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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의 방 - 2019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진유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평점 :
무해에게는 사람들이 붙여놓은 표현들이 많았다.
반역자, 환향녀, 탈북자, 후이구가, 무국적자, 난민, 불법체류자.
그리고 무해 자신이 심적으로 느끼는 이름은 이방인, 외국인이었다.
그저, 강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무해에게 달라붙은 이름은 이렇게도 많았다.
- 카스텔라 _177
탈북에 성공한 그녀의 이름은 무해이다.
그녀는 남한의 남편과 결혼했지만 남편을 암으로 잃고 초로기 치매라는 진단을 받는다.
사별 후 심각한 우울증으로 인해 그녀는 기억력과 집중력 저하 심지어 언어능력까지 떨어진다.
딸 모래의 걱정은 커져만 간다. 엄마가 탈북자의 고통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남편과의 첫 만남. 그립지만 배고픔에 고통스러웠던, 하지만 다시 가보고 싶은 고향의 기억.
탈북하는 과정에서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아픔이 그녀를 가득 채운다.
무해의 상실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어둡고 축축하고 진득하게...ㅠ
북한의 실상에 대한 참담한 모습과 자세한 심리묘사는, 마치 탈북자의 실제 경험담을
보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다. 맨 뒤편에 나오는 참고 자료를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였다.
압록강을 건널 때는 절반의 행운과 절반의 불운이 있었다.
사느냐, 죽느냐.
하지만 치매는 압록강을 건널 때와는 달리, 명료했다.
매일 기억을 잃어가며 서서히 죽어가는 병. 절반의 행운 같은 건 없고, 확실하게,
흔들림 없이 죽어가는 병. 그게 바로 치매였다.
- 농마국수 _30
인간의 존엄과 윤리는 '의지'가 아닌 '식량'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그녀.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거대한 국가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상실감이
가득 채우고 있지만, 또한 살고자 하는 간절함도 가득하다.
읽는 내내 그녀가 겪은 일들이 먹먹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삶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똑같은 삶이 아니기에, 상대를 위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삶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해'의 마음을 읽다 보면, 탈북한 그녀가 다정했던 남편에게서 느껴야만 했던
분노가 무엇인지를 알고 놀라게 된다.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삶도 존재한다는 것.
시작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보다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도.
무해는 그때 남편에게 했던 말을 후회했다. 그 당시, 그녀는 자신이 겪은 경험들은
대단한 일들이며,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은
다 하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은 독서, 글쓰기, 산책으로 이루러진 단순한 삶을 원했다.
- 카스텔라 _176
은행나무에서 <극해> 다음으로 두 번째 만나보는 소설이다.
깊이와 먹먹함이 인상 깊게 남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