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이야기 - 금기웅 소설집
금기웅 지음 / 문학세계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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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표지에 이끌려 미리 보기로 보다가 재밌어서 고른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SF 판타지 같은 이야기는 없다.

너무 기가 막힌 현실이라, 차라리 환상이길 바랐던 마음이 들어간 걸까.

하지만 7편을 모두 흥미롭게 읽었기에 간략하게 소개를 해 보고 싶다.



 

1. 즐거운 수목장

사슴농장 같은 생각으로 펼쳤으나,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왔다.

제목과 달리 즐거움이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즐거움을 느끼는 대상이 참 씁쓸했다.


얼굴이 명태 거죽처럼 쪼글쪼글한 처사는 기이한 도인처럼 웃었다.

정수가 다시 올라올 것을 미리 다 알고 있기라도 하듯

너털웃음을 흘리며 반가워했다. 처사가 일부러 고모 유골을

습한 곳에 묻어놓고 정수를 기다린 것 같았다. _p29

 

 

2. 사슴 부적


북 카페 벽에는 특이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진우가 카페에 들어서자

벽에 뿔이 비대칭적으로 크고 턱이 이마보다 넓은 사슴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_p38

우리는 누구라도 잘 모르는 타인의 일에 얽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역시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나, 기묘한 북 카페의 여주인의 사연에 이끌려 버린다.

원하지 않았으나, 알고도 빠져버린 늪에서 그가 본 환상은 과연 무엇일까.


 

3. 손바닥의 말

4. 욕망의 입구


5. 유목민과 쇠망치고수

느끼기에 따라서 소름 돋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웃음이 삐져나왔던 단편이다.

자신의 처지를 유목민에 비유한 남자와 새벽만 되면 쇠망치로 천장을 부수는 남자는

한 아파트에서 위아래층에 붙어산다. 아무리 신고를 해도 해결의 기미가 없는 현실 속에서

또다시 유목민처럼 떠나려 하는 그의 길은, 결코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것은 아닐는지...


새벽 두시 반이다. 아래층 사내가 또 천장을 두드린다.

지금까지 모두 서른 번이 넘는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쇠망치로 천장을 두드린다.

새벽 세시 반이다. 참아보자고 하지만, 화가 난다. 신고한다.


왜, 오밤중에 자기 집 천장을 두드리나요? 무슨 공사하나?

한 번 내려가서 확인해 보세요.

한밤중에 공사도 안 하면서 왜 천장을 두드린다고 하지?

이해 안 가네. _p135

 

6. 시와 혈서

7. 환상 이야기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현실이 마치 환상처럼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미래였을까.

현실적인 인생과 삶을 다루고 있음에도 환각 같은 묘한 맛을 곁들인 소설이었다.

가독성 좋고 술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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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술 - 이순신의 벗, 선거이 장수 이야기
정찬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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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이순신과 용장 선거이의 우정과 신의!

무장으로 만난 두 사람의 만남에는 술이 있었고 그리움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에서부터 임진왜란을 거쳐, 선거이의 마지막까지 담고 있다.



장수 한 사람이 켜켜이 쌓인 눈 때문에 말을 타지 못하고

말고삐를 잡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선거이는 그가 한양에서 오는

이순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눈보라 _16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이야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보았던 것이지만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영웅으로 만들어진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그대로를 옮기려 했다는 점이다. 가장 극명했던 것은 사투리였다.



선거이와 이순신은 술병과 술잔을 사이에 두고 주고니 받거니 마셨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술이었다. 선거이가 말했다.


"술이 읎었으믄 으쨌을께라우? 아마도 숯댕이맹키로 속이 시커멓게 타부렀겄지라."


"말 읎는 술이 참벗이지유. 지맹키루 에럽게 사는 인간을 위로허는 것이 또 워디 있겄슈."


                                                      - 작별 _107


내가 사투리를 잘 몰라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영웅 이순신은 멋스러운 '하오' 채를 당연히 사용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역사 속 인물에 대해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다소 파격적이었다.



맨 처음 나오는 작가의 말에는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위해 전작 <이순신의 7년>을 집필했고,

그동안 주목했던 인물들을 재조명하고자 첫 번째로, 선거이 장수를 선택했다고 한다.


후속편처럼 이순신과 함께한 여러 인물들을 계속 집필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지가

고맙고 반갑다. 진정한 영웅과 함께했던 또 다른 영웅들을 만나볼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선거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어 뿌듯하다.


 

한 줄 평: 인간 이순신의 모습에 놀라고, 선거이라는 장수의 활약에 두 번 놀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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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의 방 - 2019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진유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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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에게는 사람들이 붙여놓은 표현들이 많았다.

반역자, 환향녀, 탈북자, 후이구가, 무국적자, 난민, 불법체류자.

그리고 무해 자신이 심적으로 느끼는 이름은 이방인, 외국인이었다.


그저, 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무해에게 달라붙은 이름은 이렇게도 많았다.


                                                  - 카스텔라 _177 

 

탈북에 성공한 그녀의 이름은 무해이다.

그녀는 남한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남편을 암으로 잃고 초로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는다.

사별 후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그녀는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심지어 언어능력까지 떨어진다.

딸 모래의 걱정은 커져만 간다. 엄마가 탈북자의 고통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남편과의 첫 만남. 그립지만 배고픔에 고통스러웠던, 하지만 다시 가보고 싶은 고향의 기억.

탈북하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아픔이 그녀를 가득 채운다.

무해의 상실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둡고 축축하고 진득하게...ㅠ


북한의 실상에 대한 참담한 모습과 자세한 심리묘사는, 마치 탈북자의 실제 경험담을

보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맨 뒤편에 나오는 참고 자료를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였다.



압록강을 건널 때는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불운이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지만 치매는 압록강을 건널 때와는 달리, 명료했다.

매일 기억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병. 절반의 행운 같은 건 없고,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죽어가는 병. 그게 바로 치매였다.


                                              - 농마국수 _30


인간의 존엄과 윤리는 '의지'가 아닌 '식량'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그녀.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거대한 국가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상실감이

가득 채우고 있지만, 또한 살고자 하는 간절함도 가득하다.


읽는 내내 그녀가 겪은 일들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똑같은 삶이 아니기에, 상대를 위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해'의 마음을 읽다 보면, 탈북한 그녀가 다정했던 남편에게서 느껴야만 했던

분노가 무엇인지를 알고 놀라게 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삶도 존재한다는 것.

시작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도.



무해는 그때 남편에게 했던 말을 후회했다. 그 당시, 그녀는 자신이 겪은 경험들은

대단한 일들이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다 하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독서, 글쓰기, 산책으로 이루러진 단순한 삶을 원했다.


                                           - 카스텔라 _176


은행나무에서 <극해> 다음으로 두 번째 만나보는 소설이다.

깊이와 먹먹함이 인상 깊게 남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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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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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ㅡ첫 사랑의 아픔을 간직한 남자 사카키 신이치.

그는 잘생긴 데다 젊은 나이에 주식으로 벌어들인 거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가슴속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억눌린 욕망에 괴로워한다.

그러다 위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고, 그동안 자신을 옭아매었던 금기의 사슬을 끊고 만다.


그날을 계기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흐르고 있던 무시무시한 욕망이 분출됐다.

그것은 스미노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었다.

모든 여자를 향한 강렬한 욕망이었다. -p39


ㅡ우연히 첫사랑이었던 남자 사카키를 만나게 된 스미노는 과거가 떠올라 괴롭기만 하다.

사라진 그의 충격적인 기억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그녀는, 사카키의 몸 상태를 알게 된다.

두 번 다시는 그를 떠나지 않겠다는 간절함으로 사카키를 보살피며 곁을 지키려 한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아니야. 이해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스미노는 필사적으로 사고를 차단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끊어 내려고 해도 수많은 잔상이 멋대로 머릿속을 내달렸다. -p292


ㅡ절대 범인을 놓치지 않겠다는 사명감으로 사랑하는 부인의 장례식에도

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형사 아오이는 3년 전 위암이 재발하면서 인생을 돌아본다.

남은 딸과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죽기 전에 반드시 연쇄 살인범을 잡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아픈 몸을 이끌고 현장 속으로 뛰어든다.


그런 어둠 속에서만 나아가야 할 길이 보였다.

범인을 잡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빛이 스며드는 일이 없다는 걸 알더라도. -p194


이 소설의 원제가 '사명'이듯, 아오이 형사의 의지는 대단하다.

형사의 '감'으로 밀어붙이는 그와 파트너가 된 (젊은)야베의 허당스러움도 케미 돋는다.


연쇄 살인범의 정체는 일찌감치 나오지만 직접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범인을 찾는 긴장감보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의 엇갈리는 시점과

들끓는 살인 욕망으로 자기 자신과 싸우는 범인의 심리가 아주 심쫄했다.

소중함과 파괴의 공존도 마음에 쏙 들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실들까지;;



죽음은 두려운 게 아니다.

자신은 눈앞에 죽음이 닥쳤기에,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였기에

비로소 이 세상의 진정한 기쁨과 가치를 깨달을 수 있었다. -p117


솔직히 한 번에 읽을 생각은 없었는데, 중간에 멈출 수가 없었다능ㅋ

 

야쿠마루 가쿠 작품 중에 제일 먼저 읽은 <신의 아이>도 괜찮았지만

<데스미션 죽어야 하는 남자들>이 내 취향에는 더 맞았다. #존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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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호모이지 내가 아니다 - Novel Engine POP
아사하라 나오토 지음, 아라이 요지로 그림, 김봄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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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준'은 게이다. 띠동갑을 넘어선 유부남 애인도 있다.

성 정체성의 혼란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남고생이다.


'bl성'에서 살고 싶을 만큼 호모를 좋아하는 여고생 '미우라'는 그런 준에게 반하고 만다.

첫 만남은 서점이었다. 미우라가 구입한 bl 책을 살펴본 준은 전혀 현실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용에 "판타지네."라는 감상을 말해버린다.


현실의 게이 vs BL 책 속의 게이

같은 동성애임은 틀림없지만 현실이냐 비현실이냐에 따라

타인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BL 성인 중에 중학생에게 손대는 선생이 꽤 많던데?"

"......BL성에서는 열 살이 되면 습관적으로 성인으로 봐서 그래."


"난장판이네. 범죄율도 높겠어."

놀렸다. 미우라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렸다.


"너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고등학생이면서 부양가족이 있는 중년 남자와 사귀는 너에게 그런 윤리적인 것을

나무랄 권리가 있을까?"


                                     -Track7 Love of Life _354


 

나는 이 책이 bl 형식의 청춘 로맨스인 줄 알았다. 결국은 게이와 소녀가 잘 되는 이야기랄까..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놀랄 만큼 현실적인 고민과 아픔, 상처 그리고 사랑이 있었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한 권에, 그것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있는지!


주인공 말고도 등장인물들 각자의 사연은 상식을 뛰어넘는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아니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관계도 있고, 생각만 해도 갑갑해지는 가정사도 나온다.ㅠ

태어날 때부터 동성애의 기질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환경에서 만들어지느냐에 대한

의견은 아직도 분분하지만 확실한 것은 본인 스스로 너무나 힘들고 괴롭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얼마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인정받지 못 한다면.

그 앞에 보이는 길은, 단 하나. ㅡㅡㅡㅡㅡ자살.


 

준은 게이라는 자신의 성향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경험을 한다.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

예를 들면, 여고생 미우라에게 감정을 느끼며 관계를 가지려 시도를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그는 야한 영상까지 동원하면서 준비한다.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 속에서 준의 몸이 반응하는 상대는 여배우가 아닌 남자 배우였다.

 


페니스가 서는 '좋음' 과 서지 않는 '좋음'

미우라는 후자.

료헤이는 ......전자.


".......... 역겨워."


            -Track3 The Show Must Go On _114

 

주인공 준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자조하며, 삶의 의지를 놓아버릴 때,

마음이 아파서 많이 울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얼마나 먹먹하던지...


 

우울하고 슬픈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에피소드는 충분히 빵빵 터질 정도로

재밌고 감동도 있고, 특히 평소 bl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공감하거나 몰랐거나 오해했던

여러 가지 게이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다.


 

기대 이상으로 놀라움과 슬픔과 아련함, 먹먹함과 웃음을 느끼며 읽은 책이라

정말 정말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이만 줄여야겠다 ㅋㅋ이러다 스포할 듯.


결말은 열려있다. 

현실과 비현실로 시작해서 또다시 현실과 비현실로 마무리된다.

동성애와 bl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적극 추천한다.


애니로 꼭!! 만나보고 싶다.

단, 원작에 충실하다는 조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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