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차이
알리스 슈바르처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프롤레타리아에게만 조국이 없는 건 아니죠. 오히려 진정으로 조국이 없는 건 여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에 보면 나오지요. '인권 국가 스위스에서 왜 '살다보면 여자는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된다'라는 말이 나와야 할까' 라고요. 뭐, 읽을 당시에는 피식 웃었습니다. 그 말 자체가 어때서가 아니라, 여성에게 투표권을 1990년대 들어서야 준 나라 스위스가 인권 국가는 아닌데... 라는 생각에서였지요. 하지만 그런 지식들은 피상적인 것이었고, 또 다른 마음 한켠에서는 '그래도, 우리나라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출가외인에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면서도 자신들의 성조차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 우리나라보다야' 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저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단 서평 제목 말마따나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음'을, 세상 모든 여성은 본질적으로 똑같은 굴레를 짊어지고 살 수밖에 없음을 보여줬지요. 그걸 보고 나니 참 소름끼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남편의 그늘에 시달려야 하는 유부녀들뿐만 아니라, 보다 자유롭게 살아가고 또한 그것이 눈치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유분방한 독신여성들조차 그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독신여성이 많은 남성들을 사귀고 헤어지고 하면 별별 험한 소리를 다 듣잖아요? 그런 것이 보편화된 서양은 그래도 우리나라같은 꼴은 안 당하겠거니... 부럽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 공지영(..많이 인용하게 되는군요)의 착한 여자에 나오잖아요. 여자들이, 남편에게 가령 죽도록 얻어맞으면서도 그것을 감수하고 사는 것은, 그 홑껍데기같은 울타리마저 없을 때의 불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런 선진국에서조차 '남자가 없는 여자는 어딘가 이상하게 보여지는', 그 시선이 똑같이 사회에 만연해 있었다니. 정말 놀랍고, 화가 났습니다.

남자의 권력은 성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육에 있다는 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조물주의 최대의 실수는, 남자와 여자의 근력 차이를 너무 현격하게 만들어놓아 모든 여자의 운명이 남자의 너그러움에 좌지우지되도록 만들었다는 것에 있다고요. 실제로 전 세계 여성들의 운명이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성차별로 귀결되고 있다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정말 조물주의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런데도 남자들은 마치 자신들의 권력이 그 잘난 '좆'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고, 그것이 또 전세계적 공통점이라니... 하긴, 어디서 보니까 남자들은 자신들만이 여성에게 쾌락을 주는 존재여야 하기 때문에 레즈비언을 싫어하고, 또한 여성이 능동적으로 쾌락을 찾으면 몹시 당황한다고 하더군요. 알면 알수록 '사내'라는 존재가 끔찍해집니다.

PS : 얼마전 우리나라 신문 서평란을 장식했던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에 나온 브루스-데이비드 사례가 아직 실패로 판명나기 전에 나온 책이라서 그런지 그 사례가 '성은 사회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다'라고 실제와 정반대로 인용되는 것은, 이 책이 나온 시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오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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