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일관 썩은 미소를 짓게 하다!

독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시종일관 썩은 미소를 짓게 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흑소소설』과 같은 색을 띠고 있는 『독소소설』.
작가가 사회를 향해 날리는 썩은 미소를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독소소설』이다.  

시키는 대로만 해야 했던 어린이들이 자의식을 잃어버리고, 누군가의 명령만을 기다리던 「유괴천국」. 이와 비슷한 테마가 담긴 「메뉴얼 경찰」, 「인형 신랑」, 「살의취급설명서」, 「속죄」.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없애'도 전혀 개의치 않았던 우리 인간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던 「엔젤」, 강자를 위해서는 싫은 것도 내색할 수 없었던  「도미오카 부인의 티파티」등등.


「영광의 증언」
확실치 않은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가짜 '증언'을 해버린 그. 하지만 경찰들은 어째서인지 그의 증언을 믿고 용의자를 체포한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 한껏 자존심을 세우며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그.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체포된 용의자는 실은 스쳐지나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자랑은 해놨고, 비웃음을 사기는 싫고 여기서 그가 한 선택은 무엇일까?

어떻게든 오늘밤 안에 바꿔 끼워야 한다. 그러면 경찰이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증언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더이상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는 싫다.


「유괴전화망」
요새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인륜에 어긋난 행위들이 빈번하다. 아이를 유괴해 살해하는 무서운 일이 '착한 척하는 범인'에 의해 조금 색다르게 바뀌었다. 아이를 잃고 슬퍼할 부모를 대신해 무작위로 한 사람을 골라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그렇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면 된다. 그것은 경찰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더구나 경찰에 신고하면 아이의 목숨이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난 경우, 아무리 나에게 책임이 없다고 해도 역시 뒤가 개운치 않으리라.


너도나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빠져버린 사람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의 속내를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린 『독소소설』. 행복을 위해 선택한 삶이지만, 그들은 이미 무엇이 행복인지 알지 못한다. 이젠 더이상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어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남이 시키는 삶이 아닌, 무엇이 행복한 삶인지 아는 '인간다운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검은색 웃음!

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히가시노 게이고가 선사하는 검은색 웃음! 

『용의자 X의 헌신』『비밀』『방과 후』 등 온갖 미스터리 상을 휩쓸었던 히가시노 게이고.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단편집이 출간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흑소소설』이다.
검은 웃음 소설? 작품을 읽으면 검은색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인가?

13가지 단편집이 실린 『흑소소설』 속에는 그간 히가시노 게이고가 보여주었던 본격 미스터리와 휴머니즘이 담긴 사회소설과는 살짝 색깔이 다르다. 하지만 그가 어디 가겠는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단편소설이라는 형식 아래서 사회에 날리고 싶은 검은색 미소를 마음껏 날리고 있다.
아닌 척하지만 명예욕에 휩싸인 「최종심사」, 여성의 몸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거대유방 망상증후군」, 그리고 바람 피우는 남편을 위한 특수 치료제「임포그라」.
「시력 100.0」은 온갖 더러움으로 휩싸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차라리 '안 보는 것'이라는 현답을 내놓기도 한다. 「사랑가득 스프레이」에서는 사랑에 대한 쓴맛(?)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기적의 사진 한 장」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식의 미스터리적 요소도 담겨 있으니 즐겁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인상에 남는 작품을 꼽자면,
 

「신데렐라 백야행」

『신데렐라』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백야행』이 혼합된 소설. 두 작품을 읽은 사람이라면 좀더 재밌고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멋져 보이지만, 그만큼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쓴맛이 들어 있는 작품.
 

"그 정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어요. 전 언젠가 세상의 주인공이 될 거예요. 주인공에게는 주인공에게는 비극이 하나둘쯤 있는 편이 훨씬 멋지거든요."

  
「임계 가족」

밝고 예쁘게 자라나야 할 어린이들이 실은 어른들의 상술에 놀아나고 있다면?
이미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나 마찬가지다. 작품 속의 이야기지만, 그것이 현실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있기에 웃을 수만은 없었던 작품. 


"주제넘지만 상무님, 요즘 어린애들의 패션감각은 거의 어른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성인 여성들이 검은 옷 한 벌쯤 가지고 있는 지금, 여자아이들에게도 검은색 코스튬플레이가 인기 있지 않을까 하는 게 저희 부서 전원의 일치된 의견입니다. 더구나 여주인공 옷을 검은색으로 하면 지금까지 만들지 못했던 다양한 캐릭터 상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세상 사는 일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자신의 꿈에 대한 희망은 점점 사그라진다.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삶의 보람과 웃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좋지 않을까? 나는 저자도 그렇게 이 작품을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 생각이야 본인 이외에는 알 수 없는 것이어도. 

 

조용한 듯 자극적인 여름 미스터리!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조용한 듯 자극적인 여름 미스터리!

오츠이치의 처녀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ZOO』라는 단편집으로 수많은 팬층을 확보해가는 신세대 작가, 그가 바로 오츠이치다. 그런데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가 그가 17세에 써낸 작품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아니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그의 팬이라면 두 눈을 희번뜩 떠가며 군침을 흘릴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출간 소식은 수많은 독자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는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유코」 두 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 누구나 놀았을 '숨바꼭질'과 '인형'이라는 친근한 소재에서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녹아나 있다.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사쓰키는 켄을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지만, 질투심에 사로잡힌 야요이에게 나무에 떠밀려 떨어져 죽는 죽임을 당한다. 자신은 죽어 있지만,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며 켄과 야요이가 자신의 시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바라보게 된다. 사쓰키의 시체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켄과 야요이가 잘 감출 것인가. 아니면 사쓰키의 바람대로 경찰에게 발견될 것인가.
초등학생의 거리낌없는 살인과 은폐, 그리고 죄책감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는 조금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켄 오빠는 보물을 숨기는 것처럼, 장난을 꾸미는 악동과도 같이 나를 깊이깊이 쑤셔넣었다.
야요이는 공포와 불안의 덩어리를 감추듯, 신의 눈으로부터 자신의 죄악을 멀리 치우듯 깊이깊이 쑤셔넣었다.그리고 조용히 벽장문이 닫혔다.

  

「유코」

키요네는 갈곳없는 자신을 거두어준 주인 마사요시를 좋아한다. 하지만 마사요시가 말하는 '마님'을 자신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혹시 마사요시는 마님의 환상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인간의 호기심과 환상, 왜곡 등이 잘 버무려져 있는 작품 「유코」는 인형에 '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일본인들의 문화가 잘 드러나 있었다. 책을 읽다가 일본 인형을 떠올리면서 책을 읽으면 오싹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장지문 틈새로 방의 한 면을 장식한 수많은 인형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그 앞에는 이불이 깔려 있었다. 이불이 부풀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안에 누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틈새 앞을 지나는 순간 키요네가 본 것은 이부자리에 눕혀져 무표정하게 이쪽을 향하고 있는 인형의 모습이었다. 
 

오츠이치가 천재다, 아니다라는 논쟁은 나는 하지 않기로 하겠다. 그가 뛰어난 글솜씨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수식은 저자에게도 작품에게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그의 재능이 좀더좀더 발전해서 사람들의 뇌를 짜릿하게 오싹하게 만들어준다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오츠이치가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누구를 향해 겨눈 총구인가!

스나크 사냥 ㅣ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누구를 향해 겨눈 총구인가! 
 

세키누마 게이코는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여성이다. 그가 고시에 패스할 때까지 물신양면으로 성심껏 지원했으나, 고쿠부 신스케는 패스하자마자 그녀를 버리고 자신의 출세를 위해 합당한(?) 여성을 구해 그녀와 결혼하기에 이른다.남자에게 버림받았다고 해서 그가 벌을 받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가련한 여인이라고 동정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래, 그에게 총을 겨눌 생각이다.

오리구치 구니오는 낚시 도구점에서 일하는 평범한 중년 남성으로 직원들에게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아끼는 후배 사쿠라 슈지에게 노가미 히로미라는 여성을 소개시켜줄 만큼 자상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아는 이는 하나도 없다. 오리구치라는 인물 속에 숨겨진 분노는 세키누마 게이코가 지닌 '총'을 만나면서 조금씩, 하지만 허리케인처럼 드러나기 시작한다.
 

공포에 휩싸여 두 눈을 뜬 채로 총에 맞아 죽은 모녀를 떠올리며 마음 아파한 적이 있는지, 그 진심을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법정에서 피고 오오이 요시히코를 위해 열변을 토하는 변호사 두에서 그는 몰래 새빨간 혀를 날름 내밀고 있지나 않은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이고픈'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 원인이, 혹은 이유가 무엇이건 "저 사람만 없어져준다면"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욕망을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사회에서는 이 욕망을 대신해서 법이라는 수단을  사용, '처벌'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죄를 지은 그들에게 사회가 '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내용을 다룬 것이 바로  『스나크 사냥』이다.

『스나크 사냥』은  루이스 캐럴의 『The Hunting of the Snark』과 같은 제목으로 루이스 캐럴의 작품을 먼저 읽는다면 여기서 말하는 '스나크'가 무엇인지 좀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뒤에서 투덜거리기보다 뭔가 해야만 한다, 그 말은 옳았다. 지금, 오리구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그 어린 학생은 자신의 고집스러운 정의감과 약간의 반항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했으리라. 하지만 그 말에는 그 학생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의미의 진실을, 매우 단순한 진실을 포함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의 갈등을 여실히 알몸 그대로 드러낸 『스나크 사냥』은 인간의 모습이 얼마나 처절하게 괴물처럼 바뀔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 그것은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단순한 도식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다. 책을 읽고 각자가 판단할 문제이긴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고쿠부 같은 남성들은 『스나크 사냥』을 읽어본 뒤에, 자신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여성에게 미리미리 잘할 것. 안 그럼 무서운 총구가 언제 들이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너무도 슬프고 헌신적인 반전!

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너무도 슬프고 헌신적인 반전! 

 
수학을 좋아해서 수학만을 파고들었던 이시가미.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생계 유지와 부모님의 기대로 어쩔 수 없이 택해야 했던 수학 교사. 하지만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누구도 진정한 '수학'에 대해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고, 그저 대학만을 위해 배우는 과목의 하나일 뿐. 그런 그에게 어느날 환한 햇빛 같은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어둠속이었던 그의 삶을 환하게 비쳐주었던 그녀. 

혼자서 고등학생인 딸을 키우고 있는 야스코. 돈 때문에 호스티스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도시락 집에서 그야말로 '열심히' 살고 있는 싱글맘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전남편 도시가미라는 과거. 잊어버리고 싶은 그가 딸 미사토를 만나겠다며 협박을 해왔다. 힘겹게 따돌렸다고 생각했지만 집까지 찾아온 도시가미. 엄마와 자신의 삶에 끊임없이 끼어드는 그에게 '공포'를 느낀 미사토와 야스코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는데…….
 

왜 이런 공부를 하는가. 그런 의문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학문을 하는 목적이 생겨난다.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로도 이어진다. 진정한 의미에서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고 학생에게 일정한 점수를 주는 것만 생각하기 한다.
  

오로지 '빛이 되어주었던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없었다. 감히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고통 없이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을 뿐.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용의자 X의 헌신』은 한 여자를 지키고 싶어했던 한 남자의 '헌신'이 담긴 눈물 겨운 '러브 스토리'이다. 전남편 살해사건이라는 잔인한 설정에서 담긴 사랑. 그것은 '헌신'이라는 크나큰 희생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시가미라는 수학 교사가 그녀를 위해 모순과 틈새 없는 알리바이를 만드는 과정은 놀랍다기보다는 사람이 이토록 '헌신'적일 수 있나 싶어 놀라게 되기도 한다. '헌신'이라는 단어 없이는 이 사건은 성립되지 않는다.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 이 사건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이시가미는 하나의 대답을 자네들에게 제시했어. 그것이 이번의 자수이고, 진술내용이야. 그 좋은 두뇌를 최대한으로 굴려 허점 없는 답을 고안해낸 거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대들의 패배를 뜻해. 자네들은 전력을 기울여 그가 제시한 답이 옳은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돼. 자네들은 지금 도전받고 있고, 시험당하고 있어."
 

처음부터 살인자를 드러내놓는 『용의자 X의 헌신』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형식의 추리물은 아니다. 그 살인사건을 어떻게 감추고 알리바이를 만들어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인지 다 읽고 난 지금은, '사건의 해결'보다는 이시가미라는 남자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헌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시가미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