼지만 사내가 되기를 원하는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약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게다가 엄마들은 아이가 마마 보이가 될 것이란 염려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오해 때문에 철이 들 때쯤이면 의도적으로 아이와 거리를 두려고 해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폴락 교수는 소년이라 하더라도 엄마의 사랑은 아무리 많이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고 주장한다. 엄마의 사랑을 지나치게 받으면 아이가 경쟁을 싫어하고, 영웅심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엄마와 강하게 결합되어 있는 남자일수록 자라서 성공하고, 정서적으로도 건강하며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위기를 맞은 아들과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폴락 교수는 액션 토크(Action Talk)를 하라고 권한다. 함께 무언가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다.

“우선 아들이 아무도 조롱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찾아라. 둘째는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찾아라. 장기든 농구든 어떤 것이든 좋다. 놀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요즘 기분이 어떤지 질문해 본다. ‘어제부터 조용한데 무슨 일이 있는 거니?’라고 물을 수도 있다.

부모는 액션 토크를 통해 소년들이 마음을 열어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그러면 아버지는 어린 시절 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더 강해졌다는 얘기를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대화를 통해 당신의 아들이 결코 고통을 혼자 겪고 있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 당신과의 결속력은 강해지고,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폴락 교수는 남녀공학 학교가 남자 아이들에게 해로운 장소가 되었다며, 남녀공학이더라도 남자와 여자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남녀공학 학교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질문과 대답을 잘하는 반면 남자 아이들은 자신이 어리석게 보이지는 않을까 염려해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남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과 달리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만지고 조작할 때 더 배우지만, 학교는 그런 짓을 나쁜 행동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학교에 남자 아이들의 모델이 될 만한 남자 선생의 숫자가 여자 선생에 비해 매우 적은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과 달리 ‘좋은 남자애’(A Fine Young Man)의 저자인 마이클 구리언은 남자가 정서적으로 본래 불안정하다는 이론을 편다. 수만 년 동안 사냥꾼으로 진화하면서 남자에게 중요한 것은 공격하고 문제를 빨리 푸는 능력이었지, 채집이나 육아를 맡은 여자들처럼 정서적인 데이터를 다루도록 뇌가 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사냥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행동 특성과 변화된 환경 사이의 모순을 풀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신동호 뉴스와이어 편집장
전자신문,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과학동아 편집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나이트 사이언스 저널리즘 펠로우쉽을 수료했다. 현재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해주는 상업통신사인 뉴스와이어의 편집장 겸 이사직을 맡고 있다.



신동호 뉴스와이어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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