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21. 네이비(1)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온통 회색빛깔로 뒤덮인 공간에 서있었다.
좌우로
뚫려있는 공간인데도 이상하게 답답하고 꽉 막혀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상한 공간이었다.
색깔
때문인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공간에는 지금 아무도 없다.
나만이
지금 이 회색 공간에 서있다.
오빠도
슬비도 곁에 없다.
그저
왼쪽으로부터 바람만이 솔솔 불어오는 중이었다.
여기
이 공간에 혼자 우뚝 서있는 것이 떨렸고 무서웠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행동을 취해보기로 했다.
두
다리를 움직여 왼쪽으로 걸어보았다.
처음
걷는 아기처럼 걸음이 어정쩡했다.
걸음을
내딛는 순간순간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색깔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것이
신기해서 계속 걸었다.
가다가
가시떨기가 가득 차 있는 밭도 지나고 이름 모를 묘지도 보았다.
흙이
없어도 공간에 찰싹 붙어 자라는 꽃들을 지날 땐 시간이 지나 벽과 바닥이 진한 회색이 되었고,
내가
입은 하얀 원피스는 검은 먼지들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걷는 걸 멈추지 않았다.
쉴 새
없이 걷다보니 어느새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 되돌아 온 듯 했다.
벽과
바닥은 어느새 새까맣게 타버렸고 원피스도 원래 하얀 걸 모를 정도로 타버렸다.
내 몸도
먼지가 끼어 더러웠고 어떤 부위에는 상처에서 피까지 흘러나왔다.
그래도
앞으로 걸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앞으로 가지를 못하고 제자리걸음만 반복했다.
그래서
그냥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쉬기로 했다.
더
나가고 싶은데 더 갈 수 없다니 좀 분했다.
그렇게
씩씩대는 마음을 추스르며 쉬고 있는데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오빠가 ‘그’
교통사고의
날에 입은 옷을 입고 뒤돌아 서있었다.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어둡고 추운 곳에 왔느냐,
그리고
여동생을 봤으면 뭔가 반응을 보여야지 왜 멍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냐.
정말
바보가 되어버렸느냐,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을 억지로 집어 삼키고 그저 오빠에게 다가가 말했다.
“잘
지냈엉?”
오빠는
뒤돌아 선 모습 그대로였다.
있잖아,
오빠.
나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이제까지
오빠가 보여주던 모습들을 닮으려고 죽도록 발버둥 쳤는데,
어느
샌가 그게 일그러져 버려서 내 본모습은 저기 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네.
분명
오빠도 그래서 나에게 알려주려고 말을 걸어 온 거겠지.
걱정
마.
이제
엇나갈 일은 아마 없을 거야.
나에겐
이미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어.
그
친구들이 있는 한 넘어져도 쓰러지지는 않을 거야.
오빠가
말한 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어.
그러니까
오빠도 나를 지켜봐줄 수 있지?
미소를
띤 채 오빠에게 얘기했다.
그제야
오빠는 뒤를 돌아서 나를 똑바로 보기 시작했다.
그 생기
있는 눈동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그
눈동자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오빠는
나를 끝까지 무표정으로 나를 주시했다.
오빠가
나를 슬프게 바라봤다.
그리고는
자기의 손을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오빠의
손은 어느새 네이비 색깔에 물들고 있었다.
당신의
손에서 눈을 뗀 오빠는 다시 나를 슬프게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에,
오빠
어떻게 된 거야?
나에게
말을 걸 수가 없는 거야?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건데.
네이비는
오빠의 손과 발을 거의 물들이고 있었다.
몸통의
거의 반은 네이비로 물들었는데도 눈만은 나를 계속 주시했다.
그 눈은
엄청 슬퍼보여서 내가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오빠
무슨 말 좀 해봐!
이윽고
네이비가 오빠를 완전히 덮고 그 오빠를 덮은 그 물체는 바닥에 엎드려져 바닥을 물들였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오빠라고도 불릴 수 없게 된 진한 군청색 바닥은 금세 부서지기 시작했다.
군청색
바닥이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알
수도 없는 더 높은 차원에 던져지고 있었다.
오빠는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혹시
나에 대해 실망한 것은 아닐까,
아냐,
오빠는
나에 대해서 실망한 적은 없어.
오빠는
항상 날 친절하게 대해줬는걸.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마음속에 많은 생각들을 간직한 채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갔다.
오빠가
그럴 리 없어.
맞아!
확신했다.
아래에
거의 내려오기 직전 꿈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