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구판절판


..'겁쟁이' 그녀는 조용히 소리 죽여 덧붙이네."
"그녀가 그렇게 말했나?"
손님이 묻는다. 조각처럼 미동 없던 그의 자세가 허물어진다. 그는 헛기침한다.
"그렇네."
장군은 말한다.
"그것뿐일세. 나 역시 그녀에게 아무 말도 묻지 않네. 우리는 말없이 방 안에 서 있네. 그런 다음 크리스티나가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하지. 그녀는 가구와 그림, 예술품 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나는 그런 그녀를 지켜보네. 그녀는 작별하듯이 방 안을 돌아보네. 잘 알고 있는 물건들과 작별 인사를 하듯이 하나하나 둘러보지. 자네도 알겠지만, 사물이나 방을 두 가지 방식으로볼 수 있네. 발견할 때와 작별할 때가 있지. 크리스티나의 눈빛에서 발견의 호기심은 찾아볼 수 없네. 그녀의 시선은 집 안의 물건들이 다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듯이 그렇게 조용하고 친밀하게 물건들을 더듬네.
..........중략..-213p쪽

"내 이야기가 좀 장황한 듯 하네."
그는 변명하듯이 말한다.
" 그러나 달리 어쩔 도리가 없어. 우리는 세세한 것들을 통해서만 본질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세. 나는 책과 삶에서 그렇게 배웠네. 먼저 세세한 부분을 다 알아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 중요하고 사물 뒤에서 어떤 말이 빛나는지 결코 알 수 없네. 처음부터 끝까지 잘 헤아려보아야 하네. 하지만 이제 할말도 별로 없어. 자네는 도주했고, 크리스티나는 마차를 타고 집으로 갔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아니 나머지 인생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214-215p쪽

단 한마디를 쓸 때도 있어.이를테면 '당신은 허영심이 너무 많아 희망이 없어요' 라고 쓰기도 하지. 그런 다음 몇 주일 동안 한 자도 쓰지 않네. 또는 알제리의 어느 골목에서 웬 남자가 자신의 뒤를 쫓아와 말을 걸었는데, 그를 따라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쓰네.크리스티나는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그러나 나는 행복하고 , 마음을 적이 불안하게 하는 이 남다른 솔직함도 내 행운을 방해하지 못하네. 상대방에게 그렇게 병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사람의 솔직함은 본질적인 것을 회피하기 위한 방패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지. 나는 신혼 여행 길에서뿐 아니라 나중에 일지를 읽으면서도 그 점을 생각하지 못하네. -208-209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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