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외양부터 말하자면 느낌이 좋은 책이다. 분위기도 차분하고. 줄간이 좀 넓어 휑하긴 하지만 짜임새 있는 편집 덕에 별로 큰 단점으로 보이진 않는다. 상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요새 책들이 다 그런 것이니까 기왕 줄간이 널찍하다면 편집이라도 잘 해서 그걸 효과적으로 배치했다는 건 미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용을 볼 때는, 원래 좀 현학적인 글을 쓰던 사람인가 보다... 생각이 들었다. 몇몇 사실적인 사물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흥미롭고 놀라웠지만 다소 추상적인 주제라든가 인물에 대한 사모곡 식 글들은, 지나치게 관념적인 면이 엿보여 그닥 공감하기 어려웠다. 읽은 지는 꽤 된 책인데, 그렇게 세월이 지나 돌이켜본 저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다른 어떤 관념적 글도 아닌 가장 사실적인 글인 '개발바닥' 이야기였다. 동물을 워낙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도 한몫 했겠지만, 그 글 자체도 굉장히 좋았다. 개털을 물고 둥지를 짓는 까치들의 운치있는 에피소드도 그렇거니와, 참사냥꾼과 사냥개의 일화 역시... 언제 읽어도 물리지 않고 잔잔한 웃음을 주는 실로 명 일화라 하겠다. 자두와 수박의, '에로틱한 속살'의 비유도 참 생생했고.

반면 이중섭 추모기 등에서는 심상이 딱 와닿지 않아 뜬구름같은 느낌이었고... 뭐, 이건 정말 개인적 감상이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이야기의 경우는, 내 생각과 많이 달라서 썩 달갑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에 대한 엄격한 자세가 굉장히 놀랍고 훌륭해 보였는데, 같은 소설가의 눈에는 그것도 아닌 모양이지...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구도자적 자세는 결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다. 그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쓰는 이 김훈이라는 작가는, 과연 얼마나 엄격한 자세로서 글을 쓴다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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