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일의 겨울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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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지가 참 포근하다. 막상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글의 내용은 몽골의 매서운 겨울을 묘사하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표지에서는 그 겨울을 이겨내고 마침내 봄바람이 알랑이듯 따스한 노랑과 연두의 조화가 감격스럽다고나 할까... 

 48톤이나 되는 트럭을 타고 10시간을 달려 도착한 차궁엔 어린 갈샨이 태어나 채 다섯번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가 산다. 장차 태어날 동생이 엄마를 몹시도 힘들게 해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집안일에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는 말이다.즉 돌보는 엄마의 역할보다는 보살핌을 받는 쪽이어야한다)  의사의 소견에 따라 좁디좁은 집을 떠나 멀리 할아버지에게 맡겨지는 이 아이는 확실하게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내놓여 지게 된다. 갈샨은 할아버지를 '미친 늙은이'라고 하면서까지 엄마곁은 떠나지 않으려하지만 부모의 결정은 완고했다.

 몽골도 이제 도시화가 되어 갈샨이 사는곳도 도시의 좁은 아파트로 드넓은 초원과는 비교되는 곳이다. 갈샨의 친구는 관광객의 1달러를 받기위해 온종일 전통의상을 빼입고 거리를 서성인다. 그런것이 못마땅했던 갈샨은 어쩌면 할아버지가 사는 초원의 차궁이 더 어울릴것 같다. 장성한 아들이 영어선생질(?)이나 하던 여자와 결혼을 하고 집안대대로 내려오던 초원에서 말을 타며 양떼를 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래로 참 많이도 서운했으리라 짐작가지만 갈샨을 대하는 태도는 싸늘하기만 하다.                                                                                    

 하지만 손녀에게 재무쇠라는 말을 주며 초원을 달리게 하거나 전통적으로 남자들의 소관인 검독수리를 길들이는 일등을 하게 함으로써 되도록이면 많은 것을 갈샨에게 가르쳐주려한다. 교육과 감독관과 다툼을 하면서까지 갈샨을 중학교에 보내지않고 자신이 가진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그것이 자신이 할일이라고....

 늙은 할아버지로서 첫손녀딸인 갈샨이 어찌 귀하지 않았을까, 다만 같이 지낼 시간만이 둘의 사이를 발전시킬수 있을 것이다. 153일이란 시간은 갈샨에게도 할아버지 바이타르에게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어간다.  글을 읽는 법을 배우지못한 할아버지는 어느날 갈샨의 책을 넘겨본다.  

 "그래, 책을 열면 글자들이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나,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렇지 않구나. 글자들이 책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아." (페이지 77 ) 

 나에게는 할아버지의 이런생각들이 때묻지 않은 아이처럼 순수함에서 오는 것일거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이런행동은 그동안 할아버지가 자연을 대해오던 삶의 방식이다. 추운겨울 게르안에서 따스한 불을 피우고 손녀가 읽어내려가는 [노인과 바다] 를 듣는다.  한번도 바다를 본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그렇게 손녀를 통해 먼 바다를 느낀다. 어쩜 할아버지의 갈샨에 대한 사랑이 더해지면서 게르안은 점점더 따뜻해지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갈샨은 바이타르를 '아타스*(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차궁의 겨울은 매서웠다. 다브카르 쭈트-죽음의 흰 가루 ,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엄청난 눈폭풍이 닥쳐오고 할아버지는 게르안의 태울만한 모든것들을 다 태우면서까지 추위에 떠는 어린 손녀를 지켜낸다. 그리고 이번엔 갈샨이 할아버지를 지켜낼 차례..... 

 잊을만 하면 등장하는 교육과 감독관 '힐방쭈과아'.참 괴상한 이름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몽골의 추위만큼 등장하는 이름들이 생경했으나 그나름의 매력이 끊이질 않는다. 힐방쭈과아는 미친늙은이라고 생각하는 바이타르가 어떻게 그 혹독한 다브카르 쭈트를 예견했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현실적이지 못한것과 과학적이지 못한것들에 대한 불신..미래에 대한 욕망등 그런 그는 아마도 우리 현세대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리라. 전통은 그것이 존재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늘 간과하고 만다.

 작가는 프랑스사람이라는데 몽골인의 마음을 어찌 이리 잘도 표현하고 있을까?  참 단순한 구조,간단한 이야기로 이렇게 풍부한 상념에 젖어들게 할까? 역시 작가라는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이해의 폭으로 모든것을 대하는구나.또한번 느끼는 순간이다. 또한 우리말로 옮긴분은  자주 사용하지 않는 우리말을 간간히 넣어서 더욱 글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하였다. 인상깊은 장면이 있었는데 검독수리가 하늘을 날때 갈샨도 마치 검독수리가 되어 하늘을 나는것처럼 느끼는 것인데 과연 그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물론 그런걸 느끼는 사람은 일부라고 했다) 과연 몽골인들은 자연과 하나되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는데 신비롭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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