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하루
마르탱 파주 지음, 이승재 옮김, 정택영 그림 / 문이당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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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하루? 가장 비참한 하루!

 
삶 자체가 얼마나 가소롭고 우스운 것인지 반어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는 작품이 바로 『완벽한 하루』이다. 현재 살아가는 삶이 비참하고, 우울하고, 불행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순간,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두 가지 반대되는 개념은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불행하고, 슬프고, 괴롭고, 두렵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의 삶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고 새로운 즐거움을 알아가는 등, 우리의 삶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서로 간에 할 이야기가 없다는 것을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사실이야말로 그 부장이 나와 공통점이 가장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한다. 나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생명체들과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는 침묵한다. 침묵이야말로 모두에게 통용되는 만국공통어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p.147 

절망과 고독이 내 침대 위에 누워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 녀석들은 자제라는 말을 모르는지 밤만 되면 내 곁을 찾아와 수없이 사랑을 나누곤 한다. 난 다만 녀석들의 건강이 걱정될 뿐이다.  - 본문 중에서 p.167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입으로 권총을 가져가 자신의 방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는 주인공 '나'는 자살로 하루를 시작한다. 멀쩡한 집안을 '안정감'이라는 이유로 때려부수어 허름하게 만들고, 몸 안에 5.2미터짜리 상어를 키우고, 휴가를 엘리베이터에서 보내고 비소가 섞인 디저트를 먹는 등, 이 주인공이라는 사람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모순투성이이다.  
게다가 그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야말로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실소라고나 할까?  

주인공 '나'는 삶이 너무 싫다. 그래서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끊임없이 자살을 한다.
권총으로 뇌를 흩어지게 하고, 건물 옥층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기도 하고, 목을 매어 매달리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김없이 이어지는 '나'의 완벽한 하루. 그의 삶은 '자살' 없이는 존재하지도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겁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괴롭고 우울하고 슬프기에 내 삶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말 살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 자살을 꿈꾸는 이들에게, 저자인 '마르탱 파주'는 말한다. 그러기에 당신 삶은 아름답다고. 그럴 때야말로 주인공 '나'처럼 웃음을 잃지 말고, '우아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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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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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영원히 Girl이고 싶은 여자들의 Cool한 이야기

『공중그네』, 『남쪽으로 튀어 』등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이번 작품 『걸』은 어떤 점에서는 생소했다. 오쿠다만의 유쾌한 유머가 가려진 느낌이 든달까.

물론 그가 40대의 아저씨임에도 여성의 심리를 적나라하고 공감이 갈 정도로 잘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뭐,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같지는 않지만, 그런 점을 빼더라도 이 작품은 충분히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이제 걸이 아니야, 라고. 유키코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고 있다. 서른둘씩이나 되었으면 이제는 젊음을 내세울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남자라면 몰라도 여자는 그렇다. …… 세상 모든 이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축복받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런 특권이 지금 손가락 사이로 점점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여자 나이 34세. 직장 경력 14년.
사회적인 입지 면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었지만, 아직까지 애인(혹인 아이, 집)도 없고 새로 들어오는 예쁘고 나이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늘 경쟁심을 느끼는 나이.
언제까지고 어린 여자아이이고 싶지만, 이미 그러기에는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버린 여자들.
그것은 꼭 34세 여자만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아직도 '남자'보다는 불편을 느끼는 우리네 여자들을 모두 가리키고 있다.

아직은 어린 여자라도 그네들도 결국은 나이를 먹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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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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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부터가 보여준다! 이 작품이 무얼 말하고 싶은지.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아니, 그런 당연한 거를 지금 말이라고 =_=; 그래, 이런 반응 충분히 짐작한다.
그치만 그런 당연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까발리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이다. 

정말 따분하고 게으른 나. 세상일이 다 귀찮기만 하다.
그런데도 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현실이 짜증스럽고 답답하다. 
어쩌다 받게 된 잘못 걸린 전화. 순식간에 나는 여행사 사장이 되고 만다.
물론 전화를 건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어이 없긴 마찬가지.

하지만 이러한 엉뚱함 속에서도 '나'의 논리는 살아 있다. 그런데 그 논리가 재치 있기까지 하다니, 완벽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을수록 '나'의 매력에 빠져 들어버리는 것이다.
휴일만 되면 아무렇지도 않게 늘어져 버리는, 할 일이 태산 같음에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나태한 '나'의 모습이 실제 나의 모습인 것이다.

순식간에 크크크 하고 웃어버리는 책을 집중하여 읽는 나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가끔씩 우울하고 센티멘털할 때 기분전환삼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 저자가 소개하는 '찾아보기'는 이 책에서의 디저트와 같다. 모두들 한번 맛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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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창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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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에 다른 사람의 뇌가 들어 있다.
나는 과연 여전히 '나'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변신』.
나루세 준이치가 교고쿠 슌스케로 변신해가는 모습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도 그것을 인정할 것이다.
물론 겉모습의 변화에도 여전히 '나'인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과는 조금 다르지만.

치명상을 입고 죽을 위기에 처한 나루세 준이치는 국가에서 수행중인 중요 프로젝트 뇌수술의 환자가 된다. 마침 나루세 준이치를 위험에 처하게 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교고쿠 슌스케의 뇌가 나루세 준이치의 뇌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시험결과가 나오고.

나루세 준이치의 뇌에는 교고쿠 슌스케의 뇌가 살아가게 된다(물론 나루세에게는 비밀).

죽을 고비에서 간신히 살아난 나루세 준이치는 본인이 겨우 눈치챌 만큼 조금씩 변화해가고 있었다. 소심해서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살았던 그는 그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타인으로 변해갔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 것이다.
자신이 뇌수술 이후로 이상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뒷조사를 실시하는 나루세 준이치.
그는 점점더 자신의 이성을 가눌 수 없게 된다.
그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나루세 준이치는 자기 머릿속의 교고쿠 슌스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어느새 그의 이성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을 배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 지으려는 나루세. 자신의 뇌가 전부 교구쿠 슌스케로 변했을 거라 생각했던 그였지만, 한쪽 구석에 자신의 이성인 나루세 준이치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의 이성을 느낀 것이다. 그것이 온전한 것이 아닐지라도…….

결국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눈 그는 나루세 준이치의 모습으로 죽고 싶다며 식물인간의 길을 택했다.  
자신의 뇌가 자신의 것이 아닐 때 어떠하다는 것을 심리적으로 잘 파헤쳐준 히가시노 게이고. 과학의 발달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인지를 알려준 소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 교훈을 담은 소설이라고 하기에 이 작품은 많은 점에서 뛰어나다.

인간이라는 족속이 갖는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것이다.
내가 걸어온 수십 년간의 기억이 없어진다는 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니까.
실제로 있을 수 없는 일을 그려내는 것이 이 작가의 특기이지만, 정말 있을 수 없을까 생각해본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정말 나일까? - 내 의지로 쓰는 게 아닌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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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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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의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권
 

이 책은 그 당시 신문에서 이슈화 되었던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신문이라는 특성상 기사처럼 담담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이라는 부제에서 밝히듯 살인사건과 스캔들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크게 나누고 있다.
주제는 굉장히 자극적인 편이지만 읽고 나면 1930년대에 살았던 우리네 조상의 모습과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일제 시기에 살았기에 조금은 억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신분의 차이만 보일 뿐, 결국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안기영 교수'와 '최영숙 애사'.

현모양처를 버리고 자신의 애재자랑 해외 도피를 벌였던 안기영 교수.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다시 조선을 찾지만, 조선은 그들을 반기지 않는다. 결국 월북의 길을 택한다. 그와 애재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현재 북한에서 인정받는 원로 피아니스트라고 한다. 하지만 현모양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은 현재 무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음.

그리고 마지막 편에 실렸던 최영숙 애사는 5개국어를 할 줄 알며 스웨덴에서 인정받는 조선인으로 인정받았지만, 자신은 조선인이라며 자신의 조국을 찾아온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써주지 않는 조국의 냉정함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일자리가 없어 콩나물까지 팔아야 했던(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그녀의 모습이 80년이 흐른 지금 여성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은 가슴아프다(아니라며 바득바득 우길 남성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길, 여성들이 얼마나 힘들게 애쓰며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개인적인 평으로는 옛날 조선의 모습을 가볍게 접할 수 있다는 정도이지만, 이런 형식의 접근은 딱딱하게만 여겨져 오던 그동안의 '인문서'와는 차별성을 두기에 굉장히 반갑고 또 새롭다.
하지만 '경성기담'이라는 표지와 본문의 내용은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는 루머에 지나지 않는 몇몇 이야기를 풀어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이 당시의 '여고괴담' '도쿄기담집' '환월루기담' '소월루기담' 등 일본식 제목에 편승해 만들어졌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물론 이 제목이 최선의 제목이라고 결론이 났겠지만, 본문의 구성 또한 살인사건과 스캔들로만 나눈 것은 1930년대의 일부분만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산초당에서 나온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과 많이 비견된다. 직접 이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컨셉을 캐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맴도는 것이다. 이후에 시리즈로도 나올 것을 예상한다면 조금은 연관성 있게 포장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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