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글발'이 있는 사람의 글을 읽는 것은 즐겁다. 내가 홍세화의 책을 자주 꺼내들고 읽는 까닭은, 그의 글의 내용이 좋기도 하지만 글을 읽는 맛도 각별하기 때문일 것이다.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그의 글은 '맛있다'. 재미있는 문체를 구사한다고 해야 하려나... 같은 내용을 써도 좀더 맛깔스럽게 전달하는 필자들 말이다. 이 책 역시 내가 홍세화의 책에서 기대했던 글의 묘미가 풍부히 살아있어서 읽으면서 즐거웠다. 20년 이상 모국어 땅을 떠나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이런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인지, 참 감탄스럽고 부럽다.

그의 책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경계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특히 앤서니 기든스의 인터뷰 기사는 거의 포복절도하게 우스우면서도 유익했다. (그 실체를 이렇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알려주다니!)

하지만 뭐랄까, 이번 책에서 내가 느낀 하일라이트는, 홍세화 씨의 부인이었다. 그것도 어쩌면, 저자가 보면 화를 낼지도 모르는 방향에서 부인 분에게 감탄했다. 그녀의 일터 이야기에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 기업'의 자세가 나타나 있다. 그분의 일하는 자세는 설령 미국 같은 극한의 경쟁 사회에서도 능히 통할 수 있는, '일하는 자의 자세'이다. 당장 글에도 나와있지 않은가.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라고. 예전에 성신제 씨의 '창업자금 7만3천원'인가 하는 글에서 봤던 시간 때우기로 일하는 평범한 아르바이트생들-더 나아가 직장인들의 자세와 대비되면서, 부인의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며 나는 '신자유주의적'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분은 어디에서도 성공할 사람이라고. 이런 자세를 배워야 한다고. (...물론 저자가 그 에피소드를 쓴 의도는 이런 게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그랬기에, 나는 그분이 프랑스의 크리스찬 디오르 일터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며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은, 부인의 의사와 별로 상관없이 한국으로의 귀국을 강행한 저자의 태도였다. 부인은, 프랑스 땅에서 자신의 일을 갖고 자녀들 곁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부인의 마음은, '남편'이라는 사람의 귀국 결정 한마디로 무너져야 하는 것일까? 양립은 불가능한 것일까? ...라고. 홍세화 씨의 결정이 가부장적으로 흐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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