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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평점 :
인간다운 삶,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일까요.
양심조차 팔아버리고 도저히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범죄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은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기를 포기한 자들인가.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봅니다.
그 후 재판에 넘겨진 자들은, 범죄의 심각성만큼 정당한 처벌을 받을까요?
영아 강간과 잔혹한 살인범의 경우 또는 술김에 때렸는데 상대가 죽은 경우처럼
우발적으로 일어난 범행이며, 초범이라고 하는 경우는 또 어떨까요. 폐륜도 너무 많죠 ㅠ
'무엇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가?'
현대 사회의 문제는 역사를 통해서도 여전히 반복되어왔던 문제였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충격을 받고 책을 쓰게 된 '유대인 학살을 지휘한 아이히만의 재판'.
그녀는 평범하지만 좋은 아버지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며 '악의 평범성'을 주장합니다.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
유대인이였던 그녀의 주장은 모두를 놀라게 했어요. 그러면 그는 죄가 없는 걸까요?
전례가 없었던 세기의 재판에서 '명령에 따른 무죄'를 주장하는 아이히만을 향해
그녀는 명확하게 유죄를 선언합니다.
무사유.
즉,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곧 '악'이다.
이 책은 아렌트가 사유, 의지, 판단을 향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성찰한 결과물입니다.
근대 철학자의 입장은 물론, 고대 이후부터 현대까지 수용과 반론에 대한 답변이에요.
한마디로, 그녀 자신이 세운 자신만의 철학의 근원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권 <사유>는
왜 필요한가에 대한 서문을 시작으로 그리스 철학을 비롯한 소크라테스의 답변을 통해
사유의 공간까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초반은 많이 어려웠어요; 그만큼 모르는 게 많았ㅠ;;
"자신과 불일치 상태에 있는 것"은 '비천한 사람들'의 특징이며,
자기 자신의 동료를 피하는 것은 '사악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들의 영혼은 자신에 대한 반기를 든다.
당신의 영혼이 영혼 자체와 조화 상태에 있지 않고 대립될 때
당신은 당신 자신과 어떠한 형태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가?
- 무엇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가? _170
2권 <의지>에서는
내면의 사유의 결과를 외면으로 이끌어내는 원동력인 의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강의를 듣는 것처럼 이야기로 나와서 재밌었어요. 물론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철학자의 생각 속에 아렌트만의 '의지'에 대한 정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의지는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다."
마지막 <판단>은 아렌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하고
칸트 정치철학 강의 발췌문으로 실려 있었는데요,
판단력 비판과 반성적 판단 그리고 사유를 통한 해결책과 칸트의 모순을 지적합니다.
판단의 그것은 "사심 없는 관심" 이다.
한나 아렌트는 '정신 활동'을 통한 정치 행위의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정치 철학'을 세우고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그러기엔 좀 어렵지만요 ㅎ
역사를 통해 사유하는 삶을 보고 느끼며, 정신의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엔 '사유'라는 단어조차 어렵게만 느껴졌는데 말이에요.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지만, 철학의 역사를 보듯 재밌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철학적인 문장에 대한 이해도는 많이 떨어짐을 느껴지만요...
얼마 전 홍원표 교수님의 북토크가 있었다고 합니다. 좋은 기회였는데, 놓쳐서
많이 아쉽더라구요. 통합본을 내기까지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셨을까요.
독자의 질책이 두렵지만 받아들이는 각오로 임하셨다고 합니다.
번역은 '고역'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반역'이라는 오명을 남긴다.
옮긴이가 반역 과정에서 범하는 오역은 지은이의 의도를 거스르는 것이기에 '반역'일 것이다.
번역을 할 때마다 괴테의 문구가 생각난다.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은 항상 죄책감을 갖는다."
파우스트에서는 "인간은 노력하는 한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라고 밝혔다.
-옮긴이의 말 _26
통합본이기에 700여 페이지의 두툼한 분량이지만 겁먹지 마세요.
아렌트가 말하는 사유하는 정신의 삶은 모두를 위한 것이고
우리는 누구나 사유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아주아주 어렵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 40페이지를 정해놓고 읽었더니 보름 정도 걸렸네요.
정치 철학을 담고 있기에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를 보는 시야도 넓힐 수 있었지만.
사유의 양심을, 의지의 힘으로, 지켜낼 수 있는 판단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정신의 삶을 실천하고자 힘을 받았던,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