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골동품점
범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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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책을 읽든, 나는 목차나 차례부터 유심히 보는 편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지 엿볼 수 있으면서도 그 시점에 다다를 때까지 큰 기대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호랑골동품점』은 차례부터 심상치 않았다.


서막. 호랑골동품점 영업 시작 전 [닫힘]

1. 19세기, 영국 브라이언트앤드메이 성냥

2. 19세기, 그림자인형 와양쿨릿

3. 1977년, 체신1호 벽괘형 공중전화기

4. 1950년대, 럭키 래빗스 풋

5. 17세기, 짚인형 제웅

6. 연도 불명, 콩주머니

후일담. 호랑골동품점 영업 시작 [열림]


  익숙한 성냥이나 공중전화기부터 낯선 와양쿨릿이 제작연도와 함께 나열되어 있는 차례를 보며 골동품점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근사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 기대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흥미진진한 기담들을 만나게 되었다.


  백호와 귀신이 등장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로 출발한 소설은 동묘나 을지로 어딘가 있을 법한 골동품 거리로 자리를 옮기며 여러 사람과 마주한다. 총 여섯 가지 골동품이 등장하며 각 물건에 이끌린 사람들이 이야기 한가운데로 자리한다. 콜센터 근무를 하며 부조리함에 맞서 싸우지 못한 김규리, 인성과 성품이 나쁜 김택구, 소중한 두 친구를 잃은 정지운, 폭력의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길용, 괜찮은 척 삶을 살아가는 채주연, 아빠에 의해 엄마를 잃은 소하연, 그리고 이들과 연관된 여러 사람들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마냥 악인도 아니며 마냥 선인도 아닌 이들은 호랑골동품점의 골동품과 만나 신이한 일을 겪는다. 기담 형식으로 각기 다른 사건이 전개되며, 그 과정에서 호랑골동품점의 주인 이유요와 주변인물이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들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데, 으스스한 호러의 문법을 취하고 있지만 마냥 다크하지만은 않다. 쉽게 비유를 하자면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의 힐링 버전이랄까?


  특히 인상 깊었던 장은 「17세기, 짚인형 제웅」이었다. 42세 직장인 여성 채주연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외로움'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소설 전반에 걸쳐 '외로움'에 대해 다루는데, 이는 호랑골동품점 주인 이유요도 포함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이야기한다. 채주연은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딸은 미국에 유학 가있는, 그야말로 '완전한 혼자'였다. 그 외로움은 불교의 아귀처럼 배고픔으로 치환되어 끊임 없이 먹으면서 괴로움을 달래려한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호랑골동품점에서 돈을 주고 훔친(?) 짚인형과 교류 아닌 교류를 하며 그 증상은 나아지는 듯했으나, 소중한 딸에게 영향이 가자 외로움을 택한다. 그저 외로웠을 뿐인 채주연은 이유요에게 같은 처지였던 짚인형 제웅 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이해하게 된다. 채주연과 원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며 장은 끝난다. 앞으로는 서로 정을 나누며 허기 같은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까? 궁금증이 남는 마무리였다.


  이 외에도 마음이 안타까웠던 정지운의 공중전화기나 이유요에게 초코우유로 스며든 소하연의 이야기까지 정말 다채롭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특히 이유요의 외로움까지 해소가 될 기미가 보이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책 소개글의 '힐링 호러 소설'이라는 장르가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오싹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약 2시간 만에 주파할 정도로 술술 읽히는 것 역시 이 소설의 매력 중 하나였다. 영상화가 되어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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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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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난 신혜우 식물학자를 만난 적 있다. 라디오 조연출로 일할 때 『이웃집 식물상담소』 소개와 함께 식물세밀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기억 때문에 이번 책도 역시 식물 이야기가 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조금 더 저자의 사유가 돋보이는 에세이였다. 작년 독서모임 마지막 책이었던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새와 풀, 즉 자연이 이별하는 모습과 저자가 주변인과 이별하는 장면을 병렬로 보여주며 마음을 저릿하게 했던 책인데, 이 책 역시 숲속에서 만난 여러 식물의 형태나 움직임에서 저자의 생각으로 뻗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봄이 온 만큼 각 계절에 어울리는 내용을 읽을 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벚꽃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내려놓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수 있다니. 나도 주변을 이렇게 관찰하고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질투심이 들면서, 멋진 숲속을 거닐며 드는 생각을 잘 정리해 글로 엮을 수 있는 부지런함에 감탄했다.


  더 좋았던 점은 200쪽이 넘는 두께지만 글이 술술 읽힌다는 건데, 페이지가 금방 넘어가며 읽을 이야기가 빠르게 떨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나의 폴라 일지』를 읽을 때는 남극을 탐험하는 두근거림과 균류나 미생물을 표현하는 용어들이 낯설어 무언가 모험을 떠나는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처럼 익숙한 풍경에서 시상을 찾아내듯 나만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흐름이 느껴졌다. 특히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는 머나먼 이국에서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로 들며 괜히 나도 마음이 찝찝했다.


숲에 사는 다른 생물들과 다른 게 없는, 지구에 살아가는 한 생물인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것만 같았다. 나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지구에서 하나의 연결고리이고 나의 말과 행동, 남겨놓게 되는 모든 것이 나와 내 주변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할 사람도, 내 주변을 행복하게 살 사람도 나다.

  식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멋진 공원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비록 나는 집구석에 읽었지만, 다음에는 식물원에 들고 나가볼까?


*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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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 : 나 심은 데 나 자란다 띵 시리즈 25
임진아 지음 / 세미콜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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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나요?


평소 음식의 맛이나 식감을 깊게 고민하는 일은 잦지 않다. 그 대신 ‘점메추(점심 메뉴 추천)’를 외치며 학교나 회사 주변의 적당한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상황별/종류별 점메추 도표’를 만들어 72개의 메뉴를 추천 받는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타인이 추천하는 목록에서 찾을 수 없다. 가장 좋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호불호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살던 어린 시절, 땡땡이를 치고 친구들과 보낸 시간,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가게에서 함께하며 켜켜이 추억을 쌓은 음식만이 ‘최애 음식’이 될 자격이 주어진다.


‘점메추’의 고민보다 깊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음식과 맛을 담은 띵 시리즈의 스물다섯 번째 주제는 ‘팥’이다. 임진아 작가의 『팥 : 나 심은 데 나 자란다』는 “팥소가 적당히 든 팥빵 같은” 책으 로, 팥 이야기와 저자의 추억이 함께 담겨있다. 임진아 작가는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 쿄』 등을 통해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글을 써온 만큼, 이번 책에서도 팥을 향한 애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고등학교 시절 수업을 빼먹고 친구들과 패스트푸드점에 가 먹은 팥빙수의 추억을 이야기 하며 “그런 종류의 즐거움을 여전히 겪고 싶어 하는 어른”이 된 이유로 “나 심은 데에는 결국 내 가 자라난”다는 말을 전한다. 제목에 대한 의문이 풀리고, 단순히 팥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는 것 이상으로 독자로 하여금 ‘나는 무엇을 심었기에 내가 자라났을까’ 고민하게 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여러 형태의 팥을 즐기고 사랑하는 저자가 부러워진다. 더불어 앙꼬절편에 딸기를 넣어 먹으며 행복과 위로를 느끼는 경험을 해보고 싶어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이번 주말에는 ‘점메추’에서 벗어나 ‘최애 음식’을 찾아 헤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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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 - 식민지 조선을 위로한 8가지 디저트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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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떡과 초콜릿, 경성에 오다』라니. 제목부터 시선을 끈다. 호떡하면 길거리에서 달콤하면서 기름기가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와 어머니가 구워주시던 호떡 믹스가 생각이 나는데,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있던 유서 깊은 디저트라니 신기하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은 제목에서 언급된 호떡과 초콜릿, 커피, 만주, 멜론, 라무네, 군고구마, 빙수까지 여덟 가지 디저트를 소개하고 있다. 그 시대에 창작된 소설이나 신문 기사를 직접 인용하고 여러 사진 자료 등을 함께 첨부하고 있어 신뢰도와 구체성이 잘 갖추어져 있다. 한 챕터 말미에는 더 읽을거리를 배치해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읽을 수 있어 구성이 매우 좋았다.



  고등학생 시절, 나는 시인 이상에 빠져있었다. 그랬기에 '다방'하면 역시 제비다방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데, 첫 번째 챕터 '커피'에서도 커피와 다방 이야기를 꽤 기대하고 있었다.


  챕터는 100여 년 전 여러 매체에 등장한 정보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한다. 소설은 시대를 반영하기 마련이라 하지 않는가. 그렇기에 그 시대 사람들의 인식과 그들이 본 풍경을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다방부터 최초의 다방을 찾는 여정은 흥미진진하면서 그때의 경성을 걷는 기분이었다. 더불어 '최초의 다방 찾기가 과연 중요할까'라는 소제목을 함께 배치해 역사적 정보를 현대에 어떤 의미로 해석하면 좋을지 독자에게 고민의 여지를 준 점에서 좋았다.



  책을 읽으며 몇 년 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글이 생각이 났다. 지금의 우리니까 웃으며 넘어가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다방의 역사를 알고나면 할머니의 반응이 이해가 간다. "술과 함께 여급들의 에로틱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되면서 가족 손님이 더 이상 카페를 찾지 않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인식에서 이어진 1900년대 다방은 어땠을지 상상이 된다.



  이 외에도, 호떡을 먹으면서 드는 부끄러움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식민지 시대 조선인이 지니고 있던 중국이나 중국인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신기하면서, 2025년 현재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이주노동자가 많은 지역에 중국이나 동남아 음식점들이 운영되곤 하는데 맛이나 가격 등이 아니라 요리사나 사장의 국적을 들먹이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그리고 "학생들의 경우 호떡을 먹거나 호떡집에 가는 것이 부끄럽다는 언급을 하지 않는" 것도 지금의 마라탕과 비슷한 위치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재밌지만, 현재의 디저트나 모습과 연결시켜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였다. 사담이지만 100년 뒤에는 『탕후루와 두바이 초콜릿, 2020년에 오다』라는 이름의 책이 출간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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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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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평구로 이사를 오며 만나게 된 도서관이 '구립구산동도서관마을'이었다. 여러 주택과 도로를 합쳐 주민들의 참여로 만든 도서관인데, 내부 곳곳에 도서관 마을의 의미를 설명하는 글과 그림 덕분에 그 역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렇게 도서관 안에 역사를 설명해둔 곳은 많지 않다. 주로 방문했던 은평구립도서관이나 도봉도서관, 하다못해 대학 도서관마저도 말이다.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에서는 우리가 단순히 방문하던 도서관을 주인공의 자리로 끌어올린 책으로, 서른 곳의 도서관을 근현대사와 함께 이야기한다.

  뉴스에 연재된 글이라 그런지 발췌독을 해도 괜찮을 구성이다. '들어가기'에서 설명하듯 "각 부를 한 권의 책처럼 읽으셔도 되고, 관심 가는 도서관 이야기를 골라 읽어도" 좋은 전개가 장점이다. 흥미가 있는 부분만 읽어도 된다는 건 540쪽이라는 두꺼운 분량을 보완한다. 나도 직접 방문해본 정독도서관과 길상도서관을 먼저 읽으니 도서관 역사가 더욱 잘 이해되었고, 그 덕분에 나머지 분량도 단숨에 읽어내었다.

  특히, 길상도서관은 길상사의 역사를 함께 알려주어 흥미로웠다. 나는 대학생 때 여러 사찰을 탐방하는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길상사와 김영한 보살 이야기'는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길상사의 전신, 요정 대원각의 주인이자 백석의 전 연인이라는 타이틀에 많은 사람이 집중했다. 이 책에서도 백석의 삶을 말하고 그를 그리워한 전 연인 김영한 보살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 섹스 산업의 중심이었던 요정의 역사를 같이 두고 보면 길상도서관과 다라니다원의 풍경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탄핵 선고만을 기다리고 있는 2025년 3월 22일에 탐독하기 좋은 챕터는 '도서관 앞 광장'이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부터 시작해 6월 항쟁이 일어난 역사를 따라가고, 그 과정에 있던 도서관과 사서를 주목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도서관이 주인공인 이 책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이어 도서관과 도서관 앞 광장에서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지키려 했던 '이용자'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학생운동의 배경이 도서관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우면서, 이들이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지금 꼭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내가 소개한 두 챕터 외에도 놀라운 내용이 많다. 정독도서관의 '정독'이 정독(精讀)이 아닌 박정희와 독서를 합친 정독(正讀)이라는 사실이나, 중앙대학교 도서관이 이승만의 이름을 딴 '우남기념도서관'으로 개관했던 이야기 등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도서관의 역사를 병렬로 배치해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 어쩌다 도서관은 독재자를 칭송하는 이름을 붙였을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그러면 『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을 읽어보면 된다.


*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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