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줄리아 알바레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에또... 솔직히, 책은 휑하다. 요새 책들이 얍삽하게 휑하고 넓은 줄간격을 선호하고 책도 얇고... (그렇다고 컬러풀하냐. 그림도 흑백이다;) 옛날엔 '얇으면 싸고 두꺼우면 비싸고' '컬러면 비싸고 흑백이면 싸고' 의 기준으로 책을 살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 책값이 이렇게 들쭉날쭉 저마다 더 받겠다고 아우성이 됐는지 모르겠다... (서점 갈 때마다 한숨이 폭폭 난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우화 형식을 빌려 쓴 유기농 커피농장의 진화사(史)...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였다. 즉, 내가 먹는 이 커피 한잔에 얼마나 많은 농부들의 피와 땀이 들어 있는지를 알게 해주었다는 얘기다. 마치 '태백산맥'의 소작농 얘기를 보는 듯한 농부들의 고혈과 어려운 삶...뿐만 기계화 영농을 위해 커피에 치는 그 '독약'--농약이라는 순화된 말을 쓰지 않는다. 이 책은 직설적으로 '독약'이라고 적시한다--얘기를 보며, 나는 순간 내가 일상적으로 마시던 커피의 양을 생각하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요샌 '슈거 블루스' '음식 혁명' '잘먹고 잘사는 법' 등등을 읽고 고기는 물론 삼백식품(설탕, 흰밀가루, 흰밥)과 우유, 달걀까지 끊고 살고 있었건만... 그 좋아하는 크림커피를 끊고 블랙커피를 마시며 거의 도닦다시피 살고 있었는데... 아직 멀었단 말인가;; 쿨럭;;

'농약' 얘기가 내 피부에 와닿는 얘기라면 위에 언급한 '고혈'의 이야기는 사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알 수 있음에도 평소 잊고 살던 이야기를 되살려주었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팠다. (당장, 우리가 늘 입는 '지오다노'나 '후아유'의 저가 옷들은 모두 21세기 중국 여공들을 70년대 전태일 시대로 몰아넣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옷들이다.) 산업화와 대량 생산 농업이 소농들을 파멸로 몰아넣는다는 것은 자본주의 역사의 상식이었지... 하고, 먼 옛날 읽었던 역사책을 되새겨보게 되었다. 이 책의 농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초저임금에 시달리며 커피콩에 1년 온종일의 시간과 고혈을 바치고, 그러고도 최저빈곤선 이하의 삶에 시달린다. 농지를 빼앗기고 커피를 경작하느라 정작 자신들이 먹을 토마토도 사먹어야 하는 비참한 삶...

그리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창해 ABC북 커피'에 나온 '수작업'의 의미를... 예전에는 이렇게 대량생산되는 커피 콩은 당연히 기계화 작업으로 재배하는 줄 알았었다. '창해 커피북'을 보고 그것이 일일이 손으로 따는 고단한 작업임을 알았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며, '고단한 작업'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정말로, 정말로 커피 콩 작업은 고단한 작업이었다. (세상에, 손이 그렇게 많이 가는 작업이었을줄이야!!)그러나 책은 비참한 현실의 고발에서 멈추지 않는다.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땅을 사고, 토마토도 경작하고(^^), 그리고 유기농 커피콩을 재배해서 판로를 개척한다. 글도 가르친다. (오오, 이것은 야학! @ @) 이것이 실화이기에, 알량한 양심이 찔려 찔끔하던 나는 남아있는 희망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유기농 커피콩 판로를 뒤져 커피를 사볼 생각이다. 농약도 없고, 맛도 훨씬 더 풍부하다고 하니, 농부들도 돕고 그야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 아닌가.우화 형식으로, 거친 언어나 분노의 언어 그런 것은 절대 없는 아주 잔잔한 이야기이지만, 그런 잔잔함 속에도 가슴 아픈 진실을 이렇게 잘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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