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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 - 어느새 인간관계가 고장난 사람들에 관하여
맥스 디킨스 지음, 이경태 옮김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제목부터 엄청나게 당돌한 이 책은 SNS에서 소개글을 볼 때마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을 일으켰다. 다만 신간인지라 도서관에도 딱히 들어와있지 않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보아야지 노리고 있었는데 창비에서 '독서모임 지원 이벤트'를 연 것이다!
마침 내가 속해있는 독서모임은 돌아가면서 책을 고르는 규칙으로, 4월 모임은 내가 고를 차례였다. 지난 모임이 끝나갈 때쯤 이야기를 꺼내니 다들 좋아해주신 덕분에 열심히 지원서를 작성해 당첨이 되었다. 우리집으로 온 다섯 권의 책을 정성스레 포장해 각자 댁으로 보내드리고 두근거리며 모임을 준비했다.
내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더니 애인이 '이게 뭐야?'라며 묘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독서모임 책이라고 하니 뻔한 소리만 있을 거 같다며 일반화가 아주 많이 되어있을 거 같아 자긴 별로라는 거다. 아직 책을... 펴보지도 않았는데...! 나 역시 책을 읽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영국 남자가 쓴 거라는데 우리나라랑 얼마나 비슷할지 봐야할 거 같아'라고 가볍게 넘어갔다.
모임 중에도 나온 이야기로, 이 책은 제목으로 '어그로'를 너무 잘 끌었다. 원제인 'billy no - mates(외톨이 빌리)'를 직역한 '외톨이 동현' 같은 제목이었으면, 이렇게까지 뭇 남성들을 '긁'었을까 싶다. (근데 긁혔을 거 같기도 하고...?)
제목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라는 문구와 소개 카드뉴스 등을 보았을 때, 기존에 내가 읽었던 젠더 문제를 다룬 『보이지 않는 여자들』 같은 엄청난 연구와 자료가 포함된 사회과학 도서일 것이라 예상했다. 게다가 마케팅 포인트가 '광장에서 없어진 2030 남자', '고독사하는 남성 노인' 등이었으니!
그런데 왠걸. 첫 시작부터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할 반지를 사러 간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가. 오케이,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신랑 들러리'에 세울 친구가 없다는 걸로 생각이 뻗어나가더니 작가의 인간 관계를 같이 살펴보게 되는 게 아닌가!!!!!!!
예상과 다른 흐름에 휩쓸리듯 책장을 넘겼다.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고 쓰여 있던 걸 간과했던 탓이었을까, 온갖 유머의 향연에 피식피식 웃기도 하고 가끔은 빵 터지기도 하며 읽었다. 꽤나 무거운 제목에 찌질하고 외모 콤플렉스 있는... 중학교 교실에서 개그캐로 통하는 어정쩡한 남자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던 남자의 언어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수많은 남자들에겐 농담이 전부이며, 전부가 농담이다. (중략) 농담은 남성관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이며, 상대방을 밟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과 같다.
농담을 가장한 무례한 말을 하거나 괜한 데를 쑤시는 건, 그들이 농담에 관대한 것이 아니라 농담으로 위계질서를 잡기 때문에 거세질 수밖에 없다고 이해했다. 남성관계에서는 그게 통할지 몰라도 복수의 성이 섞인 공간에서 그렇게 구는 사람들이 있어 짜증이 났다. 그러니까 친구가 없지!
그래서일까, 저자 맥스 디킨스도 농담을 때와 장소를 안 가리고 내뱉는 바람에 이 책의 몰입도가 종종 깨졌다. 진지한 이야기를 하거나 연구 결과에 대해 말할 때, 혹은 인터뷰이와 대화할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저자는 야한 농담을 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것처럼 음담패설을 뱉는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남성 독자들이 끝까지 읽지 않기 때문이었을까? 초반에는 깔깔 웃다가도 나중에는 '아저씨 제발요!!! 그만!!!'이라고 책에 쓸 정도로 너무 과해서 조금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이 책은 공동저자로 '나오미'가 꼭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오미의 구구절절 맞는말 대향연에 전부 밑줄을 치다간 책이 형광펜으로 물들 수도 있다. 독서모임에서 이 페이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 생각난 건데, 최근 '기획육아'라는 말이 신혼부부 사이에서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 분유 주기가 육아의 전부가 아니라 신생아 접종 시기는 언제인지, 현재 개월수에는 뭘 먹여야 할지, 어떤 육아용품이 좋은지, 어린이집은 어디로 갈지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에 필수적인 노동도 육아의 한 부분이고 이것을 '기획육아'라고 부른다. 이러한 '기획육아'는 대부분 여성(엄마)가 담당하며,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간과 정신을 쓰면서 힘들어하지만 배우자(공동육아 당사자)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 특징이다. 단어가 생기며 가시화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야 그 기획육아의 어려움을 알고 이해하는 수준이라고 알고 있다.
책에서도 이러한 감정노동의 결핍은 남성우정의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말한다.
남성은 셔츠를 다리미질할 책임뿐만 아니라, 우정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책임도 여성에게 위임해버린다. 나자는 삶에서 여자를 개인 회사의 인사담당자로 대한다.
(중략) 나는 나오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친구관계가 생겼다. 내가 나오미 한명과의 관계라는 상품을 구입하면 열다섯개 정도의 관계가 서비스로 딸려오는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 가장 자주 만나는 남자들은 나오미의 여사친들의 남편이나 남친들이다. (중략) 그런데 문제는 여기엔 도덕적 해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사교적 창의성(쉬운 말로 내 파트너의 노동!)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그룹을 구축하기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하지 않는다.
진짜로 개열받지 않는가???????????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며느리가 시댁 어른들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대리효도를 해주면 남자들은 거기서 우리 마누라 잘하지 ㅎㅎ 이러고 있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저자는 '엣큥 이런 게 문제였쟈낭 >_<'하는 태도라 상당히 열받긴 하나, 그 나름대로 열심히 현장 연구도 하고 여러 사례도 가져오며 꽤 괜찮은 사회과학 도서라고 생각한다. 그놈의 섹드립만 10분의 1로 줄이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모임에서도 모두들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해서 '나만 느낀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이 책의 결론은 생각보다 허무하고 맥빠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쪽에 걸쳐서 '잉잉 난 친구가 없어'라고 할 정도로 남자들은 친구 만들기 (그러니까 있는 인연 유지하고 새 인연 강화하는) 작업이 얼마나 먼 이야기인지 알게 된다.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고 싶어진다면 꼭 여러 사람의 서평을 잘 찾아보길 바란다... 그래도 내용은 좋다, 잘 찾아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