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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임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임재희' 작가의 애도 소설집 이라는 문구를 보기 전까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라는 제목만으로 힐링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더랬다.
표지에 숨겨진 홀로의 쓸쓸함은 보지 못한 채, 그저 한가로운 여유로움을 떠올렸으니 큰 착각이 아닐 수 없었다.
시작부터 전혀 내 생각과 달랐던 소설을 펼치며 폴의 하루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폴의 하루는 9개의 단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책의 중반쯤에 가서야 만나 볼 수 있었던 폴은
한국인 엄마를 둔 외국인이다. 폴의 시선으로 보자면 한국이 외국인 셈이지만.
한국에 와서, 바쁘다를 외치며 살아가는 팍팍한 일상에 찌든 사람들과 부딪히고,
작은 농담에도 정색하고 마는 여유 없는 한국인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만,
정작 더 큰 불편함은 이런 사람들과 자신이 어떻게든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다.
그것이 한국인 엄마의 존재 때문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인지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제목 그대로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또한 속해있는 폴의 이야기다.

단편들 중 <동국>과 <로사의 연못>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첫 번째 <동국>은 성실한 남편을 감전 사고로 잃은 부인이자 한 여자의 이야기이며, 그녀의 진짜 이름이다.
어려운 형편에 딸까지 사고로 보내고, 폐인처럼 사는 아들을 둔.. 숨죽인 삶을 사는 여인이다.
친척들조차 박복한 형편을 외면하는 외로움을 맛봐야 했던 동국은
누구도 외면한 인생의 무게 너머로 사라져버린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 처절하게 소리친다.
"형님도 이제 나를 동국아, 그렇게 불러줘요. 이제는 다 벗어버리고 싶어요.
세욱이 엄마라는 것도, 세미 엄마라는 것도.
나는 그냥 최동국. 예전에는 부끄럽고 남자 이름 같아서 안 썼는데, 동국,
최. 동. 국.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처연한 세월 뒤로 사라진 그녀의 젊은 시절,
환한 얼굴을 떠올리는 회상은 긴 여운을 남겼다.
두번째, <로사의 연못>은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날것의 단어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새로 이사 온 동양인 젊은 부부의 예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부인 로사가 마뜩잖아하는 줄 알면서도 남편은 뒷마당에 작은 연못 만들기를 감행한다.
부인 로사는 우연히 말 많은 이웃집 할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로사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름이지요. 알고 있나요?
알고 있군요. 로사는 원래 이사벨라라고 불렸던 성녀지요.
그녀의 자태가 너무도 아름다워 로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요.
주위에서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일이 많아지니까 고행을 위해 후추로 얼굴을 문지르고 다녔대요.
모두에게 아름다웠지만 그녀에겐 오히려 족쇄가 되었던 거지요.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꽁꽁 묶고
자물쇠를 채운 다음 열쇠를 우물에 던졌대요. 대단하지 않나요?
그래서 성녀가 되었던 걸까요?
로사네 꿈을 꿨어요. 막 집을 짓고 있을 때였지요.
땅을 파더군요. 아주 깊게.
그런데 그곳에서 물이 계속 솟는 거예요.
아주 맑고 깨끗한 물이었죠. 물론 좋은 꿈이겠죠?
아, 한 가지 더. 원숭이가 한 마리 나무에 올라가 앉아 놀고 있었어요.
많이 늙은 원숭이였지요. 원숭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동양 사람들은 해석을 잘한다면서요?"
검은 구덩이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남편은 더 깊이 팠다. '오래전 화산재 때문에'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검은 흙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로사의 표정은 굳었지만
무덤, 동굴, 시체, 내장이라는 단어들과 함께 맹렬한 호기심이 솟구친다.
검은 물. 정체를 알 수 없는 뼈의 발견. 경찰에 신고.
죽어서 썩은 비린내 나는 잉어를 보며
죽은 여자의 몸에서 데어낸 자궁처럼 여기는 로사의 섬뜩한 내면.
연못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
* * *
이 책에 담긴 소설 모두 나름의 깊이를 가지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그중에서도 <로사의 연못>은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끝없는 검은 늪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랄까. 도저히 빛이 떠오르지 않았다.
적나라한 표현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그녀의 내면이 무섭다.
다 읽고 보니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존재감을 느끼고자 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그들의 아픔을 애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이상과 행복을 꿈꾼다.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은 고독을 안겨주지만 말이다.
그들의 고통으로 행복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너무 소소해서 느끼지 못했던 작은 기쁨들이
가장 큰 행복임을 다시금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모두 담아두기엔 조금은 무겁지만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인생과 삶의 찾아가는 여정의 여운은 길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